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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재벌 견제기구로 급부상 중인 국민연금

5%룰 완화 통해 적극 주주권 행사할 듯…“정부 정책 수단 되면 또 다른 부작용”

엄민우 시사저널e. 기자 ㅣ mw@sisajournal-e.com | 승인 2018.06.20(Wed) 13:45:31 | 14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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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 당시 국민연금은 단순 방관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가담자로 낙인찍혔다. 국민연금 이사장 및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문형표 전 장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공단에 압력을 넣은 혐의로 옥살이를 했다. 당시 기금 운용과 관련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 역시 비슷한 혐의로 감옥에 다녀왔다. 국민연금의 이른바 ‘빅2’라고 할 수 있는 자리에 있던 인물들이 모두 감옥살이를 한 셈이다. 이처럼 국정농단 사태로 ‘친(親)기업 거수기’의 오명을 썼던 국민연금이 새로운 재계 감시기구로 등극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는 7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함께 금융위원회에서 현재 검토 중인 ‘5%룰’ 완화가 이뤄질 경우 국민연금의 재계 견제기구로서의 역할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6월4일 대한항공에 ‘국가기관의 조사 보도 관련 질의 및 면담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개서한을 발송했다. 이 서한을 통해 국민연금은 “최근 귀사 경영진과 관련한 여러 국가기관의 조사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이 사안에 대한 입장과 이를 뒷받침할 근거자료를 요청하며, 경영진 및 사외이사와의 비공개 면담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지주사 한진칼의 2대 주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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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의 이 같은 행보는 특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한 달 앞둔 시점에 나온 터라 더욱 눈길을 끈다. 국내 대기업들의 주식을 상당수 갖고 있는 국민연금이 주주로서 본격적으로 기업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재계에선 스튜어드십 코드보다 금융위의 5%룰 완화 추진 움직임에 주목한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다 해도, 이를 적용할 범위 및 효과는 한계가 있다”며 “오히려 금융위가 5%룰을 풀어준 것을 바탕으로 경영권에 대한 국민연금의 입김이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5%룰은 상장사 지분 5% 이상을 가진 투자자가 지분 변동이 있을 경우 5일 이내 주식보유 및 변동사항 등을 공시하는 규정이다. 그동안 보유 목적이 ‘경영 참여’인 경우 주식 보유 상황을 더 상세하고 신속하게 공시해야 해 기관투자가의 부담이 컸었는데, 이를 완화해 공적 연기금은 약식보고만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금융위가 검토 중이다. 

 

금융위의 이런 결정은 현 정부 들어 국민연금이 대주주로서 제 역할을 할 것을 강조하는 기조를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이 국민연금으로선 부담스러울 수 있는 일”이라며 “이 같은 시점에 금융위가 이번에 5%룰을 완화하겠다고 나선 것은 사실상 국민연금이 더욱 적극적으로 재벌 견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민연금 역할 강화와 관련한 움직임이 극단적으로 흘러갈 경우 오히려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민연금이 정부의 입김에 휘둘려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단이 돼 버리면 박근혜 정부 때와 같은 일이 또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정부 정책 수단처럼 사용하려 한다면, 나쁜 의도를 가진 정권이 집권할 경우 부정적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며 “연금 주주권을 행사하는 궁극적 목적은 연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해 수익률을 높여주는 것임을 잊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요즘 기관투자가들은 리스크 매니지먼트 차원에서 기업이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게 운영되는지 따져보고 있다. 당연한 것이고 그에 맞게 운영하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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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존재감에 재계 초긴장 

 

이처럼 국민연금의 입김이 강해질 것으로 예상되자 기업들은 벌써부터 긴장하는 눈치다. 국민연금이 주요 주주로 있는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들이 현 정부 들어 주주친화적인 정책을 펼치고자 하는데, 국민연금까지 주주로서 경영에 본격 참여하면 또 다른 압박이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반면 시민단체 등에선 국민연금의 역할 확대에 대해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윤영대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는 “그동안 국민연금은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대기업에 유리한 쪽으로 행사해 온 것”이라며 “공적기금을 다루는 주주로서 불법행위 등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의무니만큼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말 기준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상장기업은 275곳, 10% 이상 보유하고 있는 곳은 84곳에 이른다. 이는 국민연금이 기업경영에 상당히 광범위하고 깊게 관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대한항공의 경우를 따져보자. 지난해 사업보고서 기준 대한항공 대주주는 한진칼이다. 대한항공의 지분 29.96%를 한진칼이 갖고 있는데, 한진칼은 조양호 회장(17.84%), 조현아 전 부사장(2.31%), 조원태 사장(2.34%), 조현민 전무(2.30%) 등 오너 일가가 대주주로 있다. 국민연금은 이 한진칼과 대한항공의 지분을 각각 11% 이상씩 보유하고 있다. 현행법상 주식 3% 이상을 가진 주주는 이사 해임 안건을 제안하고 주주총회를 소집해 이사 해임을 결의할 수 있다. 국민연금이 본격적으로 경영참여를 하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있다. 결국 무산됐지만 현대자동차 지배구조 개편 관련 현대모비스 분할·합병 건 역시 주주인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다. 지분 9%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기아자동차(16,9%),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7%)과 함께 현대모비스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주였다. 

 

공적 연기금은 단순히 지분이 많고 적고를 떠나 주주들에게 던지는 상징성도 크다. 보유하고 있는 지분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기업 지배구조에 정통한 한 대학 교수는 “공적 연기금은 단순히 주주가 아니라, 주주들의 대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며 “이 때문에 헤지펀드 등이 주주권을 행사하려 할 때 공적 연기금의 동의를 이끌어내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와 더불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자리에 누가 오게 될지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이 자리는 11개월째 공석이다. 기금운용본부장은 기금 투자와 관련해선 사실상 이사장과 맞설 만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국민연금의 한 인사는 “연기금을 굴리는 자리니만큼, 기금운용본부장은 실세로 꼽힐 만한 인사들이 많이 왔었다”고 전했다. 박근혜 정권 당시 기금운용본부장을 맡았던 홍완선씨는 최경환 당시 새누리당 의원과 고등학교 동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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