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인기직종 메가뱅크의 신입사원 채용방식
  • 이인자 일본 도호쿠대학 교수(문화인류학)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6.01 15:55
  • 호수 1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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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자 교수의 진짜 일본 이야기] 우리와 다른 사람을 뽑아라

“취업활동을 마쳤습니다. 이제 졸업논문에 전념하려고 합니다.”

 

취업활동을 이유로 매주 화요일에 실시하고 있는 연구실 세미나에 결석했던 4학년 우에니시 유헤이(上西悠平)군이 밝은 표정으로 보고합니다. 저 역시 그보다 더 밝은 표정으로 축하해 주었지요.

 

“내정된 곳이 어디?”

“○○은행요.”

“그래?…축하해.”

 

이렇게 말은 했지만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들어가기 어려운 금융기관은 졸업생이 취업하고 싶은 기업 랭킹에서 항상 10위 이내를 차지하는 곳입니다. 제가 의외라고 생각한 것은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본인도 정형적이면서 딱딱한 곳은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했기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5월1일 도호쿠(東北)대학에서 김현종 한국메디치미디어 대표가 ‘인문학 불필요 선언 시대의 인문서적 출판’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인문학을 전공한 어른들의 변화 많은 직업 현상과 대학생들의 취업에 관한 내용의 강연이었습니다. 대담 형식의 토론 시간에는 학생들의 질문이 많아 2시간이 짧을 정도였습니다. 

 

 

취업활동 중인 일본의 대학생들이 3월1일 도쿄에 모여 구호를 외치고 있다. ⓒEPA 연합

 

 

“취직을 꼭 해야 하나요?”

 

강의를 들은 학생들의 흥미로운 반응은 인문계 전공자가 직업을 많이 바꾼다는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점이었습니다. 국립대를 졸업할 예정인 수강자들은 종신고용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업종을 크게 바꿀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이는 자신들의 주변을 봐도 그렇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문계열이나 이공계열이나 취직을 하게 되면 별 굴곡 없이 비슷한 업종에 긴 시간 종사하면서 정년을 맞이한다고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한국 대학생들은 취업에 대한 정신적 압박이 아주 큰 것 같은데 모두 왜 취직을 하려고 하는지요?”

 

이러한 질문을 던진 것은 다름 아닌 우에니시군이었습니다. 취업활동으로 학교를 거의 나오지 않았던 우에니시군은 강연을 듣기 위해 리크루트 슈트(흰 셔츠에 검은 양복 차림)를 입은 채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통역을 하던 저는 답하기 난감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취업은 남과 자신에게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데 필요한 요소의 하나라는 취지의 답을 한 후 거꾸로 왜 취직을 하려고 하는지 되물었습니다. 

 

“일종의 도망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냥 ‘어디에 취직했습니다’라고 하면 제 내면이 어떻든 그 간판으로 남들이 나를 평가하고 더 이상 제 안을 들여다보려 않잖아요. 나 역시 그 범주 내에서 살아가면 될 터이니 말이에요. 하지만 그래도 되는지 고민을 하면서 취업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학생들이 우에니시군의 말에 동감하는 듯한 분위기였고 비슷한 질문이 이어진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취직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은 있지만 혼자 있을 때나 자기 생각이 공유되는 자리에서는 “왜 일을 해야 하나요? 취직을 꼭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 우에니시군이 전형적인 샐러리맨으로 정평이 나 있는 은행원이 되는 길을 선택하고 내정받았습니다. 

 

사실은 요 근래 2~3년 사이에 교육학부 출신의 은행 취직률이 높아지고 있는데, 제 연구실(문화인류학 전공자)이 그 비율을 높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졸업생 6명 중 5명이 유명 은행에 취직했습니다. 우연이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엔 경제학부 출신에 밀려 금융업계는 서류전형에서 떨어진다는 인상이 있었고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학생들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조금 알아보니 AI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대규모 구조조정을 은행들이 선언한 탓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취업이 잘 된다는 이 시절에도 은행은 굴지의 인기직종이었고 자료를 좀 더 찾아보니 여느 때보다 은행 취업이 어렵다는 데이터가 나왔습니다. 실제로 일본 최대 은행이라 불리는 미즈호은행은 1400명 신입사원 정원을 반으로 줄인다고 발표했습니다. 다른 메가뱅크로 불리는 은행도 감원 정도는 다르지만 크게 정원을 줄인다고 합니다. 이렇게 볼 때 지금까지 고용하는 주체가 뽑는 대상을 바꿨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실제로 찾아보니 2019년 봄채용자를 위한 책자 표지에 ‘미즈호(은행원)답지 않은 사람과 만나고 싶다’라는 카피가 심플하게 씌어 있습니다.

