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도 페미니즘? 그런데 페미니즘이야!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6.01 15:30
  • 호수 1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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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페미니즘’이란 이름의 힘

백만 명의 여자가 있으면 백만 가지의 페미니즘이 있다고 가끔 농담을 하곤 한다. 네 페미니즘이 더 옳고 내 페미니즘이 더 유용하고 하면서 페미니스트들끼리 논쟁을 하기도 한다. 페미니스트가 무서워서 페미니즘 공부를 좀 하려 해도 페미니즘이 어려워서 못 하겠다고도 한다.

 

사실 좀 그렇다. 놀라운 속도로 번역되는 페미니즘 책들을 사기도 읽기도 버겁고,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고, 이 사람과 저 사람이 서로 싸우는 거야? 도무지 누가 비슷한 견해이고 이 의견들은 왜 다르지? 이 이야기는 좀 너무하지 않아? 

 

5월17일 강남역 살인 사건 2주기를 맞아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에서 추모집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페미니즘을 일종의 지식이라 생각한다면 참 맞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실제 상황으로 들어가 보자. 벌써 2년이나 지났지만, 강남역 살인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라고 페미니즘의 눈으로 명명했을 때, 이 새로운 이름이 얼마나 많은 여성들에게 자신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공포를 표현한 말을 제공해 주었는지를. 그래, 그렇게 부르니까 형체 없던 괴물에 형체가 생겼어.

 

배탈이 자주 나서 병원 신세를 지곤 했던 시절의 일이다. 내 배가 어떤 식으로 아픈지를 설명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여러 가지 복통에 대한 책도 찾아보았지만 비슷한 증상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쥐어짜는 듯이 아프고, 가끔 가다가 우리하게 뒤틀리고.

 

그러면 의사가 묻는다. “우리하게 뒤틀리는 게 어떤 거지요?” “그거는요….” 또 설명한다. 복부에 풍선을 넣고 공기를 채우는 것처럼 배가 빵빵해지고. “가스가 차는 현상이군요.” 설명을 제대로 했나보다!

 

이런 식으로 한참을 설명해 가다 보면 비슷한 병명이 나온다. 과민성대장증후군. 사실 이 이름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다양한 복통의 증상을 하나로 묶어 이름을 붙이고 그에 따른 대증요법적 약을 처방할 수 있다면, 과민성인 나의 과민함은 가라앉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름이 없다면? 나는 아마 그때그때 주 증상에 해당하는 단일처방을 받고 그다음엔 같은 아픔인데 또 다른 약을 먹고 했을 것이다.

 

조현병 환자의 범죄, 아내 구타, 헤어지자니까 화가 나서 어쩌구 등의 모든 증상을 관통하는 병명에 이름이 붙었다. 여성혐오범죄라고. 그러자 갑자기 설명되지 않던 다른 증상까지 설명이 된다. 

 

바로 이런 것이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스트가 되고자 일부러 어려운 공부를 하지 않은 여성들도 이 새로 생긴 언어의 혜택을 입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새로운 언어를 통해서 보면 안 보이던 게 보이게 되니까. 성차별이란 말을 알게 되니까 후남이란 내 이름이 얼마나 분노스러운지도 알게 되었고, 아니 분노해도 되는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성희롱이란 말을 알게 되니까 부장님의 더듬는 손을 지적할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약자들이 페미니즘 방식의 언어를 통해 자신의 고통에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이름 지어진 것들은 존재할 권리를 얻고, 사라지게 하거나 지워버리기 어렵게 된다. 

 

새로운 말이 생겨나서 세상을 새롭게 설명하기 시작하면 세상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 페미니즘은 지식의 다발이 아니라 삶을 바꾸는 태도다. 여성이 기존 질서에 고분고분하지 않고 다르게 살고자 하면 저절로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니, 페미니즘의 피읖자도 몰랐던 우리 할머니가 왜 그렇게 급진적이셨는지를 이제는 이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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