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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삶 살다간 두 여성혁명가의 '같지만 다른' 길

[이원혁의 ‘역사의 데자뷰’] 7화 - 한국의 박차정과 베트남의 응웬 티 민카이

이원혁 항일영상역사재단 이사장 (前 KBS PD)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5.28(Mon) 1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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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100년 전인 1918년 경남 동래에서 한 남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구한말 탁지부 주사를 지낸 박용한이었다. 경술국치 이후 계속된 일제의 강압통치에 울분을 참지 못한 그는 유서 한 통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남겨진 다섯 남매 중 넷째인 8살짜리 딸아이가 차정(次貞)이었다. 훗날 김원봉과 결혼해 의열단을 이끈 무장항쟁가이다. 그 역시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부친의 뒤를 따랐다. 박차정의 삶은 식민지 조국과 억눌린 여성들의 삶을 해방시키기 위한 노력의 여정이었다.

 

과연 세계의 반식민 투쟁사에서 박차정(1910~1944) 의사와 견줄만한 항쟁의 내력을 지닌 여성이 또 있을까? 그런데 얼마 전 필자는 베트남 독립운동사에서 어느 항불(抗佛) 투사의 활동을 살피다가 잠시 멈칫했다. 박 의사의 행적과 겹치는 부분이 너무도 많은 한 인물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응웬 티 민카이(阮示榮, 1910~ 1941)는 박차정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나라를 잃은 해에 태어났다. 역무원인 아버지는 모두 여덟 남매를 두었는데, 그는 딸 셋 중 맏이였다. 응웬 티 민카이는 18살 때 베트남 신혁명당의 창당에 참여해 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이 당은 나중에 공산당으로 발전됐다. 때문에 그는 베트남 최초의 여성 공산당원으로 기록되어있다

 

박차정도 그가 입당한 같은 해에 여성 민족운동단체인 근우회(槿友會) 창단에 참여했다. 한데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이듬해 중앙 집행위원으로 선출됐고, 그 다음해 똑같이 중국으로 망명했다. 여기에다 같은 해에 태어난 사실까지 더하면 두 사람의 ‘인연’의 깊이가 절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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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 태어나, 같은 해 反식민단체 참여···같은 해 중국 망명한 ‘닮은꼴’

 

박차정은 1931년 서울지역 11개 여학교에서 시위를 벌인 이른바 ‘근우회 사건’의 주모자로 체포되었다가 풀려난 뒤 망명길에 올랐다. 중국에서 의열단 활동을 하는 오빠의 권유에 따른 것이었다. 아버지의 자결 후 그와 가족들은 항쟁의 정신을 이어갔다. 큰 오빠 박문희는 민족운동단체인 신간회의 중앙집행위원을 지냈고, 의열단 간부인 둘째 오빠 박문호는 일경에 붙잡혔다가 가혹한 고문으로 병을 얻어 곧 세상을 떠났다. 

 

응웬 티 민카이도 항불투사인 여동생을 두었다. 동생 꽝 타이는 식민당국에 체포되어 복역하던 중 사망했다. 동생의 남편은 프랑스군을 몰아낸 디엔비엔푸 전투와 미국과 벌인 전쟁을 승리로 이끈 베트남의 ‘전설’ 보응웬 쟙 장군이다. 이처럼 두 사람 모두 저항정신이 뿌리 깊은 집안 내력으로 인해 강한 현실인식과 투쟁능력을 갖추게 되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박차정은 중국 망명 후 의열단에 입단했고 이듬해 단장인 김원봉과 결혼했다. 1932년 난징에서 남편과 함께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세워 교관으로 활동했고, 일제 침략을 규탄하는 선전활동도 병행했다. 또 조선의용대의 부녀복무단장을 맡아 20여명의 여성동지들을 이끌고 무력항쟁의 선봉에 섰다. 그러다가 1939년 2월 일본군과 벌인 쿤룬산(崑崙山)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었고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1944년 34살의 짧은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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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망명지서 혁명동지와 결혼···순국으로 짧은 생 마감한 공통점도

 

중국의 영국령 홍콩으로 건너간 응웬 티 민카이는 호찌민과 함께 활동하던 중 파괴활동 혐의로 체포되었다. 3년 후 석방되어 모스크바 코민테른 대회에 레홍퐁과 함께 인도차이나 공산당의 대표로 참석했고, 얼마 후 두 사람은 결혼했다. 1936년 사이공 공산당 책임자로 국내에 잠입한 응웬 티 민카이는 2차 세계대전으로 식민당국의 통제가 약화된 틈을 타 무력항쟁을 펼쳤다. 1940년 11월 수만 명의 민중이 참여한 무장봉기를 일으킨 그는 주동자로 체포되어 이듬해 총살형에 처해졌다. 그의 나이 겨우 31살이었다.

