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미래 부정해도…“가상화폐 활용 모금은 현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18.06.2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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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IT벤처 1세대 이영상 대표…“싱가포르에서 ICO로 돈 모아 한국 갖고 가도 합법”

 

한 테마파크가 개장을 앞두고 있다. 여기엔 다양한 놀이기구가 생길 예정이다. 단 이를 이용하려면 테마파크가 발행하는 토큰이 필요하다. 테마파크 측은 이 토큰을 미리 팔기 시작했다. 몇 달 후, 테마파크가 문을 열었다. 

 

테마파크는 금세 유명해져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롤러코스터를 타려면 1만원을 내고 토큰을 사야 했다. 그러자 미리 토큰을 사뒀던 사람들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자신들은 1000원에 토큰을 사 뒀기 때문이다. 토큰을 1만원보다 싼 값에 팔아 돈을 버는 사람도 생겨났다.  

 

 

일본 시부야역 DMM社의 비트코인 광고 ⓒ 연합뉴스


 

 

주식 대신 가상화폐로 자금 조달하는 ICO

 

이제 테마파크를 일반 회사, 토큰을 가상화폐라고 가정해보자. 가상화폐공개(ICO)는 회사가 가상화폐를 팔아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이다. 보통은 기업공개(IPO)가 회사의 자금 조달 방식으로 자주 활용된다. 가상화폐가 아닌 주식을 파는 것이다. 단 주식을 팔면 회사의 지분도 넘어가기 때문에 경영에 위협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ICO를 하면 그럴 우려가 없다. 

 

“ICO는 사실 외부 투자자보다 사업 주체에게 더 유리한 펀드레이징(모금)입니다.” 6월10일 싱가포르에서 만난 이영상 이김컨설팅 대표의 말이다. 이김컨설팅은 올 5월 싱가포르 국세청이 뽑은 상위 15위 세무법인으로 선정됐다. 한국 기업으로선 최초다. 지금은 외국 기업을 상대로 ICO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이 대표는 “왜 아직도 우리나라 기업이 싱가포르에서 ICO를 하는 데 소극적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싱가포르는 ICO 시장에서 소위 ‘핫’한 나라로 꼽힌다. ICO 규모는 미국과 스위스에 이어 세 번째다.  

 

6월10일 싱가포르 호텔 '머큐어 싱가포르 온 스티븐스'에서 만난 이영상 이김컨설팅 대표. ⓒ 시사저널 공성윤



전 세계 ‘ICO 빅3’ 국가 싱가포르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BS&C의 정대선 대표는 지난해 스위스에서 ICO를 통해 가상화폐 ‘에이치닥(Hdac)’을 발행했다. 그는 이를 팔아 3000억원의 자금을 마련했다. 그런데 최근엔 스위스의 ICO가 주춤해졌다고 한다. 당국이 올 초부터 ICO에 출금제한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이와 관련해 “많은 기업들이 싱가포르로 넘어오는 추세”라고 했다. 

 

무엇보다 싱가포르엔 ICO를 위한 최소자본금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자금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이 ICO를 하기에 유리하다. 이 대표는 “외국 기업에 대한 세금 혜택도 풍부하다”면서 “국내 기업이 싱가포르에서 ICO로 돈을 모은 다음 한국으로 갖고 들어가도 아무런 법적 제약이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은 지난해 9월 ICO를 규제했다. 유사수신 등 사기 위험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어떤 업체는 올 2월 ICO로 ‘비트코이인(Bitcoiin)’을 발행해 7500만 달러를 모으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름에서도 엿보이듯 짝퉁 비트코인이다. 여기엔 왕년의 할리우드 스타 스티븐 시걸도 얽혀 있었다. 미국 ICO 자문사 새티스그룹은 3월 “ICO의 81%가 스캠(scam․사기)”이라고 분석했다. 

 


사기당할까 투자 꺼려진다면 ‘화폐 등급’ 봐야

 

이 대표도 ICO 사기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기를 예방하는 방법에 대해 들려줬다. 우선 ICO로 발행되거나 발행이 예정된 가상화폐를 평가하는 사이트를 참고해야 한다. ‘icorating.com’ ‘icobench.com’ 등이 그 예다. 여기서 등급이 낮게 나온 코인은 피해야 한다. 

 

큰 금액의 가상화폐를 비공개로 파는 ICO 사업자도 의심해봐야 한다. 일명 ‘프라이빗 세일’이다. 사업자는 이를 통해 단기간에 큰돈을 모을 수 있다. 하지만 투자자 입장에선 비공개로 이뤄지기 때문에 위험이 크다. 이 외에도 이 대표는 “ICO 사업체의 기술력과 가상화폐 개발진에 대해서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래도 의문은 남아 있다. ICO 투자로 받은 가상화폐를 아무 데도 쓸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서두에서 언급한 테마파크는 토큰으로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갑자기 테마파크가 개장하자마자 토큰을 취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면? 

 

이 대표는 그러나 가치교환 수단으로써 가상화폐를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그는 “5년 뒤엔 많은 것이 바뀔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1994년에 인터넷이 처음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그걸 왜 쓰냐’고 반문했다. 천리안이나 하이텔 같은 PC통신으로 필요한 정보를 다 다운받을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상황이 역전되기까진 5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가상화폐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많은 국가들이 견제하고 있지만 일부에선 제도권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가상화폐가 1600개가 넘는다. 이들이 다 성공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1% 이상은 살아남아 일반 화폐처럼 쓰일 것이다.” 

 

 

이영상 이김컨설팅 대표. ⓒ 시사저널 공성윤

 

 


“5년 뒤엔 가상화폐가 가치교환 수단으로 쓰일 것”

 

이 대표는 “전 세계 인구 중 가상화폐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이 10%만 돼도 시장 가치가 굉장히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렇게 되면 소위 ‘큰손’에 의해 가치가 급변할 가능성은 줄어들고 안정기에 접어들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물론 그럼에도 가상화폐가 보편화될 것이라고 100% 장담할 순 없다. 하지만 “가상화폐를 이용한 ICO는 이미 현실”이라고 이 대표는 말했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ICO를 통해 조달된 자금은 총 37억 달러(약 4조원). 이는 한국거래소의 IPO 규모인 74억 달러(약 8조원)의 절반에 달한다. 싱가포르 증권거래소의 IPO 규모(35억 달러·약 3조 8000만원)와 비교하면 더 크다. 러시아 메신저 텔레그램은 ICO 프라이빗 세일로만 이미 1조 8000억원을 모았다. 

 

홍익희 세종대 교수는 6월17일 시사저널에 실린 인터뷰를 통해 “ICO를 통한 자금조달이 제도권 안으로 성큼 들어오는 모양새”라며 “규제 가이드라인만 명확하다면 우리나라도 ICO 금지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영상 대표는 누구?]

 

1980년대에 PC통신을 즐겼던 세대라면 ‘이야기’란 통신용 프로그램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야기는 초기 국내 PC시장을 이끈 주요 소프트웨어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사용자는 150만명이 넘었다. 이 이야기를 만든 사람이 바로 이영상 이김컨설팅 대표다. 

 

안철수나 이찬진은 흔히 벤처 1세대로 불린다. 이 대표도 그 중 한명이다. 큰사람컴퓨터 대표를 지낸 그는 1996년 실리콘밸리로 건너가 인터넷전화(VOIP) 사업을 했다. 그러다 2004년 삼성물산에 입사, 2008년까지 싱가포르 주재원으로 근무했다. 이후 현지에서 세무법인 이김컨설팅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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