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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폭행’ 무엇이 그들을 괴물로 만들었나

‘묻지마 폭행’ 가해자 심리 분석

이나미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15(Tue) 08:00:00 | 1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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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초등학생들도 ‘묻지마 폭행’이란 단어를 쓰고 있지만, 심리학이나 의학에 그런 진단명은 없다. 다만, 개별 대상에 대해 특별한 원한 없이 자신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거나, 병적인 폭력성에 사로잡혀서, 혹은 특정 소수집단에 대한 혐오를 이기지 못해서 폭행을 저지를 수는 있다. 그러나 임상에서 애먼 대상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은 주변의 아는 이들에게도 폭행을 했던 전력이 있거나 그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일단 폭력적 성향을 갖게 되는 원인에 대해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본인이 학대의 피해자인 경우다. 가해자는 부모나 가족일 수도 있고, 군대나 회사처럼 특정 집단의 상급자일 수도 있다. 약자로서 자신이 당한 폭력에 대한 앙갚음으로 자기보다 더 약한 이들을 괴롭히는 심리는 병적으로 작용하는 무의식적 심리 자기 방어 체계인 전이(Transference)를 생각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것인데, 정작 자신을 가해한 이에게는 보복을 할 수 없으니 그보다 약한 누군가에게 자신의 화풀이를 하는 기제다. 이때 가해자의 폭력적 가치관을 내면화(Internalization)하거나 폭력 가해자와 동일시(Identification)하는 현상도 대부분 함께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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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 능력보다 후천적 교육으로 체화

 

두 번째로는 자신의 충동성을 자제하는 초자아(Super-ego), 즉 양심과 도덕성을 키우지 않은 경우다. 봉건 시대, 오냐오냐하며 키워서 안하무인으로 성장한 도련님과 아가씨들이 노비 몇쯤은 때리거나 죽여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던 과거를 생각하면 된다. 최근에는 부족한 것 없이 위함만 받고 커서 능력에 걸맞지 않은 권력이나 돈을 갖고 이른바 갑질을 하는 이들이 해당될 것이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은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아프거나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을 공감하고 배려해 주는 것인데, 이를 배우지 못했으니 짐승과 차별되는 인간성을 배우지 못한 셈이다. 도덕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능력에 비해 후천적인 교육에 의해 많은 부분이 체화(體化)되는데, 가장 기본적인 인성교육에 대해 무지한 부모 밑에서 자란 셈이니, 나와 다른 사람, 나보다 약한 사람들을 아껴주는 인간적인 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안타까운 경우다.

 

셋째,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는 경우다. 조현병이나 망상형 정신병 등을 앓는 사람은 뇌의 병 때문에 환청이나 망상에 시달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를 해칠 수도 있다. 최근 정신질환자의 인권 문제가 대두되면서 정말로 입원이 필요한 사람들도 퇴원시키는 경우가 많아 거리를 헤매는 잠재적 가해자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후 보호자들이 받아주지 않거나, 제대로 보호를 하지 못하니 거리를 헤매다 환청이 시키는 대로 묻지마 폭력을 휘두르게 된다. 인권 때문에 환자들을 퇴원시키기 전에 이들을 위한 중간 단계의 치료시설인 낮병원 혹은 보호시설 등을 정비하고 확충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부작용이 최근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넷째, 혐오범죄의 경우다. 보통 여러 가지 의미로 소외당했다고 생각하거나, 패배감이나 열등감에 싸여 사는 이들은 자신이 약자거나 패배자라는 생각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특정 소수집단을 지목해 자신들의 우월감을 과시하려고 한다. 동성애자, 유대인, 여성(최근에는 남성까지), 이민자, 불법체류자, 중동이나 유럽에서처럼 특정 종교를 믿는 소수들, 일본이나 인도처럼 특정 지역에 사는 사람들 등 힘없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범죄다.

 

이와 같은 묻지마 폭력은 가해자를 미리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예방할 수는 없다. 미국처럼 총기 소지가 가능한 나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묻지마 폭력은 불특정 다수에 대한 범죄이기 때문에 사회적 불평등, 심리적 소외감, 복지 체계 등 복합적인 측면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옳다. 가정폭력 혹은 학교, 군대, 보육시설 등의 기관 내 폭력을 철저하게 근절해야 한다. 심각한 가정폭력은 가해자를 벌주는 것은 물론, 가해자·피해자 모두 치료를 받도록 강제해야 한다.

 

 

죄의식·배려심 배우기 위해 정당한 벌 받아야

 

초자아나 양심을 키우지 못하는 왜곡된 교육을 가정에서 받고 자라는 이들의 경우는 학교에서라도 잘못된 교육관을 바로잡아주는 것이 필요하다. 한때 ‘재벌처럼 아이 키우기’라는 잘못된 교육관에 빠진 부모들이 “내 아이는 특별하다” “내 아이는 최고로 키운다” “내 아이는 상처받으면 안 된다”를 주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괴물을 키워낼 가능성이 높다. 배려와 겸손과 절제를 모르기 때문이다. 상처, 열등감, 물질적 결핍으로 인한 불편함은 우리가 성숙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물질적인 능력은 있지만 교육관이 삐뚤어진 부모들은 결국 인격이 성숙하지 못한 자녀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으며 곤경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정신질환 때문에 묻지마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은 일단 설득이나 교화로 바로잡을 수는 없고 전문의 상담과 약물치료가 꼭 필요하다. ‘내 가족이 설마’ 하면서 치료를 차일피일 미루거나 가족의 질병을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아예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부정해서 치료 기회를 놓친다면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낳게 되기도 한다. 이상한 징후가 있다면 전문의에게 의뢰해 필요하다면 조속히 입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혐오범죄는 사회의 성숙도나 정치인들의 도덕적 리더십에 크게 좌우된다. 예컨대 나치즘이나 파시즘, 일본 군국주의에 휘둘려 일어난 2차 세계대전의 경우를 보자. 적지 않은 지식인들조차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에 빠져, 폭력적 체제를 옹호하거나 적극 도왔다.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자신들의 폭력적 통치를 합리화하고 분노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힘없는 소수자들을 박해하거나 은근히 폭력을 조장하기도 했다. 난징 대학살, 관동 대지진 때 죄 없는 중국인과 한국인이 일본인에 의해 학살됐던 사건들이 그 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자신들의 범죄나 부패를 덮기 위해 소수집단을 지목해 분노를 그쪽으로 돌려버리는 종교 지도자들이 적지 않다.

 

인간은 동물적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폭력적 성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또 성경에 나오는 ‘거룩한 분노’나 ‘독립 만세’를 부르거나 독립군이 되어 싸울 때처럼 정당하게 분출되어야 할 분노도 있다. 그러나 약자를 대상으로 하거나, 죄 없는 이들을 향한 폭력이나 분노는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예방돼야 하고,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치료받아야 할 이상행동일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최근 일고 있는 ‘어이없는 갑질들과 묻지마 폭행에 대한 분노’는 이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세우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보다 정교한 대책이 마련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사실이 규명돼야 한다. 잘못된 성장 과정에서 양심을 지니지 못한 채 괴물이 된 이들도 인간답게 죄의식과 배려심을 배우기 위한 정당한 벌을 받아 반성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이들은 치료를 받도록 사회적 보고와 치료 체계도 정비돼야 한다.

 

후진국의 경우, 죄 없이 맞거나 죽어가는 약자들이 적지 않지만 대부분 공론화되지 못한다. 우리가 최근 묻지마 폭력, 갑질이라는 폭력성에 대해 분노하는 것도 어쩌면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넘어가는 일종의 관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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