 

사회변화의 급물살에 위기감을 느끼는 메가뱅크는 어떤 루트로 신입사원을 채용하는지 알아봤습니다. 실제 내정받은 제자들을 통해 듣자니, 은행마다 조금 차이는 있지만 9차례의 면담을 합니다. ‘면접’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고 ‘면담’이란 말을 사용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취업활동의 조기화로 학업기간이 침해된다는 대학의 의견을 받아들여 일본경제단체연합회가 기업 설명회는 3월1일부터, 면접시험은 6월1일 이후에 실시한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수한 사원을 다른 곳보다 빨리 뽑고 싶은 기업들은 면접이 아닌 ‘면담’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실질적 면접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면접’ 대신 ‘면담’으로 채용

 

취업 2년 차에서 7년 차까지 30명이 한 팀이 돼 동북지역 리크루트 전담을 맡아 한 학생당 6차례의 면담을 실시합니다. 1대1로 찻집에서 만나 여러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2년 차에서부터 7년 차까지 점점 올라가는데 6차례의 면담을 마친 후 종합 성적이 우수한 사람은 인사부 계장, 과장, 부장 순으로 다시 3차례의 면담을 거친다고 합니다. 이렇게 최종합격까지 가는 사람은 9차례의 면담을 마치고 내정을 받습니다. 1대1 선배들과의 면담의 경우 절반은 학생에 관해 질문하고 절반은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즉 면접관이 일방적으로 질문하고 답하는 형식이 아닌,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이 업무에 관해 현직원이며 입사하면 선배가 될 사람들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실제로 면담관이었던 2년 차와 6년 차의 인사담당 직원에게 물어보니 자신과는 다른, 그리고 주변의 선배나 동료와는 다른, 좋은 특징을 갖고 있는 사람이 뽑힐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합니다.

 

“수리에 밝거나 학교 성적이 좋은 사람은 얼마든지 있고 그런 사람이 큰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현장에서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인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시대나 ‘인간성’이고 지금 우리 금융기관이 부족한 점은 ‘창의성’이라고 듣고 있습니다. 그 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뽑아야 한다는 사명을 갖고 있지요.”

 

7년 차 면담자의 말입니다. 이 말을 듣고 교육학부에 소속해 있으면서 문화인류학을 하는 학생들이 9차례의 면담을 버텨내고 뽑힌 배경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동시에 취업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취업을 해야 하나? 왜 사람은 일을 해야 하지?”라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또 질문할 정도의 학생이 은행 문을 두드려 취업을 결심하는 배경도 이해가 되는 듯했습니다. 

 

여러 곳의 기업으로부터 내정을 받은 상태에서 이 은행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면담자들과 대화를 하면서 이런 사람들과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다른 곳보다 강하게 들었어요. 어느 기업의 리크루트 면담자들보다 ‘나’에 대한 질문이 많았고 약점이라 생각되는 부분을 말해도 오히려 좋은 평가를 해 줬어요.” 

 

선택은 기업에만 있는 권리가 아니라 취업을 해야 하는 학생 입장에서도 선택권이 있음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일련의 취업활동 내용을 들여다보고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일본 사회는 ‘기업은 사람이다!’를 강조하는 편입니다. AI 시대 도래로 취업 직종으로는 불리한 고지에 서 있는 은행은 ‘사람’의 힘으로 타개해 나가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사람’을 선발하기 위해 3월부터 6월까지 인사담당 직원은 근무지와 다른 지역을 넘나들면서 상대를 보고 피면담자에게 자신과 회사를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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