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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시대, 드라마 주인공도 달라졌다

드라마가 보여주는 성장주의 시대의 종언 평가

정덕현 문화 평론가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6.03(Sun) 10:00:00 | 14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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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에 이르렀는가?” 최근 종영한 tvN 《나의 아저씨》 마지막 회에서 남자 주인공인 박동훈(이선균)은 이런 선문답 같은 화두를 던진다. 가난한 데다 빚까지 떠안고 운신도 하지 못하는 할머니를 부양하며 살아왔던 힘겨운 청춘 이지안(이지은)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물론 박동훈은 회사를 차려 대표가 됐지만, 그 역시 결코 쉽지 않은 중년의 삶을 겪었다. 회사에서는 복마전 같은 정치싸움에 휘말렸고, 그 회사의 대표이사와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다. 

 

이 드라마의 이 선문답이 흥미로운 건, 이들이 엄청난 성공이나 성취를 거둠으로써 해피엔딩에 이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지독한 불행과 추락을 겪은 이들이고, 결국 그 터널을 지나 ‘보통의 삶’이 주는 그 ‘편안함’에 이르렀다는 것이 이 드라마가 말하는 해피엔딩이다. 삶이 망가졌다고 해도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치부하며 버티다 보면 살아지는 게 삶이라는 걸 보여줌으로써,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작은 위안을 주고자 했던 것.

 

이렇게 달라진 주인공의 면면은 신원호 PD가 연출했던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도 등장한 바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제혁(박해수)은 한국시리즈 2년 연속 MVP에 골든글러브 3연패, 세이브왕, 방어율왕을 차지한 특급 투수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두고 있는 인물이다. 이미 최고의 위치에 올라선 인물이지만 여동생을 성폭행하려는 괴한을 제압한 일로 감방 생활이라는 밑바닥으로 추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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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삶을 추구하는 드라마 주인공들

 

하지만 그것이 이 인물이 처한 고난의 끝은 아니었다. 그는 죄수들과의 갈등 때문에 왼쪽 어깨를 다치게 되고 야구선수로서의 사망선고를 받는다. 결국 이 드라마는 이렇게 밑바닥으로 떨어졌던 인물이 다시 ‘보통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런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가 《대장금》 같은 밑바닥에서부터 성장해 최고의 위치에 올라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주인공과는 사뭇 다르다. 어째서 이런 추락하는 인물들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그려지게 된 걸까.

 

드라마는 본질적으로 당대 대중들의 정서와 호흡을 맞추려 한다는 점에서 이런 추락하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세운 건 ‘시대정서’와 무관할 수 없다. 즉 ‘감방생활’이란 다름 아닌 IMF 이후 지금껏 계속 이어지며 나아질 기미가 없어 보이는 현실에 대해 대중들이 느끼는 정서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중들의 추락하는 삶의 정서를 가속화했고 최근 들어서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열렸다. 대중들은 더 이상 성장하는 캐릭터에 몰입하기가 어려워졌다. 그건 더 이상 실현 가능한 판타지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나 《나의 아저씨》는 밑바닥으로 추락한 인물을 세워두고는 ‘그래도 슬기롭게’ 그 현실에 대처해 나가는 인물들의 새로운 판타지를 그려낸다.

 

이제 믿기 힘든 성공이나 성취는 더 이상 판타지가 되어주지 못한다는 걸 보여주는 드라마들의 사례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예를 들어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윤진아(손예진)가 회사 내에서 겪은 성추행과 이를 폭로하는 미투 상황의 결론은 물론 가해자들을 처벌받도록 하지만 동시에 윤진아를 좌천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 드라마가 굳이 완전한 사이다가 아닌 절반의 성공을 보여주게 된 건, 실제로 미투 운동 속에서 피해자들이 겪는 현실이 늘 사필귀정으로만 흘러가지 않고 있는 씁쓸한 사정 때문이다. 또 tvN 《라이브》 같은 드라마 역시 마지막 회까지 여기 등장하는 경찰들의 완전한 행복을 담아내지 않는다. 다들 상처투성이지만 그래도 계속 살아간다는 희망의 메시지만을 담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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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인물들의 추락이 IMF 이후 거품이 빠지면서 꺾어져 내린 경제 환경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면, 이들이 보여주는 ‘보통의 삶’을 추구하는 모습은 장기불황 속에서 저마다의 소박한 행복을 꿈꾸는 서민들의 달라진 삶의 방식을 드러낸다. 성공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작아도 우리를 살아가게 해 주는 확실한 행복에 대한 새로운 꿈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제혁이나,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이 ‘편안함’을 화두로 던지며 보여주는 건 성장주의 시대의 종언이 가져온 저성장 시대의 새로운 기준이다. 우리는 감방생활 같은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치관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건 장기불황을 통해 대중들이 갖게 된 ‘포기의 정서’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이른바 ‘삼포세대’라는 용어가 2011년 처음 등장했다. 여기에 집과 경력을 포함해 5포세대, 희망과 인간관계를 포함해 7포세대를 거쳐 이제는 아예 N포세대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이제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이 더 많아진 시대정서를 갖게 됐다. 욕망의 포기는 또 다른 불황을 가중시키는 것은 물론, 아예 소비군 자체가 생겨나지 않는 구조적 변화까지 만든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된다. 결혼을 포기하고 혼자 살아가는 삶이 더 이상 이상한 삶이 되지 않는 지금, 점점 줄어들 소비 인구는 미래의 경제 상황을 낙관할 수 없게 만든다.

 

 

화려한 선망 대신 소박한 공감

 

가장 큰 변화는 ‘화려한 선망’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성장주의 시대의 소비자들을 움직이는 동력은 ‘선망’과 ‘질투’를 바탕으로 하는 경쟁이었다. 당시의 노멀로 제시됐던, 어느 대학을 가고 어느 지역에 몇 평 이상의 아파트를 사고 또 어떤 차를 끌고 다녀야 성공이라는 그 기준은 많은 중산층들의 욕망을 자극했던 게 사실이다. 당시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소비자들은 이러한 선망과 질투 자체를 ‘포기’했고, 경쟁적인 현실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다. 그래서 높은 곳을 바라보며 선망하기보다는 옆을 바라보며 소박한 공감을 나누고 싶어 한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가 지금의 정서라는 것이다. 

 

이러한 밑바닥 정서 속에서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건 그것이 상품이든 이미지든 내 손에 잡힐 수 있을 만큼의 눈높이에 다가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저 높이 존재하는 것은 그래서 손에 잡히지 않아 “저건 실거야”라며 포기하게 되는 ‘신 포도’가 돼 버린다. 그렇다고 더 밑에 존재하는 건 굳이 내려다보려 하지 않는다. 성장주의 시대가 위아래의 수직적 시스템에 의해 소비자의 욕망을 자극했다면, 우리 시대는 옆자리의 수평적 시스템에 의해 소비자들의 마음을 흔든다. 흔히 말하는 ‘소통’과 ‘공감’이 우리 시대 어디서든 화두처럼 등장하는 건 그래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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