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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왜 칼 마르크스의 동상에 불을 질렀나

中, 탄생 200주년 마르크스 고향에 동상 설립…獨 경찰, 발화자 수사 중

강성운 독일 통신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22(Tue) 10:00:00 | 14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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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10일, 독일 트리어시(市) 소방서는 이른 아침부터 진화 작업에 나섰다. 광장에서 방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타깃은 불과 5일 전 공개된 독일의 사상가 칼 마르크스의 대형 동상이었다.

 

트리어시 경찰은 동상에 현수막을 걸고 불을 붙인 용의자 찾기에 나섰다. 현수막이 완전히 불타 어떤 문구가 적혀 있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수색의 범위를 좁혀야 하지만, 현재까지 별 진전이 없다. 지난 2년간 새로운 칼 마르크스 동상 설치 계획이 트리어시 의회는 물론 시민사회의 적지 않은 반발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누가, 왜 칼 마르크스의 동상에 불을 질렀나.

 

5월5일, 트리어시에서 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모젤 강변에 위치한 트리어는 로마 시대의 유적지로 잘 알려져 있지만, 《자본론》과 《공산당 선언》을 쓴 마르크스가 태어나 17세까지 자란 도시이기도 하다.

 

 

中 정부 제안으로 설치된 마르크스 동상

 

4000여 명의 관중이 모인 이날 기념식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새로운 마르크스 동상 공개식이었다. 총 높이 5.5m, 무게 2.3톤의 이 육중한 기념물은 로마 시대에 건축된 트리어시의 상징 포르타 네그라(검은 문) 바로 곁에 세워졌다. 이 동상은 긴 코트를 입은 마르크스가 한 손에 책을 들고 앞으로 한 걸음 내딛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볼프람 라이베 트리어 시장은 동상을 공개하는 자리에서 “마르크스는 트리어 사람이다. 우리는 그를 숨길 필요가 없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나 기념식 내내 동상 설치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옛 동독 정부가 저지른 인권탄압 희생자 협회, 반(反)파시즘 평화운동가, 파룬궁 희생자와 티베트 독립활동가, 그리고 극우파인 독일대안당(AfD)이 호루라기를 불고 구호를 외치며 동상 건립 철회를 요구했다. 중국 정부에 비판적인 단체들이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이 동상이 중국 정부의 제안으로 설치됐기 때문이다.

 

트리어시가 이 동상 건립을 검토하기 시작한 건 2년 전, 중국 정부가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시에 동상을 선물하고 싶다”고 제안하면서부터다.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은 이 사상을 탄생시킨 칼 마르크스를 숭배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올해 중국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식에서 “마르크스는 1000년 제일의 사상가이며, 중국 공산당도 마르크스 사상의 뿌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를 위해 그는 모든 당원이 마르크스의 저서를 읽고 깨닫는 것을 생활습관으로 삼아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이미 중국에선 학생들과 공무원들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하고 있다.

 

제안을 받은 트리어시는 젊은 휴머니스트 마르크스의 작은 동상을 세우자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중국의 조각가 우웨이샨은 중국 공산당의 방침을 반영해 선지자적이고 무엇보다 거대한 동상을 제작했다. 그는 지난해 1월 인민일보에 발표한 트리어시 답사기에서 자신의 동상은 “오늘날 중국이 갖고 있는 중국 고유의 이론, 방향, 체제와 문화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한 것”이라고 밝혔다. 뉴질랜드의 중국학자인 제레미 바르메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웨이샨이 “중국이 마르크스의 사상을 국가 지배 이념에 포함시킨 유일한 성공적인 나라이므로 (독일에) 모범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동상을 제작했다고 지적했다. 즉, 마르크스 탄생 도시에 중국의 동상을 세움으로써 ‘진정한 마르크스의 후예’가 독일이 아닌 중국임을 알린다는 말이다.

 

그러나 중국의 초대형 마르크스 동상 건립 계획은 독일 전역에서 비판을 받았다.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3월, 빈프리드 슈파이트감프 독일 카셀대학 역사학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트리어 시민들이 동상 건립에 반대할 만한 이유가 여럿 있다. 중국 정부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모범이 아니며, 마르크스의 저작들은 여러 독재국가에 이념적 기반을 제공했다. 또한 이렇게 ‘기념비’적인 공공 동상을 세우는 것은 오늘날 더 이상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다”라며 독일 내의 반대 여론을 정리했다. 트리어시 의회는 지난해 3월 표결을 통해 당초 우웨이샨의 제안보다 동상의 높이를 60cm가량 낮추고, 제작 및 설치비의 3분의 1을 시가 부담하는 조건으로 새 동상 설립을 허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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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방식으로 상품화되는 마르크스

 

트리어시가 논란을 무릅쓰고 동상 설치를 강행한 이유는 바로 중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다. 트리어대학 중국학 교수 크리스티안 조펠은 “와인과 관광업 외에는 산업이 미진한 트리어와 같은 도시 입장에서는 더 많은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이 매력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트리어시의 기념식에 참석한 궈웨이민 중국 국무원 정보국 부국장도 “새 동상은 독일과 중국 친선의 상징”이라며 “더 많은 중국인들의 주의를 끌 것”이라고 말해 ‘트리어시 홍보효과’를 암시했다.

 

트리어시에는 매년 5만 명 정도의 중국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고, 많은 이들이 마르크스의 생가를 찾고 있다. 이들은 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생가에서 마르크스의 얼굴이 새겨진 엽서, 흉상, 와인 등 각종 기념품들을 사간다. 트리어시와 중국 관광객 모두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한 사상가를 가장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소비하는 셈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 독일에선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슈파이트캄프 교수는 “학계가 마르크스를 더 이상 ‘실패한 체제의 한물간 이상주의자’로 취급하지 않으며, 그의 저술에 대한 재평가를 활발히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공산권 붕괴 이후 다시 한번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적고, 따라서 안전하게 자본주의 체제에 적용할 만한 내용이 있나 점검해 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독 정부가 자행한 고문과 감시를 기억하는 이들은 터부시돼 온 마르크스의 이름이 다시 거론되는 것조차 고통스럽다.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동독 시민들의 추모 사업을 관장하는 후베르투스 크나베는 “불과 얼마 전까지도 동유럽 곳곳에 저런 동상이 서 있었다. 공산주의 독재가 붕괴된 이후 이 동상들이 괜히 제거된 것이 아니다. 공산주의 독재의 희생자들은 옛 서독 도시에 다시금 이런 기념물이 세워지는 것을 괴롭게 여긴다”고 규탄했다. 이를 인식한 듯 창당 당시부터 마르크스주의와 깊은 연관을 맺어온 독일 사회민주당(SPD) 소속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역시 “마르크스를 겁낼 필요는 없지만 황금빛 동상을 세울 필요도 없다”며 역사를 무시한 마르크스 신봉과 상품화를 경계했다. 거대한 동상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그 동상에 불을 붙인 것은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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