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의 파동이 북·미 회담 성공 가능성 높였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8.05.30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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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018 남북 정상회담 원로 자문단 이종석 前 통일부 장관

1년 같은 일주일이었다. 5월24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결정과 이튿날 번복, 26일 깜짝 2차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실무 협상 시작까지. 한반도는 남·​북·​미 정상의 말 하나 행동 하나에 희비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한차례 위기를 거친 후 회담은 다시 정상궤도에 오른 듯하다. 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법. 북한의 비핵화와 체제보장 속도 등에 대한 합의엔 여전히 예측 불가한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다. 예정된 북·​미 회담까지 또다시 1년 같은 일주일을 남겨둔 셈이다.

 

롤러코스터 종착점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북·​미 정상이 나란히 서서 한반도 평화를 약속하는 역사적 장면을 직접 목도할 수 있을까.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 대통령 특별수행원이자 2018 남북 정상회담 원로 자문단인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을 만났다. 이 전 장관은 “며칠간 벌어진 일련의 파동에 나도 놀랐고 모두가 당황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북·​미 회담에 더 긍정적으로 작용해 성공 가능성을 높였다”며 “비 온 뒤에 땅이 굳은 격”이라고 말했다. 5월22일 세종연구소 연구실에서 한차례 그를 만났고, 이후 예상치 못한 이슈들이 터지면서 5월29일 추가 인터뷰했다. 


요 며칠 벌어진 급격한 상황 전개 어떻게 보셨나.

“한반도 정세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들이 하루걸러 일어나 당황스럽긴 했다. 전체적으로 업앤다운이 좀 있었지만 결과론적으론 상대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북·​미 회담을 진행하는 데 안정성을 높였다고 본다. 이런 일이 없었던 것보다 있는 게 더 회담에 좋게 작용하리라 본다. 그렇지 않았다면 양측이 약간의 불만을 안고 그냥 갔을 것 아닌가. 또한 문재인 대통령이 2차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양측 중재자로서 위상을 더 뚜렷이 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미 두 정상이 상황을 풀어나간 협상력은 어떻게 평가하나.

“트럼프가 저강도 벼랑 끝 전술을 썼다. 북한에서 비난 담화가 나오니까 일단 ‘나 안 하겠다’ 하면서도 북한이 나올 수 있는 통로는 만들어줬다. 북한은 또 트럼프가 마련한 통로를 통해 해명하고 적극적으로 북·​미 회담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김정은 위원장이 다급함을 보였다는 해석도 있는데, 회담 성공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바탕으로 그가 상황을 오히려 진정시켰다고 본다. 두 정상이 적당한 타이밍 속에서, 일정한 틀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상황 관리를 잘 했다고 평가한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5월22일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세종연구소 연구실에서 시사저널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김정은 비핵화 의지 크게 걱정할 것 없다”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결정 의미는 무엇인가.

“내 예상보다 더 ‘전격적’이었다. 풍계리 건은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 자리에서 미국에 던질 거로 생각했는데 그걸 선제적으로 내놨다는 건 곧 북한이 비핵화를 상당히 본질적으로 하고 싶어 한다는 걸 의미하는 거다. 작년만 해도 상상 못 할 일 아니었나. 쌀 수백만 톤을 줘도 안 될 일이었다.”

 

어차피 핵무기 완성했으니 핵 실험장 필요 없어진 것 아닌가. 짧은 시간 내에 복구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렇게 의심하면 끝이 없다. 핵심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우리가 어떻게 볼 것이냐는 거다. 그가 제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밀려 비핵화를 하는 것이고, 그래서 뭔가 감추고 싶어 할 거라는 시각을 가지면 계속 그가 의심스러울 거다. 그러나 지금 김정은이 원하는 건 새로운 국가, ‘잘 사는 북한’을 만드는 거다. 핵무기 포기하는 대신 새로운 안전보장체계를 마련해달라는 거다. 최근 계속 경제 올인 정책을 강조하고 있지 않나. 김정은이 이렇게 새 국가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생각하면 그의 비핵화 의지를 크게 의심할 필요가 없다.”


한때 맥스선더 훈련으로 남북 고위급회담이 취소되면서 분위기가 싸늘했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회담 연기 통보를 한 건 아주 잘못된 거고 이 버르장머리는 고쳐야 하는 게 맞다. 그러나 그와 상관없이 우리가 무얼 놓쳤고 잘못했는지 성찰해야 한다. 사실 북한이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이해한다고는 했지만 판문점 선언에 맞춰서 우리도 훈련은 하더라도 상대방에 취지를 더 잘 설명하고 조정하는 섬세함이 필요했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국방부는 원래 세밀하지 못하다. NSC(국가안보회의)가 왜 있겠나. 부처들 간에 조율하기 위해 있는 건데 NSC가 제대로 못 했던 거다.” 

 

몇 달 전만 해도 북·​미 간 ‘화염과 분노’, ‘책상 위에 핵 단추가 놓여있다’ 등 발언으로 긴장감이 높았는데 분위기가 반전됐다. 그 시발점을 어디로 보나.

