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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림의 시와 사진 에세이 《애인이 있는 시간》

보물처럼 간직한 또 다른 자아의 보고서

조창완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20(Sun) 10:03:59 | 14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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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신현림 시인은 《세기말 블루스》를 통해 밀레니엄을 앞둔 사람들에게 ‘시’라는 장르의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어둡고 고단한 나날이여, 식구를 괴롭힌 시련이여, 궁상떨게 만든 외로움이여! 우리를 조금이라도 인간답고, 겸손하게 만들고 있으니 오늘만은 푹 쉬시지요’라는 후기처럼 시인에게 서른 초반까지는 험난한 시간인 듯하다.

 

이후 시인은 디자인과 사진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그리고 ‘시와 사진의 경계를 넘나드는 22년 전방위 작가로서 낯설고 기이하고 미스터리한 삶의 과정’을 보여주는 한편, 설치 및 사진에서 페인팅으로 확장해 14년째 사과 던지기 작업을 하고 있다. 정지된 대상 앞에 움직이는 사과를 넣음으로써 사진의 한 일가를 이뤄가는 상황이다.

 

작가는 2000년대 초반에 《The Blue Day Book》이라는 기이한 시리즈를 번역 소개해 반향을 일으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녀의 가장 큰 작업은 국내외 시를 다양한 독자에게 소개하는 일이었다. 또 다른 작업은 젊은 시절부터 몰두했던 사진과 그림을 독자들과 연결하는 도슨트 같은 역할이었다.

 

최근 출간한 《애인이 있는 시간》은 그런 작가의 삶의 여정이 잘 녹아 있는 책이다. ‘신현림 매혹적인 시와 사진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사진가로서 그녀가 쓸쓸하고 달콤한 시간에 애인같이 붙었던 사진과 역시 그런 느낌으로 만난 시를 접목한 책이다. 현재 예약판매 중인 《시 읽는 엄마》까지 더해진다면 그녀가 얼마나 부지런한 작가인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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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림 작가에게 ‘애인’은 시와 사진

 

“《애인이 있는 시간》은 솔로인 제에게도 가장 꿈꾸고 그리운 시간이라 제목을 정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제게 그 애인이 예술인 것인데, 기쁘기도 하고 슬픈 것이죠.”

 

이번 책은 제목처럼 그녀가 애인을 찾는 여정이다. 그런데 그 애인은 사람애인이 아닌 쓸쓸하고 달콤한 시간에 애인처럼 다가온 사진과 시다. ‘소처럼 일하고 공부’하는 작가의 이번 책이 소중한 것은 그녀가 50여 개국을 여행하면서 만난 가장 인상적인 사진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여정을 가진 작가가 사랑에 빠지는 대상도 역시 작가의 삶과 비슷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작가는 실패하고 좌절한 다른 작가에게 유독 애정이 강하다. 사진도 헤덴 파델 등 좌절한 느낌이 강한 작가에 공감하고, 시도 중국 작가 톈허의 ‘만일 내가 죽으면 친애하는 여러분/ 아무쪼록 내 몸에서 고단을 꺼내 주십시오/ 내 목숨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은 그것밖에 없습니다’라는 시구에 꽂힌다.

 

그녀를 공감시키는 또 다른 힘은 오랫동안 가져온 아라키 노부유시의 사진 속에 나타나는 가학적 욕구들이다. 흔히 변태적 욕망으로 읽히는 이런 작품은 결국 김남진 작가의 전사 사진처럼 ‘눈물이 나는 슬픔’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런 그림에 대한 사랑은 결국 평온한 사랑에 대한 갈구를 근본에 담고 있는데, 이런 정서는 김녕만 작가의 ‘고향’에서처럼 소박한 삶의 모습으로도 나타난다. 작가의 의도는 명쾌하다. 울림 있는 성찰과 깨달음을 주는 이 사진들 뒤에 표지판처럼 시를 배치했다. 시로 흩어진 생각이 모아지고, 미처 생각지 못한 현실과 마주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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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사진, 그림에 집착한 20년의 여정

 

이번에 다룬 이미지들은 작가가 50개국을 여행 다니는 동안 특히 유럽 최고의 아트페어와 미술관을 돌 때 만난 세계 미술과 사진이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한 포털사이트와 일간지 웹진에 연재한 원고들을 중심으로 했다.

 

사실 지금의 신 작가는 책 한 권으로 정리하기에는 한계가 많다. 우선 최근 가장 독자들에게 인상적인 활동은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아들아, 외로울 때 시를 읽으렴》 《신현림의 미술관에서 읽은 시》 등 시 읽기와 《얘들아, 세상은 거대한 예술 창고란다》 등과 같은 예술기행 책들의 출간이었다. 그런데 이런 책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비롯해 아버지와 딸에 대한 지긋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많은 독자들에게 파격적인 모습으로 기억되는 작가가 정작 가족에게 더 깊은 정을 두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신비하다.

 

“삶이라는 슬픔 속에 가족도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만큼 변치 않고 저를 응원하고, 사랑해 준 존재들이죠. 살아가는 뿌리 같은 거라 여겨요. 그런 힘들이 이런 책들을 만들게 했습니다.”

 

작가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시와 이미지를 보는 확신에 관한 것이었다. “사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많이 보는 것밖에 없어요. 저도 20대부터 이미지 공부를 즐겁게, 하지만 고시 공부하듯 했어요. 월간미술 20년 구독자고, 미대도 다녔어요. 사진작가 이전에 미대를 가려고, 데생부터 해 봤는데요. 이런 고통과 고뇌의 실제 경험이 지나다보니, 딱 보면 작가의 의도나 작품 수준을 판단하지요.”

 

결국 이런 과정을 지나니 시는 어렵지 않았다. 그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림 한 점, 시 한 수를 읽으면 무엇이 아름답고 참다운 것인지 눈이 뜨이기 시작할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항상 곁에 두고 보면서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고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작가를 세상에 각인시켰던 시로 다시 독자를 만날 수 있는가를 물었다. “시는 매일 쓰는데요. 완성이든 아니든 짧게라도 시구를 쓰고 있어요. SNS에나 올리는 정도고요. 다행히 늦가을에 6번째 시집을 낼 겁니다. 시 정신은 모든 예술의 뿌리라 잃어버릴 수가 없어요. 잃으면 작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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