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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고한 땅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

일본 오사카서 규모 6.0 지진 만난 본지 기자 체험기

일본 오사카 = 구민주 기자 ㅣ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8.06.20(Wed) 15:2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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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이게 뭐야. 나가야 돼? 일단 엎드려, 엎드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땅의 흔들림’이었다. 피할 공간 하나 없이 닥친 위험은 순식간에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6월18일 오전 오사카 전역에 발생한 리히터 규모 6.1의 강진. 5분도 채 되지 않은 그 짧고 굵은 체험은, 수십년 기자가 가져 온 ‘견고한 땅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리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기자는 당시 오사카에서 북동쪽으로 30~40km 떨어진 교토역 부근에 머물고 있었다. 오사카·교토 지역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 1위로 주로 꼽혀 온 곳이다. 오가기 편하고 가까운 덕에 한해 200만 명 이상의 한국인 관광객이 찾는다. 기자도 이 때문에 짧은 휴가지로 이곳을 택했다. 평온한 여름휴가 일정의 둘째 날 오전, 외출 채비를 하며 간단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던 중, 요란한 ‘덜덜덜’ 소리와 함께 불청객은 들이닥쳤다.

 

서 있던 집이 순간 좌우로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100년도 끄떡없다는 탄탄한 목조로 이뤄진 2층 집이 얇은 나무판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마치 집 전체가 물결치는 바다 위에 떠, 몸과 함께 빠른 파도를 타는 느낌이었다. 몸은 계속 비틀거렸고 천장에 고정된 조명도 위태롭게 흔들렸다. 뜨거운 물을 부어 둔 컵라면도 아슬아슬 탁자 위에서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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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를 포함, 함께한 일행 모두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안전하지?’에 대한 매뉴얼이 없었다. 당장 문을 열고 집 밖에 나가야 하는지, 그래도 집 안이 가장 안전한지 기본적인 답조차 헷갈렸다. 학창시절 제대로 된 지진 대피 훈련이란 걸 받아본 적도 없었다. 받았더라도 ‘다른 나라 일’이라며 흘려들었을 게 분명했다. 지난해 포항 지진 당시, 서울에 위치한 집 거실에서 평면 TV가 미세하게 떨리는 모습을 목격한 게 지진 경험의 전부였다. ‘지진 문외한’이 결국 택한 대처는 거실과 현관문 중간쯤 바닥에 어설프게 엎드려 진동이 멈추길 잠자코 기다리는 것이었다.

 

(※확인에 따르면, 지진 발생 시 무작정 밖으로 나가는 것은 더 위험할 수 있으니 실내 튼튼한 가구 밑으로 들어가 베개 등으로 머리를 감싸는 것이 안전하다. 또한 비교적 고열에도 견딜 수 있고 내구성 있는 자재로 둘러싸인 화장실도 안전한 공간 중 하나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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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만에 비상 체제 완료…우리 외교부는?


교토 지역의 정확한 지진 규모는 5.9였다. 진원의 깊이와 진앙 거리 등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보통 규모 6.0 안팎의 지진은 담, 기둥 등 구조물이 파괴될 수 있는, ‘피해가 심각하게 발생하기 시작하는 단계’로 규정된다. 실제 이번 지진 발생으로 5명이 사망했고 4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6월20일 오후2시 기준).


오전 7시58분, 진동을 감지함과 동시에 집 전체엔 ‘따르릉’ 거리는 경보음이 울렸다. TV 등 모든 전기가 꺼진 후 즉각 비상전력으로 대체됐다. 일본 기상청에서 긴급 재난 문자가 전송돼왔다. 한국어 번역으로도 문자가 함께 도착했다. TV에선 일제히 지진 특보가 보도됐다. 지진 발생 후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이 모든 것들이 이뤄졌다.

 

반면 한국 외교부에선 지진 발생 몇 시간이 지나 여유를 되찾은 후에야 문자가 전송돼왔다. 기자는 당일 오후1시, 함께한 일행은 저녁 7시가 넘어서야 ‘현지 거주 또는 방문 중인 국민께서는 안전에 각별히 유의하시기 바란다’는 문자를 받았다. “이미 각별히 유의하고 있거든”. 자연히 볼멘소리가 나올 법한 긴 텀이었다.

