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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강경대응 자제…정상회담 불씨 되살아날까

北 김계관 “대범하고 열린 마음으로 기회줄 용의”

구민주 기자 ㅣ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8.05.25(Fri) 09:5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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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전 으레 거치는 단순한 기 싸움이 아니었던 걸까. 우리 시간으로 5월24일 늦은 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현 시점에선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며 돌연 회담을 취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한 지 불과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벌어진 터라 남북은 물론 국제사회에 더 큰 충격을 안겼다.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하겠다는 트럼프 서한이 공개된 지 8시간여가 흐른 25일 오전, 북한은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을 통해 첫 입장을 밝혔다. 김 제1부상은 “대범하고 열린 마음으로 미국에 시간과 기회를 줄 용의가 있다”면서 미국에 다시 정상회담 개최의 공을 돌렸다. 인질 석방과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등을 실행한 후 이뤄진 일방적 통보에 북한의 거센 반발이 예상됐지만, 다소 차분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처럼 양측이 닫아두지 않고 서로의 연락을 기다리겠다는 태도를 취하면서, 예정대로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을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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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최선희 발언이 결정적 배경으로 지목돼

 

트럼프는 이날 백악관을 통해 공개한 서한의 내용은 정상회담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들인 북한의 시간과 노력에 대한 감사로 시작됐다. 그러나 요지는 북·​미 정상회담을 예정대로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슬프게도, 최근 당신 측에서 보인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감에 근거해, 오랫동안 준비해 온 이번 회담이 지금은 부적절한 시기라고 느낀다”며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만약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바꾼다면, 주저 말고 연락하거나 편지를 보내 달라”며 북한에 여지를 남겨둔 듯한 말로 서한을 맺었다.

 

한밤 중 갑작스런 회담 취소에 청와대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 긴급회의 소집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즉각 “당혹스럽고 매우 유감”이라며 “정상 간의 보다 직접적이고 긴밀한 대화로 해결해 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북·​미 정상회담에 성사 가능성에 ‘99.9%’라며 자신감을 내비쳐왔던 터라 미국의 이 같은 판단을 사전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전격적으로 이 같은 결정을 한 배경엔 같은 날 발표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담화문이 ‘트리거(방아쇠)’였던 것으로 지목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백악관 관계자는 “펜스 부통령을 향한 북한의 반응이 ‘인내의 한계’였으며, 곧 정상회담을 취소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가 서한에 언급한 ‘공개적 적대감’ 역시 이 지점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선희 부상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보도된 담화에서 “미국이 우리의 선의를 모독하고 계속 불법무도하게 나오는 경우 나는 조·​미(북·​미) 수뇌회담을 재고려하는 데 대한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 ‘무지몽매하다’ 등으로 표현한 것이 트럼프를 비롯한 미국 지도부를 불편하게 한 것으로 지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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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부상의 원색적 비난은 펜스 부통령이 지난 21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김정은이 합의를 하지 않는다면 이번 사안은 ‘리비아 모델’이 끝난 것처럼 끝나고 말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한 반응이었다. 리비아 모델은 리비아의 국가원수 카다피가 핵무기를 포기한 후 정권 붕괴를 경험하고 끝내 죽음에 이르며 끝이 났다. 그 때문에 북한에선 꾸준히 ‘리비아 모델만은 안 된다’는 주장을 고수해왔다.

 

트럼프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서한은 갑작스러웠지만, 사실 최선희 부상의 발언이 나오기 전부터 북·​미 간 이상 기류는 조금씩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지난 16일 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이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의 북핵 해결 방식에 공식적으로 반발하면서 북·​미 간 충돌은 시작됐다. 미국이 일방적인 핵 포기만 강요하려고 하면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려하겠다고 발표해 더욱 긴장감을 높였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다수의 국제사회와 국내외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진행될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한때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현장에 우리 측 기자단이 들어가지 못하면서 한차례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기는 했다. 하지만 하루 만에 다시 방북을 승인하고 예정대로 핵실험장 폐쇄를 진행하면서 북·​미 정상회담도 다시금 순항로를 타는 듯 했다. 

 

그러나 지난 22일부터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 동안 나왔던 트럼프의 발언에서 북·​미 정상회담 연기를 시사하는 듯한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회담이 열릴지 안 열릴지 두고 보자”, “북·​미 회담이 열리지 않는다면 아마도 나중에 열리게 될 것이다”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외신들은 정상회담이 6월 안에 열리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조심스레 보도했다. 그러던 중 북한 최선희 부상의 발언까지 더해지면서, 미국이 정상회담 취소 발표에 대한 의지를 굳힌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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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정상회담 취소에 깊은 우려”

 

트럼프의 서한이 발표된 직후 국내 정치권은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유감과 당혹감을 드러내는 입장을 쏟아냈다. 외신들도 뉴스를 특별 편성해 속보로 관련 내용을 전달했다. 미국 언론은 북·​미 관계가 지난 몇 주 간 삐걱거렸지만 전격 무산된 건 놀라운 일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언론 역시 트럼프의 발표에 놀라움을 표하면서도 ‘아직 재개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유엔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지난 2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군축회의에서 “싱가포르 회담이 취소됐다는 데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며 “평화적이고 검증 가능한 한반도 비핵화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관련 당사국들이 대화를 이어갈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정치권은 입장 표명에 다소 신중한 모양을 취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식 논평을 자제하며 변화 가능성이 농후한 사태를 조금 더 관망,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은 25일 새벽 장제원 수석대변인의 이름으로 논평을 내고 “북한에 아직도 완전한 핵폐기 의사가 없다고 판단한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 것으로 보인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어설픈 평화중재자 역할이 한반도 평화에 큰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바른미래당 역시 회담 취소 원인을 ‘북한의 태도 돌변’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이제라도 문재인정부는 보다 냉철한 대북접근이 필요하다는 분명한 인식을 가지길 바란다”고 논평했다.

 

민주평화당은 “상당히 당황스럽다”면서도 “트럼프가 ‘지금은 부적절하다’고 한 걸 보면, 여지를 남겨놓은 발언으로 보인다”며 신중한 입장을 내놓았다. 정의당은 “전세계가 지켜보며 기대해온 정상회담을 이같이 일방적인 방식으로 취소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미국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청와대는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고 있지만, 대리인들 간에 주고받는 말이 아닌 ‘정상 간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과의 조속한 핫라인 연결이 필요하다는 안팎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만큼, 청와대에서도 이내 남북 정상 간의 직접 통화를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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