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학자 10명 중 4명 ‘대통령 4년 연임제 바람직’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8.05.21 12:02
  • 호수 1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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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한국헌법학회 공동 헌법학자 102명 설문조사

 

개헌의 불씨는 꺼진 것일까. 현재로선 정확히 판단하기 힘들다. 6월 개헌은 물 건너갔지만, 연내 개헌을 목표로 협상에 나서자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올 9월 정도로 개헌 시점을 느슨하게 잡고 있다.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나머지 야3당은 더욱 적극적이다. 이들 3당은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을 상대로 즉각적인 개헌 협상에 나설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연내 개헌이 동력을 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지방선거 이후 정계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동력이 약해질 수 있으며 9월 정기국회 때 쏟아질 이슈도 개헌정국에 부정적 요인이다.

 

이 과정에서 이번 대통령 개헌안을 짚고 넘어가는 것은 중요하다. 특히 일반국민이 아닌 헌법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것은 하반기 개헌 추진에 있어서 참고사항이 될 수 있다. 시사저널은 헌법연구기관인 한국헌법학회와 공동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한국헌법학회는 정회원 1000명(2018년 5월 현재 기준)이 활동하는 국내 최대 헌법연구단체다. 전국 대학 및 연구기관에서 활동하는 헌법학 전공 박사급 인력(90%)과 판검사 등 고위직 공무원(10%)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번 설문엔 전국 헌법학회 회원 102명이 참여했다. 응답방식은 설문조사 참가자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했다. 일부 질문은 복수 응답도 허용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3월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초청 오찬에서 정해구 위원장(오른쪽)으로부터 국민헌법자문특위 자문안을 전달받았다. © 연합뉴스


 

청와대案 ‘권력독점’ 한국당案 ‘권력갈등’ 우려

 

설문에 응한 헌법학자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헌법 개정 발의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10명 중 4명 이상이 ‘대체로 찬성’(42.2%)을 선택했다. ‘보통’(24.5%), ‘매우 반대’(10.8%)가 뒤를 이었다. ‘매우 찬성’은 3.9%에 불과했다. 대통령 개헌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로는 ‘87체제 개정이 시급하다’(37.8%)와 ‘대선공약이기 때문’(29.7%)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대통령 고유 권한 행사이기 때문’과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했기 때문’이라는 답변은 똑같이 10.8%, ‘국회 갈등 때문’이라는 응답은 4.1%를 차지했다.

 

반대로 청와대 개헌안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로는 응답자의 38.6%가 ‘제왕적 대통령제 분산 의지’를 꼽았다. 이는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청와대 발의안을 비판하는 주요 근거 중 하나다. 야당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이 촛불정신으로 이어졌으며, 문재인 정부 역시 촛불정신과 정체성을 함께하는데 정작 이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고 꼬집고 있다. 두 번째로 많은 응답은 ‘국민 의견 수립이 부족했기 때문’(22.8%)이었다. ‘야당과의 협치 부족’(17.8%)이 그 뒤를 이었다.

 

이번 청와대 개헌안은 30년 만의 시도니만큼 기본권·지방분권 강화 등 여러 가지 내용을 담고 있다. 헌법학자들이 이번 청와대 개헌안 중에서 가장 비판적으로 보는 것은 무엇일까. 응답자의 48.0%가 ‘권력구조 개편’을 꼽았다. 설문에 참여한 A교수는 “야당과의 협의 없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신년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희망하는 권력구조 개편안을 설명했고 집권 여당이 일사불란하게 따라간 점은 정략적이라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그다음으로 많이 나온 응답이 ‘토지공개념’(12.7%), ‘수도 명문화’(8.8%), ‘지방분권’(7.8%)이었다. ‘선거구제 개편’은 2.9%, ‘선거 연령 인하’는 2.0%에 불과했다.