 

국내 기상청의 지진 관련 긴급재난문자는 2016년 9월 규모 5.8의 경주지진(국내에서 발생한 가장 강한 지진이었다)과 2017년 11월 5.4의 포항지진을 거치며 상당히 대처 속도가 빨라졌다고 평가받았다. 포항지진의 경우, ‘지진 진동보다 재난 문자가 더 빨리 왔다’며 호평을 받기도 했다. 다만 휴대폰 사용자 전체에게 일제히 문자를 전송하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현재 사용자의 4분의1 정도에게만 문자가 발송되고 있는 점이 한계다. 게다가 외국에서 재난이 발생할 경우 외교부의 알림 속도는 이처럼 아직 매우 느리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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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지진 겪은 거 아니지?”


오사카 지역은 일본에서도 지진이 잘 일어나지 않는 곳이었다. 1923년 관측 이래 오사카에서 이 정도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건 처음이었다. 이 때문에 현지를 방문한 관광객들은 물론, 이 곳에서 수년 간 거주해 온 한인 유학생들 또한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오사카 지진 발생 후 한 포털 사이트엔 “오사카에서 산 몇 년 동안 이런 경험 처음이었다”, “작년 포항 지진도, 경험했는데 이번 오사카 지진이 더 무섭고 강했다”는 뉴스 댓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오전 중 한바탕 ‘멘붕’이 해소된 후 오전 9시쯤 숙소 밖을 나와 교토역으로 향했다. 마을은 불과 한 시간 전 강한 지진을 겪었다고 전혀 볼 수 없을 만큼 조용하고 안정적이었다. 건물들도 모두 금 간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편의점 등 상점들도 정상 영업 중이었다. 교복 입은 학생들, 자전거 탄 직장인들 모두 유유히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이 사람들도 방금 지진 경험했던 것 맞지?” 길에서 불안하고 혼란스러워 보이는 건 기자 일행뿐인 듯 했다.

 

교토역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안전을 위해 모든 열차가 운행 중단 및 무기한 지연되면서 발 묶인 사람들로 개찰구 앞이 북적거렸다. 그러나 직원에게 항의하거나 열차 시간을 재차 묻는 등 소동을 벌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가만히 서서 열차 정보가 뜨는 전광판만 바라보고 있었다. 열차 지연 등 교통 통제는 다음날까지 계속됐다. 오사카 간사이공항으로 직행하는 열차 스케줄에 문제가 생기면서 급하게 경유 경로를 찾거나 비싼 요금을 무릅쓰고 택시를 이용하는 관광객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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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지진보다 무서운 여진”


첫 번째 지진보다 무서운 건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여진’이었다. 2~3일 내 큰 여진이 여러 차례 발생할 수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면서, 길을 걸을 때도 잠을 잘 때도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지진이 발생한 날 밤, 규모 4.0안팎의 여진이 두어 차례 찾아왔다. 잠귀가 어두운 기자도 침대 위에서 단번에 감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오전에 느낀 진동의 느낌이 침대 바닥부터 방안의 벽까지 이어졌다. 1분 내로 진동은 끝났지만 그 후 한동안 뜬 눈으로 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쯤 되니 한국 ‘땅’에 대한 그리움이 샘솟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돌아가기 싫어 한숨만 푹푹 쉬던 여느 휴가 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한국의 지인들이 걱정의 메시지를 보내 올 때마다 아닌 척 하면서도 괜스레 마음속에 걱정이 커져만 갔다. 관광을 하면서도 관심은 지진 관련 소식에 쏠렸다. 일행과의 대화도 지진과 관련된 것들로 자연스레 귀결됐다. 한밤의 기억 탓에 낮에도 여진에 대한 공포는 이어졌다. 특히 택시를 타고 고가도로를 지날 땐 괜히 몸이 뻣뻣하게 굳기도 했다.

 

6월19일 오후4시 항공편 탑승을 위해 오전부터 서둘러 공항으로 발길을 옮겼다. 역시나 공항으로 가는 직행 열차가 지연되는 바람에, 전철·택시, 다시 전철 세 차례 환승을 걸쳐 겨우 탑승 시각을 맞출 수 있었다. “이제 무사하다” “좀 자자 이제” 비행기가 이륙하자 기내 곳곳에서 이 같은 대화가 들려왔다. 기자도 그제야 한숨 돌렸다. 너무 시간이 짧아 출발도 전에 아쉬웠던 2박3일이 마치 23일처럼 느껴졌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계속 일본의 지진 상황을 체크했다. 이전에 지진 기사를 접하던 것과 사뭇 다른 관심과 걱정이 향했다. 다행스럽게도 지진 발생 오사카 전역은 빠른 속도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전해졌다. 우리 국민의 피해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은 민주적”이라고 말했다. 늘 재난의 위협에 사는 현지인들에게 미안할 만큼의 짧은 체험이었지만, 누구에게나 올 수 있고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것이 재난이고 또 위험임을, 재난은 영화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님을 몸소 체험한 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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