 

사형을 앞두고 응웬 티 민카이는 자신의 피로 감옥 문에 시를 썼다. 불굴의 항전 의지를 담은 ‘혁명전사의 절개’와 제목이 없는 두 편의 시는 현재 베트남 초·중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으로 필자가 가장 눈여겨 본 것은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이었다. 박차정은 민족해방과 여성해방을 동시에 이뤄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1936년 그가 난징에서 결성한 조선부녀회의 선언문은 이러한 생각을 웅변한다.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지 못하면 우리 부녀는 식민지적 박해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또 이를 타도하더라도 자유와 평등을 이루지 못하면 우리 부녀는 철저한 해방을 얻지 못한다.”

 

응웬 티 민카이도 “러시아 땅에서는 여성 의원들이 수백에 이르거늘 내 조국의 여성들은 어찌 조금의 동등한 자유도 누리지 못하는가”라는 말을 남겼다. 이렇듯 여성해방은 자유와 평등에서 비롯된다는 그의 인식은 박차정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그 당시 같은 유교문화권에 놓인 두 나라 여성들은 삼종지의(三從之義), 즉 지엄하신 아버지, 하늘같은 남편, 금쪽같은 아들에 의존하는 삶을 살았다. 말이야 미덕이니 덕목이니 했지만, 밥하고 빨래하고 가족들 뒷바라지나 하는 모진 세월을 견뎌야 했다. 어디 그뿐인가. 식민지 여성으로 태어나 ‘이리떼와 같은’ 정복자들에게 굴종할 수밖에 없는 이중고(二重苦)를 겪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때문일까? 베트남에서는 응웬 티 민카이가 곧 여성을 해방시킨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식민지배에 무력으로 대항하여 민족의 ‘자유의지’를 행동으로 실천했고, 수많은 남성들을 지휘함으로써 봉건적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여성들의 ‘평등의지’를 몸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박차정 역시 ‘여성해방가’로서 새롭게 조명되어야 마땅하다. 그가 항일 무장조직을 만들어 남자대원들을 지도하고, 또한 일본군 정예부대에 맞서 직접 몸으로 싸운 점은 응웬 티 민카이와 견주어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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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차정은 ‘여성해방 이룬 인물’이란 새로운 평가 이뤄져야”

 

그렇다면 이처럼 빼닮은 두 사람에 대한 후세의 기억은 어땠을까? 이들이 지나온 삶의 궤적을 따라 역사의 공간을 누비다보면 두 갈래 길과 마주하게 된다. 한쪽은 길게 뻗어나간 길, 다른 한쪽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길이다. 길게 뻗은 길에는 표지판이 보인다. ‘응웬 티 민카이’ 거리다. 호찌민시 한복판을 가르는 이 길은 번지수만 500개가 넘는 대로(大路)다. 그와 같이 활동하다 옥사한 남편의 이름은 어느 유명한 학교 정문에서 발견할 수 있다. ‘레홍퐁고등학교’는 베트남 최고의 명문 학교다. 이 부부의 이름은 하노이·후에·하이롱·하이안 등 베트남 전역의 거리·학교·건물에서 무수히 마주하게 된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길은 한반도를 향한다. 반세기 넘도록 아무도 밟지 않은 이 길은 어느 초라한 무덤과 닿아있다. 반도 남녘 밀양 땅에 잠든 박차정의 이름은 오랫동안 가려져왔다. 분단·독재·군사반란으로 얼룩진 남쪽의 역사는 한 여성 혁명가에게 이념의 족쇄를 채웠다. 북으로 간 남편의 처지도 다를 바 없었다. 반동의 재갈이 물려졌고 남과 북 모두의 역사에서 지워졌다. 

 

똑같이 온몸을 던져 맞이한 해방이었지만, 박차정과 응웬 티 민카이에 대한 후세의 기억은 너무나 달랐다. 한쪽은 해방의 ‘아이콘’으로 추앙 받고, 다른 한쪽은 ‘금기어’가 되었다. 그나마 해방된 지 반세기 만인 1995년 박차정 의사에게 정부포상이 주어졌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이 없지 않으나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올해는 김원봉 선생의 탄신 120주년이자 사망 60주기가 되는 뜻 깊은 해다. 5월에는 박 의사의 탄신일과 사망일도 겹쳐있다. 5월27일 그의 서거 74주년을 맞아 박차정과 응웬 티 민카이의 ‘살아서는 같지만 죽어서는 다른 삶’이 이 시대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가 무얼까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시대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역사의 진실을 올곧게 지켜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제 더 이상 온전한 항쟁의 역사를 어느 한쪽의 이념적 잇속을 채우기 위해 마음대로 재단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될 일이다. 역사를 대하는 우리의 ‘품격’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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