 

6월 지방선거 동시 투표는 현재로선 사실상 물 건너갔다. 이번 설문조사는 4월 중순부터 5월초까지 실시됐기 때문에 개헌 투표시기를 묻는 질문에서 가장 희망도가 높은 의견은 ‘6·13 지방선거 동시 실시’였다. 응답률은 38.8%였다. 청와대 개헌안에 긍정적으로 답한 응답자의 비율이 상당수였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주장하는 ‘지방선거 이후 하반기’에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의견은 26.5%,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 실시하자’는 의견은 23.5%였다. ‘내년에 실시하자’는 의견은 5.1%였다.

 

시사저널은 이번 설문조사에서 자유한국당 개헌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구했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4월초 대통령이 외교·국방 등 외치(外治)를 담당하고, 내치(內治)는 국회가 선출한 책임총리가 맡는 이원집정부제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헌법학자들은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을까. ‘대체로 반대한다’는 의견이 31.4%였고 ‘매우 반대한다’는 의견은 21.6%로 응답자 절반 이상이 부정적인 의견이었다. ‘보통이다’는 의견은 30.4%였다. 반대로 ‘대체로 찬성한다’는 의견은 7.8%, ‘매우 찬성한다’는 의견을 선택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8.8%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현재 청와대와 가장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국회 총리 선출제에 대해서도 ‘매우 반대한다’는 의견이 31.4%로 가장 많았고, ‘대체로 반대한다’는 의견은 그다음으로 많은 30.4%였다. 두 응답을 합친 부정적 생각은 60% 이상으로 높게 나타나 자유한국당 개헌안에 대한 부정 의견보다 높게 나타났다. ‘보통이다’를 선택한 의견은 25.5%였다. ‘대체로 찬성한다’는 의견은 11.7%, ‘매우 찬성’은 1.0%였다.

 

왜 헌법학자들은 자유한국당 개헌안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일까. ‘의회권력 강화로 대통령과의 정쟁이 우려된다’는 의견이 39.0%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대통령과 총리 역할 구분 모호’가 33.3%였다. ‘여당과의 협치 부족’과 ‘직접민주주의의 퇴색’은 각각 8.6%였다. A회원은 “검찰·감사원·헌법재판소 등에 대한 독립성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대통령 개헌안 대체로 찬성 42.2%

 

자유한국당 개헌안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로는 ‘제왕적 대통령제 분산’(54.7%)을 선택한 의견이 절반을 넘었다. ‘의회 민주주의 등 책임정치 구현’은 22.7%,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대시킬 것’이라는 의견은 9.3%였다. B회원은 별도 의견을 통해 “이번에 발표된 자유한국당 개헌안은 대통령 발의안보다 더 급조된 느낌을 지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자유한국당 개헌안은 총리 권한 확대다. 책임총리가 검찰, 경찰, 국세청 등 권력 기관장에 대해 임명 제청권을 행사하는 게 골자다. 감사원, 대법원, 헌법재판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헌법 기관장은 인사추천위 추천과 국회 동의를 거치도록 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권력구조 개편안에 대해서는 ‘4년 대통령 연임제’(45.5%)가 가장 많았다. 자유한국당이 제안한 ‘이원집정부제’(8.9%)보다 5배가 많았다. ‘내각제’는 16.8%, 현행 ‘5년 대통령 단임제’는 14.9%였다. 소수의견으로 3년 단임제와 연방제라고 답한 의견도 있었다.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국회 총리 추천 방식에 대해서는 ‘여야 과반 표결 후 추천’을 선택한 것이 29.3%로 가장 많았고, ‘의회 다수당 추천’이 14.1%, ‘책임정치 차원에서 여당 추천’이 13.1%로 뒤를 이었다. 하지만 ‘국회의 총리 추천을 반대한다’는 의견도 25.3%를 차지했다.

 

청와대 안과 자유한국당 개헌안 중 어떤 것이 미래지향적인 내용을 담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청와대 안(案)’(43.6%)이 가장 많았다. 반면 ‘자유한국당 안’은 4.0%에 불과해 헌법학자들은 청와대 안에 대해 더 긍정적으로 표시하는 의견이 많았다. 여야 간 정쟁 탓에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견도 33.7%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의견은 15.8%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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