“일단 김정은은 준비돼 있었다고 본다. 작년 11월 화성 15형 쏜 다음에 북한이 핵무기 완성을 선언하지 않았나. 그때부터 이미 협상에 나올 준비를 했던 거다. 우리 정부도 김정은이 대화에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미리 감을 잡아 왔다. 미국은 처음에 믿지 않았다. 우리 정부와 정보교환을 하면서 올해 1월쯤 믿기 시작했고 그 후 폼페이오 장관이 두 차례 김정은을 만나면서 비핵화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거다. 전격적으로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북한은 그 전부터 준비를 해왔던 거고 우리 정부 역시 북한 핵 문제로 분위기 안 좋았을 때도 계속 평창올림픽을 평화의 마중물로 생각하며 일관되게 준비를 해왔다. 결국 그 일관된 의지와 결단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결국 햇볕이 아닌 제재가 북한을 움직였다는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제재가 당연히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문제는 김정은이 나오게 하는 데 제재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는가 보면 그건 아니다. 대북제재가 가장 고강도였던 건 지난해 12월, 김정은은 화성 15형을 쏘면서 이미 전략적 구도를 이렇게 짜놨을 거다. 또 하나는 김정은이 제재에 대비해 그동안 상당히 산업을 국산화시켰다. 2010년 북·​중 간 교역 구조를 보면 이미 알 수 있다. 그 전엔 주로 소비재나 광물류였는데 그 뒤로는 주로 전기·기계 같은 생산을 위한 중간재였다. 북한이 고강도 제재에 고통을 받아 나올 정도가 되려면 몇 년 더 있어야 했다. 빈곤하지만 핵을 가진 채 먹고 살겠다 했으면 그대로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김정은이 원하는 건 고도성장의 북한이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나온 거다. 당장 제재 압박에 찍혀 나오게 된 건 아니라는 얘기다.”


4월27일 판문점 만찬에 참석했는데 김정은 위원장 인상 어땠나. 그의 외교력과 협상력은 어떻게 평가하나.

“김정은이 과제를 지시하면 그걸 반드시 점검하는 ‘과제 점검형’이고 실용주의적이라는 건 많이 알려져 있었는데, 외교적 역량이나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잘 몰랐다. 그래서 지난번 대북특사 다녀온 분들한테 내가 이런 질문을 했었다. 4시간여를 같이 식사하고 담화해봤는데, 김정은과 나이 차를 느껴본 적 있느냐고. 젊은 지도자라면 약간 치기 어린 모습들이 보일 수도 있지 않나. 그런데 그런 걸 못 느꼈다고 하더라. 판문점 만찬장 가서도 3시간 정도 같이 있었다. 같은 테이블은 아니었지만 만찬장이 좁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었다. 국민들이 12시간 TV로 바라보면서 김정은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 모두 똑같이 느꼈을 거다.” 

 

 

4월12일 청와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원로자문단과의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등 자문위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의 변화, 우리 정보기관 역할이 컸다”

 

궁극적으로 북·미 정상회담에서 양측이 뭘 주고 뭘 받아야 한다고 보나.

“비핵화와 북한의 체제안전보장. 미국은 먼저 북한이 비핵화 보여줘야만 보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을 그리 생각 안 하니 어려움이 있는 것 아닌가. 여기서 창조적 방식이 나와야 한다. 두괄식 방법, 다시 말해 앞부분에서 결정적으로 ‘이렇게 하면 비핵화하는 거다’라고 신뢰할만한 선행 조치들을 하고 북·​미 수교나 제재 해제 같은 문제도 함께 풀어준 후 비핵화를 진행하는 거다. 동물 해부에서 심장을 먼저 꺼내 생명을 정지시키고 나머지 사지 해체를 하듯, 중요한 걸 앞부분에 배치해 폐기하는 거다. 대신 그만큼 북한에도 보장을 약속해야겠지. 그럼 그다음부턴 기타 시설 폐기하거나 검증하는 과정에서 큰 어려움은 없을 거다.” 


·미 회담 진행에 있어 남은 변수가 있다면 무엇인가. 미국이 계속 주장하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에 대한 합의는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북한이 CVID를 못하겠다고 하는 건 아니다. 김정은이 지금 원하는 국가모델 하에서 CVID를 못할 이유가 없다. 폼페이오가 김정은 만난 후 CVID보다 한 발 더 나간 PVID(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를 얘기하지 않았나. 이건 북한과 CVID를 진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니까 말한 거다. 다만 북한은 그에 상응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개런티(보장·Guarantee)를 해달라는 거다. CVID만 문제시하지 않고 완벽한 체제안전보장이 어떻게 가능할지 같이 고민하고 교환하는 게 가장 핵심이다.”


일각에서 나오는 ‘차이나 패싱’ ‘재팬 패싱’은 어떻게 보나.

