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 사건으로 남은 ‘이름 없는’ 시신들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21 10:24
  • 호수 1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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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 확인 가능한 얼굴과 팔 훼손해 따로 유기…면식범 가능성 높아

 

국내에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숱한 미제(未濟)사건이 존재한다. 이 중에는 시신은 있으나 신원을 확인하지 못해 미해결 상태인 것도 있다. 인천 굴포천 마대자루 변사 사건, 천안 쓰레기봉투 토막살인 사건, 인제 광치령 토막살인 사건 등이다. 도대체 피해자는 누구일까.

 

지난 2016년 12월8일 오전 11시47분쯤 인천시 부평구 굴포천에서 환경미화원 황아무개씨(67)가 노란색 마대자루 하나를 발견했다. 그는 굴포천 유수지 수로에 마대자루가 보여 소각장으로 보내기 위해 쓰레기 집하장으로 가져간 뒤 이상한 기분이 들어 자루를 열어봤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상당히 부패된 성인 여성의 시신이 들어 있었다. 황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시신이 발견된 곳은 인천 삼산경찰서와 불과 100m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마대자루 속에서 발견된 여성은 키 150cm 정도에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양말은 신고 있었지만 신발은 착용하지 않았다. 경찰은 시신의 복장으로 볼 때 발견되기 몇 개월 전 실내에서 살해된 뒤 마대자루에 담겨 버려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시신은 부패가 심해 지문 채취가 불가능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부검 결과 피해자의 연령은 30대에서 40대, 혈액형은 B형으로 나왔다. 사망원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이었다. 경추와 늑골이 일부 골절된 사실은 있으나 어디서 어떻게 발생한 것인지는 불분명했다. 경찰은 마대자루에서 단서를 찾기 위해 출처를 추적했고, 그 결과 2011~12년 사이 부평구의 주민센터에서 배포한 것을 확인했다. 시중엔 유통되지 않아 피해자가 부평구에 살았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더 이상의 단서가 없었다. 시신이 발견된 인근 지역의 폐쇄회로(CC)TV를 확인했으나 시신의 신원이나 용의자를 특정할 증거를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 국과수가 3D 스캐닝 기법으로 몽타주를 작성해 전국 경찰과 공조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피해자의 신원을 밝히지 못하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 일러스트 안병현


 

양손 발견 안 돼 지문 대조 불가능

 

2006년 1월10일 오전 9시20분쯤 충남 천안시 성환읍 한 빌라 쓰레기 적치장에서 토막 난 여성의 시체가 발견됐다. 고물 수집상인 신아무개씨(43)가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과정에서 헌옷이 잔뜩 들어 있는 흰색 쓰레기봉투(50L)가 나왔다.

 

신씨는 쓰레기봉투를 풀어보고는 경악했다. 그 안에서 토막 난 시신 일부가 나왔던 것이다. 경찰이 출동해서 보니 시신은 참혹한 모습이었다. 예리한 흉기로 목과 다리 등 관절 부분이 7부분으로 잘려 있었고, 얼굴과 다리는 있었지만 팔과 몸통은 없어진 상태였다. 지문이 있을 만한 부분은 따로 유기한 것으로 보였다.

 

경찰은 나머지 토막 난 부분을 찾기 위해 쓰레기 적치장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더 이상의 시신 부위나 소지품 등은 나오지 않았다.

 

부검 결과, 사망 원인은 경부압박질식사(목 졸림)로 추정됐다. 시신의 목에는 엄지손가락 자국과 피가 몰리며 생긴 울혈이 남아 있었다. 피해자의 연령은 50대 중후반, 키는 150~155cm, 통통한 체형(77사이즈)으로 나왔다. 국과수는 사망 시각과 관련해 시신을 발견하기 약 1~2일 전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찰은 시신이 잘려나간 부분에 주목했다. 시신의 훼손 부위는 일반인이 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도 정교하고 깔끔하게 관절 부위만 절단돼 있었다. 누가 봐도 전문가 솜씨였다.

 

경찰은 범인이 의료업계에 종사하거나 아니면 가축을 도축한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추정했다. 시신 토막에 사용한 흉기도 일반 가정에서 쓰는 칼보다는 도축용으로 특수하게 제작한 칼에 더 가깝다고 나왔다.

 

사건추적 프로그램에 방송된 변사자의 몽타주 © KBS 캡처


이를 토대로 인근에 위치한 도축업체와 정육점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였으나 유력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피해자와 미귀가자 신고 명단을 대조했지만 허사였다. 경찰은 탐문 범위를 확대해 성환과 직산, 성거 등 시신이 발견된 인근 지역 주민 등을 상대로 수사를 벌였다. 역시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피해자는 치과 치료를 받은 흔적이 있었다. 위 앞니와 왼쪽 아래 어금니 3개를 발치한 후 보철치료를 받았다. 경찰은 천안에 있는 치과에서 10만 건 이상의 치과 진료기록을 확보했다. 이를 분석하면 피해자의 신원을 알 수 있는 단서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이를 위해 치기공 기술자 등을 상대로 수사를 확대했지만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하지 못해 수사는 난항에 빠졌다. 피해자가 누군지만 알면 금세 해결될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양손이 발견되지 않아 지문 대조가 불가능했다.

 

다만 시신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앞니에 ‘v자형 홈’이 있었는데, 이것은 중국인이나 중국동포(조선족)의 식습관에서 생기는 것이다.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해바라기씨를 자주 까먹는 식습관이 있다. 이때 씨껍질을 앞니를 이용해 벗기는데 이것으로 인해 홈이 파이는 특징이 있다.

