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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지혜 필요한 때

[재미 변호사가 보는 재밌는 미국] 법적 분쟁 생기기 전에 미리 죽음에 대한 계획 세워 놓는 것이 중요

이철재 미국변호사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6.05(Tue) 17:00:00 | 14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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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이생의 마지막,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일련의 일들이 있었다. LG그룹의 구본무 회장은 세상을 떠난 뒤 많은 미담이 흘러나오면서 재벌가의 ‘갑질’로 얼룩진 근래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흐뭇한 미소를 안겨주었다. 특히나 수목장을 택한 고인의 조용하고 사려 깊은 장례는 경외심마저 들게 하였다. 

 

그 장례식 열흘 쯤 전에는 호주의 유명한 식물학자인 데이비드 구달(David Goodal) 박사가 104세의 나이에 독립적인 삶을 영위하기 힘들게 되자 스위스로 찾아가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구달 박사보다 한 달여 전 미국의 41대 대통령 조지 H.W 부시(George H.W. Bush)의 부인이자 43대 대통령 조지 W. 부시(George W. Bush)의 어머니인 바바라 여사가 1988년부터 투병 중이던 지병 울혈성 심부전(Congestive Heart Failure)증의 모든 치료를 중단하고 고통 완화 치료(Palliative Care)만을 받기로 결정한 뒤 이틀 후 세상을 떠났다.

 

구본무 회장의 경우는 구달 박사와 바바라 여사의 경우와는 조금 다른 것이, 죽음 후에 대한 결정이다. 우리 사회에도 화장 풍습이 널리 퍼진 현재 그의 결정이 새삼 사회적 이슈가 될 것은 없다. 다만 재벌 회장의 장례가 그토록 조용히, 조촐하게 아름다운 수목장으로 치러졌다는 것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작은 감동으로 다가 온다. 구달 박사와 바바라 여사의 경우는 아직도 살아 있을 때 죽음에 이르는 방식과 그 시기를 결정하고자 하는 환자의 의지를 나타내는 경우이고, 두 경우 모두 이미 오랜 시간 죽음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고 결정을 내리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듯하다. 순간의 생각으로 내리기 힘든 결정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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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2016년 ‘연명치료 결정법’ 국회 통과​

 

어디까지가 의미 있는 치료이고, 어디부터 무의미 한 것인지, 과연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인지 등이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서건 이슈다. 우리나라도 2016년 ‘연명치료 결정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엄격한 기준에 부합하는 경우,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말기 암 등의 환자가 본인의 의식이 명료할 때 연명치료 계획서를 작성하여 의사에게 제출하고, 의사는 이 계획서를 따라 일정 상황에 이르면 그때부터 생명을 연장시키는 여러 가지 치료 즉 약물치료, 심폐 소생술 등을 하지 않는다. 또 발병 전에도 사전 연명치료 계획서를 작성해 유사시에 대비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법의 제정과 시행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보다는 앞으로 생각해야할 많은 문제가 산재해 있음을 말해주는 경우가 더 많다. 사람의 생명이 달린 문제에 있어서는 특히나 분쟁이 생기기 쉬워 지속적으로 법제도를 정비하고, 나아가 분쟁이 생기기 전에 미리 계획을 세워 놓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경우 구달 박사처럼 의사가 환자의 요청에 의해 치사량의 약을 처방하고, 그 약을 환자 스스로 투여하여 사망에 이르는 의사 보조 자살(Physician Assisted Suicide)은 아직도 찬반 논쟁이 치열하여 8개 주 정도에서만 인정한다. 하지만 스스로 선을 긋고 치료는 여기까지라고 말 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에 대해서는 대체로 찬성하는 편이고, 바바라 여사의 결정에도 많은 이들이 용감한 결정이라면서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환자가 연명치료 중단 의사를 표현하기 전에 식물인간 상태에 이르렀다면, 그때는 누가, 언제, 어떻게 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죽을 권리’를 놓고 법정에서 논쟁을 벌인 것은 1990년 미 연방 대법원에서 결정을 내린 크루잔 판례(Cruzan v. Director, Missouri Department of Health, 497 U.S. 261)이다. 

 

1983년 당시 25세의 낸시 크루잔이라는 여인은 운전사고로 차가 도랑으로 굴러 떨어지면서 5년 넘게 식물인간 상태로 기계에 의존해 숨을 쉬며 누워있었다. 그녀의 부모들이 1985년 딸이 사고가 나기 얼마 전 친구와 대화하면서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죽겠다고 했다는 것을 근거로 이런 상황에서 딸이 더 이상 생명 유지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하도록 허락해 줄 것을 법원에 요청했다. 법원은 ‘죽을 권리’는 헌법적 개인의 권리라면서 이를 허락했지만 미주리 주 보건부가 개입하여 낸시 크루잔이 현 상황에서 생명유지 장치 제거를 원했을 것이라는 더욱 확실한 증거를 요구하며 항소하여 미주리 대법원이 1심 판결을 깨고 생명유지 장치 제거를 불허하고 결국 1989년 미 연방 대법원에서 역사상 최초의 ‘죽을 권리’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대법원에서 공방을 벌인 직접적인 이슈는 가족이나 배우자가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의 생명유지 장치 제거를 요청할 때 주정부가 나서 이를 제지하고 환자 자신의 의지를 가늠할 증거를 요구할 자격이 있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밖에도 몇 가지 사안에 대한 판결도 아울러 내렸다. 이 역사적 판례를 요약하면 (1) 헌법에 죽을 권리라는 것이 명시적으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신체의 자치권(Bodily Autonomy)의 차원에서 환자가 치료를 거부 할 권리는 오랫동안 인정되어왔고, (2) 제 삼자가 의식이 없는 환자를 대신해 치료를 거부 할 때는 환자가 치료 거부를 원했을 것이라는 명확하고 확실한(Clear and Convincing) 증거를 제시해야 하며, (3) 연명치료 계획서를 사전에 작성하지 않은 의식이 없는 환자의 경우 정부가 생명 보호의 의무 차원에서 개입해 보다 상세한 증거 제시를 요구할 수 있다. 

