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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 복구 봉사자들과 함께하는 日 오지 마을 축제

[이인자 교수의 진짜일본 이야기] “이제는 멀리 사는 친척 같은 존재예요”

이인자 일본 도호쿠대학 교수(문화인류학)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22(Tue) 10:00:00 | 14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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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왔어요. 작년에 결혼한 남편하고요. 독일 사람이지만 일본말도 잘해요.”

“아! 어서 와요. 고베(神戶)에서 왔군요. 저도 어제 나고야(名古屋)에서 왔어요. 결혼 축하해요.” 

“1년에 한 번은 꼭 보네요. 반가워요.”

 

회색빛으로 낮게 드리워진 하늘을 파란 바다가 이고 있던 지난 5월13일 새벽, 미야기(宮城)현 오가쓰(雄勝)초 다치하마(立浜)의 마쓰리(祭り)날, 커다란 시골집에 30여 명의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인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스에나가 센이치로(末永千一) 마을 회장 집은 건평이 100평이나 되는 넓은 집이지만 이날만은 좁게 느껴질 정도로 손님으로 꽉 찼습니다.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역만 열거해도 야마구치현, 고베, 교토, 나고야, 하마마쓰, 지바, 도쿄, 이바라키…. 연령도 2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합니다. 지역 특산물인 듯싶은 선물 꾸러미를 들고 와 스에나가씨 부인에게 전합니다. 명절에 모인 친척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8년 전 대지진으로 쓰나미 피해를 입은 마을을 복구하기 위해 이곳을 찾아와 활동한 봉사자들입니다.

 

고속철도나 비행기를 타고 오면 센다이에서 내리게 됩니다. 그곳에서 이 마을까지 다시 150km는 들어와야 하고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 수단이 없어 차를 빌리거나 택시를 타고 들어와야 합니다. 그런데도 5년 전부터 매년 이날을 기억하고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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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같은 마을 축제

 

본격적으로 마쓰리가 시작되자 마을 어귀 산 중턱에 있는 기타노(北野) 신사에서는 인구의 몇 배나 될 법한 사람들이 엄숙하게 의례를 올리고 있습니다. 젊은 청년들이 하얀 의례복을 입고 가마를 짊어지고 갑니다. 무게가 800kg이나 되는 가마를 짊어지고 산에서 바다로 그리고 다시 3km는 떨어져 있는 언덕 위의 마을로 마쓰리 음악에 맞춰 행진합니다. 흰 의례복을 입고 가마를 짊어지는 것은 마을 장로에게 인정받은 젊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명예로운 역할입니다. 이날 가마를 짊어진 사람은 25명이었습니다. 이 중 마을 출신 청년이 6명이었습니다.

 

이렇듯 스에나가씨 집만이 아니라 마을 전체가 마쓰리를 맞이해 손님으로 가득합니다. 현재 이 마을은 18세대 인구 50명의 작은 어촌입니다. 또한 오지로 불릴 정도로 교통이 불편하고 일상적인 생활에 필요한 시설이나 인적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과소지역(過疎地域)의 한계마을(限界集落)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날만은 2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마쓰리를 치르고 있습니다.

 

“이제는 멀리 사는 친척 같은 존재예요. 마을 축제는 우리들에게 있어 귀성하는 명절이 되고요.”

 

작년 가을에 결혼한 외국인 남편을 소개하기 위해 함께 왔다는 후카야 요코(深谷洋子)씨가 그렇게 말하자 모두 납득한다는 듯한 표정을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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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리에 재해 복구 도운 봉사자들 초대

 

재해 복구를 위한 봉사가 어떤 것이었기에 이렇게 먼 곳에서 8년이 지난 지금도 찾아오는 걸까요. 이곳 오가쓰초의 다치하마는 쓰나미로 50여 채 있던 집이 유실되거나 검은 바닷속 진흙 섞인 오물로 침수됐습니다. 온전하게 남은 집이 1채뿐이었으니 그 피해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아시겠지요. 이렇게 심한 피해를 입었는데 길이 막히고 너무 깊은 곳에 있어 자위대가 들어오는 데 일주일이 걸린 지역입니다. 그때까지 마을 사람들은 힘을 합해 1채 남은 집을 피난지로 삼아 견뎌냈습니다.

