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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보육교사 살인 사건, ‘얼굴 없는 범인’ 드러날까

경찰, 9년 만에 재수사…동물 사체 실험까지 진행

정락인 객원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16(Wed) 17:00:00 | 1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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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애월읍 구엄리에 사는 이경신씨(여·27)는 유치원 보육교사로 일했다. 이씨는 2009년 1월31일 오후 7시쯤 제주시청 대학로에서 여고 동창생들을 만나 술자리를 가졌다. 이날 모임에는 이씨를 포함해 4명이 함께했고, 자정을 넘긴 2월1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이씨는 오전 2시45분쯤 모임 장소에서 친구들과 나와서 택시를 탔다. 그는 집으로 가지 않고 제주지방법원 앞 도로에서 도중하차했다. 어머니에게는 ‘찜질방에서 자고 간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다시 택시를 타고 남자친구 집이 있는 “용담동으로 가자”고 했다.

 

남자친구와 만난 이씨는 시비가 벌어졌다. 이씨는 원래 담배 냄새를 싫어했는데 남자친구가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우자 두 사람은 심하게 다퉜다. 화가 난 이씨는 곧바로 남자친구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 오전 3시3분쯤 ‘니가 정말 이럴 줄 몰랐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씨는 집으로 가기 위해 114를 통해 애월·하귀 연합콜택시에 전화를 걸었지만 택시가 배차되지 않았다. 그러고는 행방불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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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방불명 후 농업용 배수로에서 시신 발견

 

다음 날 이씨는 어린이집에 출근하지 않고 연락도 두절됐다. 가족들은 2월2일 오전 9시10분쯤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경찰은 이씨의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실종 당일 새벽 4시4분쯤 애월읍 광령초등학교 기지국 인근에서 전원이 꺼진 것을 확인했다. 이씨가 모임 장소로 타고 간 승용차는 이도2동 옛 제주세무서 후문 무료주차장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정황상 범죄 관련성이 높다고 보고 실종 신고 하루 만인 2월3일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먼저 이씨를 찾는 전단을 만들어 배포했다. 경찰, 군인, 119구조대 등을 투입해 휴대전화 신호가 끊긴 지역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다.

 

실종 5일 만인 2월6일 오후 3시20분쯤 아라동 은성사회복지관 옆 밭에서 한 주민이 이씨의 가방을 발견했다. 가방 안에는 휴대전화와 지갑, 신분증 등 소지품이 들어 있었다.

 

2월8일 오후 1시50분쯤 한 마을주민이 애월읍 하가리 고내봉을 산책하다가 농업용 배수로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마네킹 같은 것이 수풀에 가려져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여성의 시신이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시신의 신원이 보육교사 이씨라는 것을 확인했다. 실종 8일 만이었다. 발견 당시 이씨는 실종 당일 입었던 밤색 무스탕 상의를 착용하고 있었다. 치마와 속옷 등 하의는 모두 벗겨진 상태였다. 시신은 비좁은 수로에 엎드려 있었다.

 

시신 발견 장소는 농촌 마을인 탓에 인적이 드물고 잡풀이 우거진 곳이었다. 인근에 폐쇄회로(CC)TV도 없었다. 경찰은 정확한 사망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사망 원인은 경부압박질식사(목졸림)로 나왔고, 성폭행 흔적은 없었다. 이씨의 유류품에서는 제3자의 유전자(DNA)도 발견됐다.

 

하지만 사망 시점이 분명치 않았다. 더구나 국과수와 경찰이 추정한 사망 시점이 판이하게 달랐다. 국과수는 시신의 건조와 부패 상태, 체온, 사체의 피부 반점 등을 고려할 때 사망 시점을 발견되기 1~2일 전으로 추정했다. 이에 반해 경찰은 시신이 별로 부패하지 않은 것은 당시 발견 장소가 춥고 햇볕이 거의 들지 않는 응달이라는 점 때문일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사망 시점은 용의자를 특정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하지만 국과수와 경찰이 이견을 보이면서 수사에 혼란이 불가피했다.

 

경찰은 사망 시점과는 별도로 용의자를 특정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숨진 이씨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와 휴대전화 신호가 끊긴 지점, 가방이 발견된 지점 등을 종합해 범인이 이동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로를 따라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초기에는 이씨의 남자친구도 용의선상에 두고 통신기록을 분석하고 집과 차량 등을 수색했지만 이상한 점은 없었다.

 

경찰은 숨진 이씨가 마지막에 택시에 탔을 것으로 보고 택시기사들을 상대로 집중조사를 벌였다. 이씨의 시신에 특별한 외상이나 타박상이 없는 것을 보면 스스로 차에 탔을 가능성이 높았다. 인적이 드문 새벽에 거부감 없이 차에 탔다는 것은 해당 차량이 택시라는 것에 무게가 실렸다.

 

범인은 경찰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동선을 헷갈리게 했다. 실종 지점-휴대전화 전원이 꺼진 지점-가방 발견 지점-시신 발견 지점이 제각각 달랐던 이유다. 범인은 이씨를 살해해 시신을 유기한 후 각각 다른 곳으로 이동해 휴대전화 전원을 끄고, 가방을 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시신 유기 장소나 소지품이 발견된 곳도 제주도 지리에 밝지 않으면 쉽게 알 수 없는 곳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레 택시기사들이 용의선상에 올랐던 것이다.

 

경찰은 제주도에서 택시를 운행하는 5000여 명을 전수조사했고, 통신 수사와 운행기록장치인 타코미터 기록 등을 토대로 조사했다. 그리고 10여 명으로 용의자를 압축했다. 이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인 끝에 마지막으로 남은 수상한 택시기사가 한 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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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여성 이씨, 실종 당일 살해 결론

 

40대인 A씨는 조사 과정에서 여러 차례 진술을 번복했다. 심지어 사건 당일 손님을 태운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태운 적이 없다”고 했다가 “남자 손님을 태웠던 것 같다”며 오락가락했다.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는 ‘거짓’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거짓말탐지기는 참고만 될 뿐 범행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A씨를 용의자로 특정하기 위해서는 물증이 있어야 했다.

 

경찰은 증거를 찾기 위해 A씨의 택시를 정밀 감식했다. 하지만 숨진 이씨와 관련된 흔적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이씨의 유류품에서 발견된 DNA와 A씨의 DNA를 대조했으나 불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물론 용의자가 택시가 아닌 자가용 운전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피해자 이씨가 술을 마신 상태였기 때문에 “목적지까지 태워준다”며 차량에 태운 후 범행에 나섰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수사도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진행됐지만 더 이상의 진전을 보이지는 못했다. 결국 2012년 6월 수사본부까지 해체되면서 지금까지 미제(未濟)로 남았다.

 

제주경찰청은 2016년 2월 ‘장기미제사건팀’을 신설한 후 올해 3월 ‘보육교사 살인사건 TF’를 구성했다. 우선 국과수와 경찰이 이견을 보이고 있는 사망 시간을 특정하기 위해 개와 돼지를 이용한 부패 실험을 실시했다.

 

여기에는 법의학 교수와 검시관, 경찰수사연구원 교수 등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시신이 발견된 배수로에서 개 3마리와 돼지 4마리를 이용해 5차례에 걸쳐 실험이 진행됐다.

 

사건 당시의 상황을 최대한 맞추기 위해 동물 사체에는 피해자가 착용한 무스탕까지 입혀 실험을 했다. 기후도 최대한 동일 조건에 맞췄다. 실험 결과 이씨는 실종 당일 살해된 것으로 결론이 났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전면 재수사에 들어갔다. 9년 동안 숨어 있던 얼굴 없는 범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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