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사태 해법 찾다 국민 비호감 등극한 남양유업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8.05.23 09:35
  • 호수 1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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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를 ‘속이고’ 대리점주에 약속 ‘어기고’ 회장은 ‘챙기고’

 

남양유업이 벼랑 끝에 섰다. 발단은 2013년 대리점주들을 상대로 ‘밀어내기식 영업’을 벌이다 불거진 ‘남양유업 갑질 사태’다. 이 과정에서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하는 녹취가 공개되면서 국민들의 공분은 극에 달했다. ‘갑의 횡포’가 처음 사회적 이슈로 불거진 것도 이때부터다. 그로부터 5년여가 흘렀지만, 남양유업은 여전히 신뢰 회복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비자들의 외면은 여전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저출산으로 유제품 소비가 감소하고, 사드 문제로 중국 판로가 막히는 등 악재마저 더해졌다.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사옥(왼쪽)과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 © 시사저널 고성준·연합뉴스


 

남양유업 社名 숨기기 꼼수로 소비자 외면

 

물론 남양유업이 그동안 기업 이미지 회복에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갑질 사태 당시인 2013년 5월에도 대표이사와 임원들은 국민들 앞에 머리를 숙였다. 대리점주들의 피해를 구제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럼에도 사태는 잠잠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남양유업의 기업 이미지는 갈수록 하락했고, 소비자들은 강도 높은 불매운동에 나섰다. 남양유업의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2013년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적자(174억원)로 전환됐고, 2014년에는 적자가 261억원으로 더욱 늘었다. 2012년 637억원의 영업흑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불매운동의 강도가 어느 정도로 높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문제는 남양유업이 이런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는 해법으로 ‘편법’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브랜드 숨기기가 대표적이다. 이런 편법이 동원된 것은 갑질 사태 직후다. 불매운동으로 판매가 급감하자 프렌치카페 커피믹스 제품 로고에 스티커를 붙여 남양유업 상품임을 숨겼다. 지난해 말에는 냉장커피인 ‘프렌치카페’ 용기에 부착된 빨대로 남양 로고를 가리기도 했다. 마트나 편의점 등에 납품되는 자체 브랜드(PB) 제품의 경우에는 아예 남양 로고를 누락시키기도 했다. 이런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남양유업 측은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어쩌다 보니’ 혹은 ‘우연히’ 로고가 가려졌다는 것이었다.

 

2014년 론칭한 ‘백미당1964’도 비슷한 사례다. 디저트 카페인 백미당은 철저히 남양유업 브랜드임을 숨겨왔다. 그러다 일부 소비자들을 통해 남양유업 브랜드임이 알려지면서 비판을 받았다. 남양유업 측은 “백미당이라는 자체 브랜드로 소비자들의 평가를 받기 위해 매장 내 남양유업 브랜드를 일절 알리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남양유업의 부정적 이미지를 고려한 결정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소비자들도 남양유업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오히려 추가적인 불매운동의 단초만 제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기 제품의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꼼수를 사용한 정황이 발견돼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초코에몽’의 원유 함량을 계속 줄여나간 것이 문제가 됐다. 2015년 출시 초기 70%이던 초코에몽의 원유 함량은 계속 감소해 34%까지 줄었다. 현재는 이 제품의 원유 함량 표기가 아예 없어진 상황이다. 남양유업은 성분 함량이나 배합은 그대로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소비자들 사이에선 원유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지분유를 함유해 마진율을 끌어올리려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업계 일각에서는 판매부진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있다. 원유가 원료인 제품 판매가 부진해 이를 장기 보관하기 위해 재고 원유를 전지분유 형태로 전환해 보관해 오다 이를 초코에몽에 첨가했으리란 것이다.

 

남양유업 불신의 가장 큰 원인은 대리점주들 피해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는 평가다. 남양유업이 조직적으로 본사에 문제를 제기한 대리점주들에게는 일정한 보상을 한 반면, 남양유업에 협조해 상생협약서에 서명한 대리점주들에게는 제대로 된 피해구제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피해 대리점주들은 특히 상생협약서에 ‘합의된 사항 이외에는 회사를 상대로 일체의 소송이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독소조항이 포함돼 있어 이렇다 할 법적 대응도 하지 못하는 처지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남양유업은 대형마트에 유제품을 납품하는 대리점의 수수료를 일방적으로 삭감해 피해를 입혔다는 의혹도 받고 있는 상태다.

 

남양유업의 실적은 표면적으로는 2015년부터 호전된 상태다. 그해 영업이익 흑자전환(201억원)에 성공했고, 2016년에도 418억원의 흑자를 냈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실적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남양유업 사태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부과받은 과징금 가운데 119억원을 행정소송을 통해 반환받은 것과 전체 노동자의 14.3%를 구조조정한 효과가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문제는 지난해 남양유업의 재무구조가 급속도로 악화됐다는 데 있다. 매출 자체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남양유업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1조1669억원으로 전년(1조2391억원) 대비 5.8% 정도만 감소했다. 문제는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는 데 있다. 남양유업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50억원으로 전년 대비 87%가량 감소했다.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뼈를 깎는 영업활동을 벌였다는 얘기다. 현재 유제품 시장은 저출산 기조로 불황을 겪고 있다. 남양유업은 해외시장에서 해법을 찾기 위해 중국 시장 진출에 공을 들였지만 사드 악재로 판로가 막힌 상황이다. 그야말로 궁지에 몰렸다. 창립 이래 처음으로 외부 인사인 이정인 남양유업 대표를 영입해 경영혁신을 선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백미당 매장 © 시사저널 고성준


 

회사는 사면초가인데 회장은 고액 연봉

 

이런 가운데서도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만큼은 계속 웃고 있다. 갑질 사태 이후 경영상황이 크게 악화된 가운데서도 매년 20억원 안팎의 급여와 배당금을 받아오고 있어서다. 눈여겨볼 대목은 앞선 갑질 사태 과정에서도 홍 회장이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남양유업 측이 밝힌 것이다. 홍 회장이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였다. 당시 남양유업은 홍 회장이 남양유업의 최대주주(51.68%)여서 등기임원에 등재한 것일 뿐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회사에도 나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남양유업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경영에 관여하지도 않는 홍 회장에게 거액의 급여를 지급해 온 셈이 된다. 반대로 거짓이라면 홍 회장이 사태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허위 해명을 한 것이 된다. 어느 쪽이든 국민들의 추가적인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향후 추이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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