 

경찰은 또 시신을 감싸고 있던 헌옷 11점(상의 5점, 바지 6점)의 출처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였다. 대부분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 제품이었다. 한국에서 OEM 주문을 통해 제작한 것이 아닌 중국 내에서 생산돼 유통되는 것이었다.

 

경찰은 여러 정황상 피해자가 한국인보다는 중국인이나 중국동포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성환읍의 경우 지리 특성상 평택과 가까워 중국인이나 중국동포의 입국이 잦았다. 인근이 중국인을 포함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살던 지역인 것도 이를 뒷받침했다. 

경찰은 공개수사로 전환하고 시신의 사진을 토대로 몽타주를 만들었다. 피해자는 계란형 얼굴로 이마가 넓고 쌍꺼풀이 없었다. 입이 돌출됐으며 미간 사이에 옅은 점이 있었다.

 

경찰은 몽타주가 실린 전단지를 천안은 물론 인근 지역인 아산, 평택, 안성 등까지 약 5만 장을 배포했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현재 피해자의 시신은 무연고자로 분류돼 천안시 동남구의 ‘무연고 묘지’에 매장돼 있다.

 

 

경고 의미로 토막 시신 유기

 

강원도 인제 ‘광치령 토막살인’도 여전히 미제로 남아 있다. 2003년 4월18일 오전 10시40분쯤 강원도 인제군 가아리 광치령 고개 인근 31번 국도에서 작업하던 인부가 마대자루 3개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마대자루 안에서 토막 난 시신이 나왔는데, 배꼽과 대퇴부를 기준으로 세 토막이 나 있었다.

 

첫 번째 마대에서는 목부터 가슴까지, 두 번째 마대에서는 배꼽부터 넓적다리까지, 세 번째 마대에는 다리 2개가 각각 담겨 있었다. 신원을 알 수 있는 머리와 양팔은 사라진 상태였다. 경찰은 나머지 신체를 찾기 위해 기동대와 전·의경, 군 병력까지 동원해 주위 야산과 하천 등을 대대적으로 수색했다. 하지만 머리와 팔은 발견할 수 없었다.

 

대체 누가 왜 이토록 잔인하게 시신까지 훼손한 것일까. 피해자의 신원 파악이 시급했다. 하지만 머리와 지문을 확인할 수 있는 양팔이 발견되지 않으면서 수사는 난관에 부닥쳤다.

 

경찰은 시신의 감정을 위해 국과수에 부검을 의뢰했다. 시신에서 피가 모두 빠져나가 시반(사후에 시체의 피부에서 볼 수 있는 자줏빛 반점)이 형성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사망시각을 추정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다만, 부검을 통해 피해자를 추정할 수 있는 결과가 나왔다. 피해자의 혈액형은 A형이었다. 나이는 30~40대이며 성별은 남성이었다. 머리가 없는 상태에서는 160cm, 몸무게 68kg로 나왔는데, 머리가 있을 때를 가정하면 키 185cm, 몸무게 90kg의 근육량이 많은 거구의 체형으로 추정됐다.

 

사건 발생 당시 경찰이 배포한 공개 전단


시신에서는 많은 칼자국(자창)이 발견됐다. 가슴 부위에만 21개였는데, 정확하게는 왼쪽 16개, 오른쪽 6개였다. 이 중 7곳은 정확히 심장을 찔렀다. 자창의 길이는 평균 4~5cm, 최대 깊이가 20cm에 달했다. 사망원인은 칼에 여러 번 찔린 상처인 ‘다발성 자창’으로 나왔다.

 

경찰은 칼자국이 시신의 상반신에 집중된 것과 저항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볼 때 피해자가 팔이 묶인 상태였을 것으로 판단했다. 범행 도구는 칼자국은 회칼, 시신을 토막 낸 것은 날이 있는 휴대용 전기톱으로 추정됐다.

 

시신에서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성기를 의도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시술을 받은 흔적이다. 조폭이나 유흥업소 종사자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것이다.

 

범인들은 시신을 암매장하는 등의 방법으로 범행을 완전히 감출 수 있었다. 그런데도 토막 난 시신을 발견되기 쉬운 산간 고갯길 도로변에 유기했다. 뭔가 의도가 있지 않고서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범죄 전문가들은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분석했다. 피해자를 잔인하게 살해한 뒤 토막 낸 시신을 발견되기 쉽게 유기한 것은 “너희들도 배신하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보면 피해자는 폭력조직이나 유흥업소에 종사하다가 조직과 갈등을 보이면서 희생됐을 수 있다. 사업관계에 있었다가 변을 당했거나 청부살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시신 유기 장소에 범인을 좁힐 수 있는 단서가 있다. 이곳은 아는 사람만 갈 수 있는 외진 길이다. 범인은 이 지역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거나 최소 몇 번은 지나가 봤을 것으로 보인다. 지리감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프로파일러들은 범인이 인제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예상했다. 결국 경찰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머리와 양팔이 없는 시신이 누구인지를 규명하지는 못했다.

 

토막살인 사건의 경우 범인이 면식범일 확률이 아주 높다. 특히 신원 확인이 가능한 얼굴이나 양손을 훼손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피해자의 신원이 밝혀지면 가장 먼저 자신이 용의선상에 올라설 수 있기 때문이다.

 

2003년 3월에 발생한 충북 제천 ‘독신녀 토막살인 사건’의 범인도 주변 인물이었다. 현재 범인은 15년째 도피 중이다. 2014년 12월 발생한 수원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도 범인은 피해자의 동거남인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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