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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미투가 한국 미투 ‘고은 시인’ 구했다?

“올해 노벨문학상은 없다” 스웨덴 한림원 대형 스캔들로 시상 취소

이석원 스웨덴 통신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22(Tue) 16:00:00 | 14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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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7일 한반도에서 불어온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평화의 훈풍은 8000km 떨어진 스웨덴에도 도달했다. 당일 전 세계로 생중계된 이 뉴스는 단연 최고의 톱뉴스였다. 하지만 스웨덴은 그렇지 못했다. 스웨덴은 며칠 전부터 보도되기 시작한 ‘스웨덴 한림원(Svenska Akademia)’ 스캔들로 뒤숭숭했다. 남북 정상회담은 스웨덴 한림원 스캔들에 살짝 밀려 뒷전이었다.

 

노벨문학상을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의 스캔들이 처음 터지기 시작한 건 지난해 11월이다. 스웨덴 최대 일간지인 ‘다겐스 뉘헤테르(Dagens Nyheter)’는 스웨덴 한림원 종신위원 중 한 사람인 카타리나 프로스텐손의 남편인 프랑스계 사진작가 장 클로드 아르노가 1996년부터 2017년까지 한림원이 소유한 스톡홀름과 프랑스 파리의 아파트에서 여성 18명을 성폭행했다는 미투 폭로를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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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가 성폭행 사실을 부인하는 가운데 스웨덴답지 않게 이 문제는 대외적으로 크게 확산되지 않고 유야무야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듯했다. 하지만 4월초 스웨덴 한림원 측이 ‘아르노 스캔들’을 조사하던 중 아르노가 아내 프로스텐손을 통해 지난해 수상자인 밥 딜런을 포함해 최소 6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사전 유출했다는 혐의가 드러나면서 사태는 급박하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 종신위원들은 프로스텐손의 사퇴를 요구했지만 관철되지 않았다. 그러자 종신위원 중 시엘 에스마르크, 페테르 엥룬드, 클라스 외스테르그렌이 먼저 사퇴했다. 이어 한림원 최초의 여성 사무총장인 사라 다니우스가 사건을 책임지고 자리에서 물러났고, 이어 사건의 당사자인 카타리나 프로스텐손도 사퇴하면서 서서히 올해 노벨문학상 선정에 대한 위기감이 돌았다. 급기야 4월27일 보수 성향 일간지인 ‘스벤스카 다그블라데트(Svenska Dagbladet)’가 장 클로드 아르노가 스웨덴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빅토리아 공주를 성희롱했다고 보도하면서 그야말로 사건에 기름을 부었다.

 

수년 안에 스웨덴 국왕이 될, 그것도 역사상 세 번째 여왕이 될 사람에 대한 성희롱 보도가 나왔을 때, 한반도의 판문점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오전 회담을 마치고 오후 일정을 시작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스웨덴 시민들의 눈은 8000km 떨어진 판문점의 역사적인 이벤트보다 제 나라 땅에서 벌어지는 치욕스러운 일에 눈과 귀를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5월4일 스웨덴 한림원은 급기야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는다는 발표를 냈다.

 

 

“시상 취소로 고은 추가 논란 피할 수 있었다”

 

1786년 구스타브 3세에 의해 설립된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을 선정·발표하는 스웨덴 최고 권위의 학술단체다. 스웨덴 한림원이 세 들어 있는 스톡홀름 구시가인 감라스탄(Gamla Stan)의 옛 증권거래소 건물은 스웨덴을 찾는 여행자라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다. 그 건물 1층에는 노벨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230여 년 만에 그 명성과 자존심이 땅바닥에 곤두박질쳐진 것이다. 스웨덴 한림원 건물의 소유자는 영구임대된 한림원에 대해 영구임대를 재고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런데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 노벨문학상을 선정하지 않는다는 발표에 대해 뜻밖의 분석이 스웨덴 현지에서 나왔다. 스웨덴의 문인인 아니타 뷕비스트룀은 “노벨문학상을 선정하지 않는 것이 다행인 사람도 있다”며 한국의 고은 시인을 직접 거론했다.

 

뷕비스트룀은 “한국의 고은 시인은 매년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였다. 하지만 그는 최근 한국 내 미투 운동으로 인해 난처한 입장에 처했다. 만약 이번에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문학상을 심사한다면 한국 내 고은 시인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그 같은 고민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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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어 “고은 시인은 한국에서 미투 운동에 거론된 다른 문화예술계 저명인사들과 달리 자신의 혐의를 시인하지도 않았고, 명확한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스웨덴 입장에선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한림원이 듣도록 (한국 내 미투 논란에 대해) 보다 명확한 자기 입장을 피력했어야 했다. 하지만 스웨덴의 ‘미투’가 그가 그러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어줬다”고 덧붙였다.

 

뷕비스트룀의 이 같은 분석에 대해 동의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스톡홀름대학교에서 아시아 문학 석사 과정에 있는 일본 유학생 이치다는 “아르노가 고은을 살렸다”고 단언하면서 “노벨문학상이 예정대로 진행됐더라면 고은은 이번에 후보에 오르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면 왜 그런지에 대해 스웨덴이나 일본 등에서도 이야기들이 나왔을 것이다. 즉 고은은 아르노 덕에 그런 추가 논란에 휩싸이지 않아도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웨덴에서 활동하는, 익명을 요구한 한 한국인 시인은 조금 관점이 달랐다. 그는 “(예정대로 노벨문학상을 선정했을 때) 고은 시인이 수상에 실패했다면 ‘성적 도덕성 때문에 수상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었고, 혹시라도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면 노벨상은 심각한 권위 실추는 물론 밥 딜런을 능가하는 공정성 시비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러니 노벨문학상을 선정하지 않은 것은 고은 시인에게 행운이다”고 말했다.

 

물론 스웨덴 한림원의 내부 스캔들로 노벨문학상이 수여되지 못하는 상황을 고은 시인과 연결 지어 생각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는 의견들도 많다. 고은 시인이 한국 내 미투 운동의 직접 당사자인 상황에서 어차피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교과서에서 작품이 빠지고 각종 문학 업적에 대한 재평가들이 이뤄지는 마당이니, 스웨덴 한림원이 고은 시인을 유력한 후보로 계속 고려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스웨덴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스웨덴 미투’가 ‘한국 미투’ 논란에 선 고은 시인을 구한 꼴이 된 셈임을 부정할 순 없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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