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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에서 극찬받은 이창동 감독의 신작 《버닝》

불타오르기를 갈망하는 청춘을 바라보다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26(Sat) 16:32:38 | 14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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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버닝》은 이창동 감독이 8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택배회사 파트타이머로 일하는 종수(유아인)가 주인공이다. 그가 우연히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얼마 후 아프리카로 여행을 다녀온 해미는 그곳에서 만난 남자 벤(스티븐 연)을 소개한다. 세 사람은 종종 함께 만나고, 종수는 벤의 비밀스러운 취미에 대해 들은 이후 무서운 예감에 사로잡힌다. 원작 소설인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를 모티브로, 《버닝》은 현재 한국 사회 청년 세대의 어떤 초상을 들여다보려 한다. 5월19일 폐막한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라 개봉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영화다. 《버닝》을 둘러싼 국내외의 반응들, 영화가 은유하는 상징들을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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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물고기》 막동이와 《버닝》의 종수

 

《버닝》은 젊은 세대의 방황과 그 주변 현실을 돌아본다는 점에서 감독의 연출 데뷔작 《초록 물고기》(1997)를 떠오르게 한다. 군에서 갓 제대한 20대 중반의 청년 막동이(한석규)가 어두운 밤의 세계와 연결되며 생기는 일들을 다뤘다. 과작(寡作) 감독인 이창동의 비교적 최근작인 《밀양》(2007)과 《시》(2010)도 인간의 죄의식과 용서를 향해 심도 있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렇다면 감독은 왜 지금 다시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가. 그는 칸 국제영화제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젊을 때는 젊음을 인식하지 못했다. 젊음이 어떤 성격이고 무슨 문제가 있는지. 내 자신이 젊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지금의 젊음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와 연결돼 있을 테니까.”

 

《초록 물고기》는 공간에서 출발한 영화다. 일산 신도시에 고층 아파트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던 1990년대, 주인공 막동이(한석규)의 식구들은 외곽의 외곽으로 밀려나 산다. 이주민이 물밀듯 들어오면서 일산의 드넓은 땅에 원래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희미해졌다. 이 영화에서 특히 두드러지고 이후 이창동 감독의 영화에서 중요하게 그려지는 건, 한국 사회의 계층 변화와 자본주의로 인해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들의 현실이다. 이 안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해 혼란을 겪는 인물들이 있다. 

 

《버닝》의 공간은 파주다. 영화 초반, 종수는 법정 재판이 진행 중인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다. 종수가 어릴 적 살았던 공간이며 해미의 동네이기도 했다. 대남 방송이 하루 종일 울려 퍼지고 있지만 그 너머로는 갈 수 없게 선 그어진 공간. 아직은 후미진 구석까지 도시 개발의 광풍이 불어닥치지 않은 공간. 멀리는 고층 아파트와 다른 한쪽으로는 북한이, 가까운 곳에는 사람들의 터전과 버려진 비닐하우스가 한데 뒤섞여 있는 이곳으로 돌아오는 종수는 그 자체로 경계인이다. 그는 파트타임 노동자로 도시의 생리에 기생해야 하는 인물이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벤의 포르쉐와 그가 사는 반포 서래마을로 대변되는 계층의 벽을 넘을 수 없는 사람이며,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속해야 하는 세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영화는 미스터리 구조를 띠고 있다. “죽는 건 무섭고 아예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싶다”던 해미가 실종된 후, 종수는 벤의 곁을 맴돌면서 그를 관찰하고 의심한다. 이 과정에서 관객이 중요하게 더듬는 것은 앞서 여러 차례 던져진 ‘메타포’들이다. 종수가 끝내 해미의 방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고양이, 어릴 적 해미가 빠졌다는 우물, 벤이 두 달에 한 번씩 취미로 불을 지른다는 버려진 비닐하우스들…. 《버닝》은 어떤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하고, 때론 주인공의 대사로써만 설명하며 관객 각자의 상상을 부추긴다.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현실인가, 아니면 ‘세상이 수수께끼 같아서’ 지금껏 원하는 글을 쓰지 못했다는 작가 지망생 종수가 비로소 쓰기 시작한 소설 속 이야기인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는 점차 느슨해지고, 귤을 먹는 마임을 보여주며 “귤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귤이 없는 걸 잊어버리면 된다”던 해미의 말은 점차 또렷한 잔상으로 남아 관객에게 끊임없이 《버닝》의 세계를 탐색하기를 요구한다.

 

칸 현지에서 《버닝》이 공개된 이후 반응은 뜨거웠다. 영화제 공식 소식지 스크린데일리가 집계한 평점은 역대 최고점인 3.8점. “순수한 미장센으로서의 영화의 역할을 다하며 관객의 지적 능력을 기대하는 시적이고 미스터리한 영화”(티에리 프레모, 칸 국제영화제 예술감독), “모든 프레임이 완벽하게 연출된 숨 막히는 연출”(지오바나 풀비, 토론토 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등의 찬사가 줄을 이었다. 주요 부문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국제비평가연맹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은 이런 수상 소감을 남겼다. “《버닝》은 현실과 비현실, 있는 것과 없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탐색하는 미스터리다. 그 미스터리를 가슴으로 안아주셔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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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메타포’에 홀리다

 

《버닝》 속 젊은 세대는 극명하게 양분돼 있다. 무기력과 가난을 껴안고 버티듯 살아야 하는 종수와 해미가 있고, 그 반대편에는 부유층 청년 벤이 있다. 대부분의 젊은 세대는 감독의 말마따나 그 사이, 즉 파주와 서래마을 사이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끝내 양극단의 충돌을 시험하며, 그것을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구분하지 않는 방식으로 판단을 유보한다.

 

종수는 세상에 시험당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는 상황들에 자주 처한다. 그는 벤을 비롯한 사람들의 교묘한 무례함을 참고 버틴다.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아버지를 평생 이해할 수 없었던 종수는 분노를 발산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다. 집을 나간 뒤 16년 만에 나타난 엄마는 대뜸 돈 얘기부터 꺼낸다. 엄마가 종수에게 준 것이라고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우물의 존재를 확인해 주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어린 시절 종수는 해미의 말처럼 우물에 빠진 그녀를 정말로 구해 줬을지 모른다. 적어도 둘의 관계 안에서 종수는 ‘필요한 사람’이다. 이것을 뒤늦게 깨달은 종수는 극단의 선택을 한다. 이는 해미의 실종에 대한 종수의 개인적 단죄일 수도, ‘구체적으로 뭘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돈은 많은 젊은이’들을 향한 분노의 발현일 수도 있다.

 

정념적인 것들이 가득한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메타포는 버닝, 즉 불태운다는 행위일 것이다. 젊은 세대는 무언가로 불타오르길 갈망하는 존재지만, 혜미의 말처럼 단순히 배가 고픈 상태인 ‘리틀 헝거’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 허기를 느끼는 ‘그레이트 헝거’가 되기란 쉽지 않다. 종수에게는 ‘버닝’의 계기가 필요했고, 벤은 해미를 살해했든 그렇지 않든 그를 자극했다. 벤을 향한 종수의 판단은 진실일 수도, 가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해미가 좁아터진 원룸에 잠깐 들어오던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음을 뒤늦게 깨달은 종수에게는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필요하다. ‘그레이트 헝거’를 갈망하다 어디론가 사라지는 존재들, 상처받는 존재들, 엉뚱하게 불타오르는 존재들. 《버닝》이 진단한 청년 세대의 모습은 여기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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