 

미국 수정헌법의 1조부터 10조는 개인의 권리에 관한 것들로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라 불린다. 권리장전 안에 명시적으로 들어 있지는 않지만, 오랜 세월 수정헌법 14조의 ‘평등보호조항(Equal Protection)’ ‘정당한 법 절차(Due Process)’ 조항 등에 근거한 법원의 해석에 의해 생긴 ‘묵시적 개인 권리(Implied Individual Rights)’도 있다. 크루잔 판례에서 연방 대법원은 치료를 거부할 권리를 헌법의 묵시적 개인 권리 중 하나인지 명확히 하지는 않지만, 치료를 거부하여 죽음에 이를 권리가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혼수상태인 환자가 연명치료 계획서를 미리 작성하지 않아 가족이나 배우자 등 제3자가 치료 거부를 요청할 시에는 정부가 개입해 ‘명확하고 확실한’ 증거를 요구할 수 있다고 하며, 미주리주의 손을 최종적으로 들어주었다. 

 

법원이 인정한 권리가 단순히 치료를 거부할 권리인지 자신이 선택한 시기에 죽을 권리인지 또한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 이를 분명히 정의 내리는 일은 각 주의 사법 혹은 입법부로 넘어갔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미주리주 정부는 처음부터 크루잔의 부모가 더없이 헌신적인 부모임을 강조한다. 연방 대법원에 제출한 서류에조차 그들이 식물인간이 된 딸을 얼마나 지극 정성으로 돌봐왔는지를 적어 대법원도 판결문에 그들이 헌신적인 부모임을 언급한다. 그럼에도 미주리주 정부는 그들 부모의 요청을 가로막고 나섰고, 대법원도 주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게다가 더욱 이해하기 힘든 것은 이 판결 이후 크루잔의 부모가 증거를 보강해 법원에 다시금 생명 유지 장치 제거를 요청하자 미주리주 정부는 별도의 설명 없이 슬그머니 모든 법률 행위를 철회하여 결과적으로 크루잔의 부모가 법원의 하락을 받는 것을 암묵적으로 도왔다. 왜였을까? 

 

슬픈 현실은 모든 부모가, 혹은 가족이나 친지가 크루잔의 부모처럼 헌신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즉, 미주리주 정부는 주정부가 나서 환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할 확실한 증거를 요구할 수 있다는 판례를 남기고자 개입을 했던 것이고, 원하던 판결을 받자 스스로 물러나 크루잔의 가족들이 결정을 내리도록 한 것이다. 생명 보호 차원에서 좋은 판례를 남기고 희생적인 부모의 힘든 결정을 존중해 깨끗하게 물러난 미주리주 정부의 행보는 삶과 죽음을 다루는 연명치료 중단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를 잘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미리 준비하는 것만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싸움​ 피할 수 있어

 

그러나 이 판결을 근거로 후일 정부가 지나치게 간섭을 해 일이 오히려 복잡해 진 경우도 있다. 테리 시아보(Terri Schiavo)라는 여인은 심장마비로 인해 식물인간이 되었으나, 연명치료를 중단하고자 하는 남편과 이를 반대하는 그녀의 부모 간의 싸움이 법정으로 번지고, 법원이 생명유지 장치 제거를 명령 했으나 미국 대통령까지 개입하면서 중단했던 연명 치료를 다시 시작하는 등 수많은 법정 싸움을 거쳐 연명 치료 중단을 처음 요청한지 7년 만에 완전히 중단했다. 환자 자신의 생명을 보호할 법적 장치는 필수이다. 하지만 현실을 무시한 지나친 규제와 정부의 개입으로 환자의 생명과 죽음의 절박한 문제가 정치 싸움으로 확대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도 2018년 2월 연명치료 중단 법 시행 이후 두 달여 만에 3000명이 넘는 환자가 연명치료 중단을 했지만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에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을 갖춘 병원이 몇 되지 않고, 연명치료 중단 여부가 매우 중요한 이슈인 요양병원은 당분간 연명치료 중단 사각지대가 될 수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현대의학 기술은 아직 완치 가능하지 않은 병이라도 관리하고, 생명을 유지, 연장 시키는 분야에 있어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앞으로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결정해야 할 경우는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가장 중요한 환자 자신이 소모적 논쟁으로 희생되지 않기 위해서는 몇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처음 실시하는 제도이다 보니 정부가 많은 우려를 하겠지만, 행정 편의적 법률 제정에만 신경을 쓰지 말고,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행정이 필요하다. 법이란 진공상태에서 만들어지고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실존 인물에게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모두 한번쯤 죽음을 생각하고 미리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문서를 만들고 이를 실천해 줄 대리인을 지정하는 것을 고려해 보는 것이다. 미리 준비하는 것만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싸움과 절차를 줄일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즐거운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도 지혜로운 삶이 아닐까 한다. 

 

미국인이 바바라 부시 여사의 결정에 용기있는 행동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는 열심히 투병하고 더 이상 투병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될 때 과감히 치료를 중단하고 하루라도 평화롭게 가족과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도록 스스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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