“재팬 패싱은 있지만 차이나 패싱은 없다. 우리는 남·​북·미 안에서 비핵화를 이루고 싶지만 김정은은 남·​북·미 통해서만 비핵화가 진행되는 게 불안할 거다. 비핵화 후 한반도 평화가 와도 한미 동맹은 변화 없을 테고 김정은이 보기에 남·​북·미는 어차피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그도 자기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지금 중국이 열심히 기웃거리며 비핵화 논의에 숟가락 놓으려는 게 아니다. 북한이 중국을 들어와 앉을 자리를 마련해주고 있는 거다. 김정은은 간단한 인물이 아니다. 우리도 비핵화 과정에서 중국을 빼고 뭘 하려 하면 뜻대로 안 될 거고 한중 관계만 나빠질 거다. 우리 정부도 이 부분을 놓치거나 실수하면 안 된다.”

 

문 대통령이 2차 남북 정상회담 후 발표한 남·​북·미  종전선언에 중국은 빠져있다.

“문 대통령이 저렇게 말씀하신 건 추정컨대 중국 쪽의 일정한 양해가 있었을 거라 본다. 신중한 분이니까. 이 선언이 한반도 내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대결 구도, 남북 간, 북·미 간 구도를 해소시키고 북·미 간 불가침 선언을 하게 함으로써 체제보장에 대한 북한의 불안을 해소해주려는 일환이었을 거라 본다. 제한적 성격을 띤 이 선언 이후 법제적 관점에서 평화협정을 논할 땐 중국이 포함돼야 한다.”


트럼프 행보가 11월 중간선거와 대통령 재임에 맞춰진 거로 보이는데, 한반도 평화에 대한 진정성은 얼마나 있다고 보는가.

“미국은 본토까지 다다르는 핵탄두를 갖고 있는 나라가 경쟁국가에서 중국과 러시아, 이 두 나라밖에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들과는 일정하게 상호 간 억지 체제를 갖추고 있지 않나. 그런데 북한은 미국이 볼 때 불량 국가, 자칫 선례가 돼 테러리스트 양산하는 중동국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나라다. 이런 절박한 위협의식이 1순위다. 그 위에 트럼프의 정치적 야심이 플러스 돼 있는 거다. 개인적 이익만을 위해서라고 볼 순 없다.”

 

처음엔 트럼프가 한반도 평화 기조와 상당히 거리가 멀 거라 예상하는 시선이 많았는데 지금 행보가 굉장히 의외 아닌가.

“그건 우리 정보기관이 굉장히 역할을 했다고 본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 만들어 계속 위협하리라 봤는데 우리 정보기관은 지난해 말 북한이 핵무기 완성 선언했을 때부터 이제 대화 나올 거라고 봤다. 이후 미국의 매파 CIA를 장악한 폼페이오 역시 우리 판단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그 믿음이 없었다면 미국도 변할 수 없었을 거다. 결론적으로 그들의 변화는 ‘경험적 변화’였다. 초기 변화는 한국 정보기관과의 교류를 통해, 이후엔 직접 북한과의 만남을 통해 변화했던 거다.”

 

 

5월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깜짝 2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됐다. ⓒ사진=연합뉴스



남북 경협 본격화되면 경제운영방식의 큰 간극을 어떻게 갈등 없이 조율해나갈 수 있을까.

“경협은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 일단 우리 자세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 기업이나 정부는 남북경협을 시혜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남북 경협되면 북한에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가르쳐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북한은 이미 개방돼 있고 이미 남북 간뿐 아니라 서방사회와 경제적 협력할 때 비교우위에 있을 만한 자원을 충분히 갖고 있다. 향후 우리 기업이 북한에 들어가 어떤 이익이 날지 찾으면 되고 북한도 자기들 이익 날 수 있는 지점들을 찾아 윈윈 하면 된다.”

 

핵 문제 해결되면 미국 정부나 민간 지원도 활발해질 것 같은가.

“우선 미국이 북한과 수교하는 것 자체로 국제 금융 기관들의 미국 눈치 보기가 사라지니까 그 자체로 북한 경제는 활성화될 거다. 그러나 미국의 북한 진출은 상대적으로 그리 크지 않을 거라 본다. 한국·중국 기업 진출이 상당 부분을 차지할 거다.”

 

평화·통일 분위기가 본격화되면 당장 국민 삶과 의식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는가.

“한반도에서 이제 전쟁은 없다는 선언이 현실화된다는 것. 아직도 ‘전쟁 나는 거 아냐?’ 얘기 많이들 하지 않나. 북한에서 뭐 할 때마다 얼마나 불안해했나. 이 국면이 잘 진행되면 우리는 정말 전쟁을 걱정하지 않는 시대에 살게 된다. 좀 더 시간 지나 정말 서울에서 중국 단둥까지 고속철이 연결돼 선양, 베이징까지 가게 되면 그때 더 실감하겠지. 기업들은 당장 경협을 통해 북한에 진출하게 되면 실감할 테고. 그리 멀지 않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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