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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VIP’로 가는 시간…섣부른 열망도, 실망도 금물

[한강로에서] 북·미 공동성명 이행 과정 냉철히 지켜봐야 할 시간

김재태 편집위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6.19(Tue) 14:00:00 | 14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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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생전에 한국전쟁 중 좌우 양쪽에 의해 죽을 고비를 두 번 넘겼다고 말했다. 전쟁의 와중에 태어난 형은 다른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배고프고 두려운 유년기를 보냈다고 했다. 이런 기억은 그 시기를 힘들게 건넌 사람 대다수가 공유하는 슬픈 유산이다. 지금도 어느 산간 마을에서는 빨치산을 둘러싼 갈등의 마찰음이 오래된 금지곡처럼 나직이 떠돌고, 전사자를 둔 유족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전쟁은 그렇게 무섭고 아프고 치사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의 강렬한 추억은 마음 깊이 단단한 딱지를 남긴다. 지혈되지 않은 피처럼 뜨겁게 흘러나와 의식 속에 파고든다. 그런 만큼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는 몸으로 체험한 전쟁 세대의 본능적 두려움을 제대로 알 수 없다. 포화가 그친 지 65년이 지났지만,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의 땅 한반도에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휴전 중이고, 전쟁이 남긴 상처 또한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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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불안한 평화의 시대를 끝내기 위해 남북 정상이 먼저 빗장을 풀었고, 마침내 북·미 정상이 세기의 만남을 가졌다. 취소했다가 번복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이들의 회동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고,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기대도 높았다. 하지만 회담 이후 나온 공동성명문에는 다수의 예상 혹은 기대를 깨고 미국 측이 꼭 관철시키겠다고 장담했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가 명시되지 않았고, 그에 따른 논란이 뜨겁게 불붙었다. 일부에서는 이 회담의 승자가 트럼프 대통령이 아닌 김정은 위원장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이렇듯 CVID가 명문화되지 않은 것을 두고 많은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누가 뭐래도 그 실패가 평화를 향한 열정의 실패가 아니라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모든 것이 이제 겨우 첫발을 뗐을 뿐이다. 후속 회담이 남아 있고, 거기서 얼마나 실질적인 비핵화의 핵심을 담아내느냐가 중요하다. 후속 회담마저 지지부진하고 성과 없이 비틀거릴 때, 그때가 바로 실패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이번 싱가포르 회담은, CVID로 가는 길이 어렵듯 ‘CVIP(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평화)’를 만들어내기까지의 과정 또한 멀고 험난할 것임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각인시켜주었다. CVIP, 즉 피부로 느끼는 평화, 손에 잡히는 평화는 그것을 원하는 간절함이 없이는 이룰 수 없다. 개인의 영광을 위해, 혹은 정치적 이해를 달성하기 위해 외치는 평화는 헛되고 헛될 뿐이다. “통일은 대박” 같은 뜬금없는 선언적 수사 따위로는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것이 평화다.

 

CVID 논란이 있다 해도 이번 회담에서 평화에 대한 기대까지 불발에 그친 것은 아니다. 지금은 언제 또 북한 미사일이 날아오를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때와는 명백히 다른 시기다. 여전히 불안하지만 과거와는 분명히 달라진 이 미완의 평화를 CVIP로 바꿔가는 데는 섣부른 열망도, 섣부른 실망도 금물이다. 대신 간절하고 날카로운 매의 눈으로 판문점선언과 북·미 공동성명이 이행되어 가는 과정을 냉철히 지켜봐야 할 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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