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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일상으로 스민 ‘창의도시’ 부천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20년 꾸준히 만화 콘텐츠를 산업으로 키워내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서울대 도시조경계획연구실 연구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6.13(Wed)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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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미국 출신의 저명한 소설가 펄 벅과의 인연으로 유명하다.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펄 벅은 워낙 아시아 지역에 애정이 많았다. 펄 벅의 이런 관심은 그에게 노벨상과 퓰리처상을 안겨준 작품 《대지》가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우리나라를 소재로 하는 소설도 3편이나 발표했다. 그는 아시아의 혼혈 어린이들을 위한 인권운동을 펼치기도 했는데, 지금의 부천시 심곡본동에는 펄 벅이 전쟁고아와 혼혈아동을 위해 세운 ‘소사희망원’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소사희망원은 유한양행의 창립자 유일한 박사가 부천시에 가지고 있던 부지를 받아서 세워졌다. 유일한 박사는 생전에 많은 사회공헌 활동을 해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부천시에 있는 유한대학교 역시 유일한 박사가 역점을 두었던 교육사업의 하나였다. 부천은 펄 벅과 유일한 박사, 이 영향력 있는 두 인사가 인연이 돼 뜻 깊은 사업을 펼친 지역이라는 특별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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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로 채워진 창의도시


그밖에도, 부천에는 크고 작은 문학인들과의 인연들이 많다. 대표적인 인물은 ‘강남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란 구절이 인상적인 시 《논개》로 유명한 변영로 시인이다. 부천 원미동을 배경으로 하는 양귀자 소설가의 《원미동 사람들》이란 소설도 있다. 정지용 시인도 부천 소사본동에 잠시 적을 두고 살았다. 부천시는 이런 역사의 단편들을 밑거름 삼아 문화도시로 발돋움하고자 했다. 작년, ‘문학’ 분야 유네스코 창의도시에 도전해서 선정된 것은 그런 노력의 한 성과물이었다.

 

최근에 찾은 부천시에서는 관공서나 문화시설, 그리고 각종 리플릿에서 유네스코의 로고와 ‘창의도시’란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부천시청 건물 전면에 내걸린 ‘창의도시 부천’, ‘Creative Bucheon’이란 사인보드가 눈에 띄었다. 부천시 홍보 포스터는 여느 도시에서 보지 못한 독특한 디자인이었다. 부천 필하모니, 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세계비보이대회, 부천 천문과학관, 그리고 지난 6월1일 정식 개관한 부천아트벙커 B39까지, 부천에서 내세우는 여러 문화콘텐츠들이 재미있게 묘사돼 있었다. 하나하나의 내용도 위트 있었고 이 모든 것들이 합쳐진 전체 포스터의 디자인은 이름 그대로 ‘창의적인 도시’에 걸맞은 센스라 생각했다. 유네스코 창의도시란 명성이 주는 위엄도 좋지만, 이런 작은 브랜드디자인에서 오히려 그 도시의 문화적 수준이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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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만화 산업의 독보적 상징 부천

 

‘문학’ 분야로 유네스코 창의도시에 이름을 올렸지만, 사실 필자에게 부천은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더 먼저 떠오르는 도시였다. 부천은 1990년대 후반부터 만화산업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문화콘텐츠가 가지는 경제적인 부가가치에 주목했다. 문화를 ‘산업’으로 본 것이다. 앞으로 도시가 계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예감하고 실천에 옮겼다. 처음에는 부천에서 만화축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유행처럼 생겨나던 지역축제의 그저 조금 특별한 소재일뿐이란 생각 정도를 했었다. 그랬던 것이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는 올해로 벌써 21번째 행사를 준비하고 있고,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도 20회를 앞두고 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 한국만화박물관이 부천에 있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만화가의 약 3분의1이 부천에 적을 두고 있다 한다. 이 정도면 이제 ‘만화’라는 문화콘텐츠에 있어서 부천은 독보적이라고 할 만하다.

 

최근에 개관한 아트벙커 B39는 쓰레기소각장을 리모델링한 문화공간이다. 문화예술공간으로 변신했지만 옛날 소각장으로 사용되던 모습을 완전히 지우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곳에서의 경험이 더 특별했던 것 같다.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태우던 벙커의 압도적인 규모가 그대로 남아 있고, 소각과정에 쓰이던 기계설비들은 박물관의 유물처럼 보존돼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직 콘텐츠가 다 채워지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이 장소의 과거를 훔쳐보고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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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은 2017년 문학부문으로 유네스코 창의도시에 선정됐다. 부천시청 건물벽면의 'Creative Bucheon' 일러스트레이션이 인상적이다. ⓒ김지나


이로써 부천이 ‘문화’를 활용하는 또 하나의 스토리가 더해진 셈이었다. 성장하는 도시 안에서 기능을 다하고 천덕꾸러기가 된 폐공간의 ‘재생’. 낡으면 무조건 갈아엎고 새것으로 채우기 바빴던 지난 방식에서 벗어나, 도시의 오랜 장소들이 가지는 시간의 가치를 인정하고 활용하는 다음 시대의 패러다임을 적극 수용한 결과다.

 

부천은 앞으로도 부지런히 문화사업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특히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사업들이 눈에 띈다. 생활 속으로 문화가 더 스며들도록 하겠다는 생각이 엿보였다. 이전에는 정책결정자들의 비전과 추진력으로 도시의 문화를 부흥시켰다면, 이제는 아래에서부터 스스로 찾고 만들어가는 자생력이 필요한 때다. 부천시의 창의성은 그 시민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을 때 더 빛을 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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