 

재해가 나자마자 전국에서 봉사를 위해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하지만 너무 광범위한 피해에 봉사자들을 어떻게 배치하고 관리해야 할지 엄두를 못 냈지요. 그러한 상황에서 전체를 통괄하기 위해 만들어진 봉사센터에서는 아침 9시에 나가 오후 3시까지 활동을 마치고 돌아와 보고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 그리고 안전한 장소만 봉사활동이 이뤄지는 결과를 낳았지요. 무엇인가 하겠다고 전국에서 모여든 자원봉사자들은 뽑혀 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용직 노무자들처럼 기다리는 시간도 길었습니다. 그러던 중 활동에 참여했던 고베 출신 청년이 오지인 오가쓰의 다치하마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는 1997년 고베 대지진의 재해자였고 당시 자원봉사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제는 자신이 갚을 차례가 왔다고 생각해 대지진 직후 활동에 참여한 청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들어가기 어려운 오지는 더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자전거를 빌려 다치하마로 갔습니다. 다음 날 6명이 마을에 들어가 텐트 생활을 하면서 복구를 도왔습니다. 그들은 ‘청소공부회’라는 전국적인 조직의 중부지방 회원과 ‘동일본구조대’라는 재해 직후에 결성된 하마마쓰(浜松)시의 봉사활동 멤버였습니다. 60대였던 그들은 전원 중소기업의 사장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회사 직원을 조직적으로 일주일씩 오게 해 3개월간 매일 마을과 바다를 복구하는 데 전념했습니다. 3개월간 3000명 일손으로 마을과 바다를 복구해 냈습니다. 그 사이 6명의 사장과 한 청년은 계속 거주하면서 마을 사람과 침식을 함께하고 어려운 처지를 깊이 이해하면서 지냈던 것입니다.

 

3개월이 지나 6명의 사장들은 돌아갔습니다. 그 뒤의 지원은 다시 양식업을 할 수 있는 배와 어구 등을 마련할 경제적인 부분이라 인식하고 모금 활동을 합니다. 단지 도와 달라는 것이 아니라 이곳의 양식업을 후원하는 지원자 자격을 부여합니다. 1만 엔을 1구로 책정하고 1구당 3000엔 상당의 수확물을 제공하겠다는 형식을 갖춥니다. 이렇게 모아진 모금은 1억 엔을 넘었고 이 자금은 다른 어촌보다 일찍 그리고 계획적으로 어업을 시작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가리비, 굴, 멍게를 2년 동안 성공적으로 길러 수확하게 됐습니다. 재해로부터 3년째 되던 해 마쓰리는 이렇게 도와준 봉사자들을 초대한 첫 잔치였습니다.

 

이 마을에서 600년간 이어 내려온 마쓰리였지만 쓰나미 직후에는 복구될 모습이 상상이 안 됐다고 합니다. 추운 날씨에 피난생활을 할 때 나무들이 물에 젖어 모닥불을 피우는 데도 어려웠기에 창고에 보관된 마른 가마를 태울까 말까 망설였을 정도라고 했습니다. 2013년 초대된 봉사활동자들은 300여 명에 달했습니다. 대형 관광버스 5대가 이 작은 마을을 꽉 채웠습니다. 도와준 덕분에 우리가 얼마나 훌륭하게 복구됐는지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기에 마쓰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대부분 도시생활을 하고 있는 봉사자들로서는 처음 참석하는 시골마을의 마쓰리입니다. 그것도 구경꾼이 아닌 초대받아 일원으로 참여하는 마쓰리는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선물입니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그들은 따뜻한 고향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현대 도시사회에서 고단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시골의 경치를 즐기면서 ‘힐링해야 한다’ ‘힐링하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일본의 대재해는 이렇게 과소지역의 한계마을을 기억하고 찾아주는 수많은 먼 곳의 친척을 낳았고 도시의 봉사자들에게 경치만이 아닌 내 사정과 변화를 1년에 한 번은 전하고 만날 수 있는 고향의 명절을 만들어 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5월13일에 다녀온 마쓰리는 18세대 50명의 마을 사람만의 마쓰리라는 생각이 안 들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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