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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님 로맨스의 반격 《김비서가 왜 그럴까》

익숙한 설정임에도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이유

하재근 문화 평론가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6.24(Sun) 16:00:00 | 14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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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수목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처음에 시대착오적인, 또는 이미 식상해진 왕자님 로맨스인 것 같았다. 그동안 많이 봐왔던 재벌 2세의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또 만화적인 설정도 실패 요인으로 보였다. 시청자는 만화적으로 과장된 설정을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영되자마자 여성 시청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돌더니 2주 만에 TV 화제성 1위와 함께, 드라마 출연자 화제성에서도 남녀 주연인 박서준과 박민영이 각각 1, 2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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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홈런 친 박서준과 박민영

박서준이 유명그룹 2세이자 경영승계를 받는 이영준 부회장으로 나온다. 박민영은 이영준을 9년간 완벽하게 보좌해 온 ‘비서계의 레전드’ 김미소 비서 역할이다. 이영준은 성격이 까칠하고 자아도취에 빠져 있지만, 능력이 출중하고 외모도 완벽한 남자다. 김미소는 집안 형편 때문에 일종의 소녀가장이 돼 9년 동안 고된 비서일에 몰두해 왔다. 하지만 낙심하거나 비관하지 않고 씩씩하게 웃으며 살아가는 성격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정말 익숙한 설정이다. MBC 《사랑을 그대 품 안에》부터 시작해 SBS 《파리의 연인》, MBC 《내 이름은 김삼순》, SBS 《시크릿 가든》, SBS 《보스를 지켜라》 등 수많은 로맨틱 코미디에서 능력은 출중하지만 성격이 까칠한 재벌 2세가 등장했다. 이런 캐릭터에 최근 들어 추가된 설정이 정신적 트라우마인데,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이영준에게도 트라우마가 있다. 여주인공은 언제나 가난한 캔디 캐릭터였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렇다. 전형적인 요소들을 대놓고 조합한 드라마라 처음엔 악평이 많았지만 지금은 찬사가 쏟아진다.
정경윤 작가의 동명 웹소설이 원작이다. 2014년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된 후 로맨스 부문 매출 1위에 5000만 뷰를 기록했다. 웹툰으로도 만들어져 누적조회 수 2억 뷰에 구독자 500만 명을 돌파했다. 드라마는 이 원작을 최대한 살렸다. 그러다 보니 만화적인 설정이 나오게 됐는데, 그것이 이 작품만의 독특한 매력으로 받아들여졌다.

완벽하고 콧대 높은 재벌 2세 이영준이 하찮게 생각했던 김미소 비서에게 매달리는 것이 초반 로맨스의 포인트다. 넥타이 등을 챙겨주며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던 김미소 비서가 어느 날 퇴사를 선언한다. 이에 놀란 이영준은 ‘김비서가 왜 그럴까’를 고민하게 된다. 처음엔 까다로운 자신을 맞춤 보좌할 비서를 새로 찾기 어렵기 때문에 기존 비서의 퇴사를 아쉬워하는 줄 알았다. 그런 줄 알고 김미소를 잡기 위해 노력했는데, 점점 그런 업무적인 정서가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알고 보니 김미소에게 이성으로 호감이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보좌하지 못할 정도로 까칠한 이영준이 김미소를 자기 곁에 9년 동안이나 둔 것은 단지 업무 능력 때문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천상천하 유아독존 안하무인인 이영준은 자신이 김미소에게 빠져 매달린다는 사실이 혼란스럽다.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자신도 모르게 행동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렇게 매달리는 완벽남 재벌 2세에게 보잘것없는 김미소 비서가 철벽을 치는 것이 초반의 재미 요소였다. 여기에 여심이 폭발했다.

연출인 박준화 PD는 “원작 안에 여심을 자극할 만한 코드가 함축돼 있다”고 말했다. 웹소설과 웹툰에 여성 팬들이 선호하는 요소가 집약됐고, 그것을 드라마로 풀어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런 요소들을 기계적으로 나열하기만 했으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요소들을 성공적으로 표현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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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인물이 매력적이다. 이영준 역할의 박서준이 또 홈런을 쳤다. MBC 《그녀는 예뻤다》, KBS 《쌈, 마이웨이》를 잇따라 성공시키고, tvN 《윤식당》으로 인지도를 넓혔다. 영화 《청년경찰》도 성공시켰다. 여기에 《김비서가 왜 그럴까》까지 연속 히트시키며 로맨틱 코미디계의 장인으로 우뚝 섰다. “눈부시지 않나? 나한테서 나오는 아우라.” 이런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를 남발하는 만화 속 주인공을 박서준이 생생하게 구현했다. 박서준의 존재감이 다른 차원으로 격상됐다.

여주인공도 마찬가지다. 싱그러운 미소의 주인공이자 비서계의 레전드인 김미소를 박민영이 완벽하게 표현했다. 만화 그 자체라고 해서 ‘만찢녀(만화를 찢고 나온 여자)’라는 말까지 나온다. 로맨틱 코미디는 보통 남주인공을 부각시키기 때문에 여주인공은 남주인공을 받쳐주는 정도의 역할이기 쉽다. 하지만 여기서 박민영은 강렬한 매력으로 남주인공 못지않게 부각됐다. 남녀 주인공의 매력으로 극이 살면서, 두 사람이 드라마 출연자 화제성 1, 2위를 하게 된 것이다.


무거운 법조물 분위기 반전시킨 경쾌한 로맨스

한동안 범인 잡는 스릴러가 유행하더니 최근엔 법조 드라마가 초강세다. 이런 작품들은 현실의 공포, 부조리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무거울 수밖에 없는데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정반대로 만화를 기반으로 한 가벼운 이야기다. 화면도 최근 들어 어두운 느낌이 유행했는데, 이 드라마는 마치 화보처럼 밝고 화사하다. 그렇다 보니 설정 자체는 전형적이지만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다. 법조물 초강세에 보기 드문 왕자님 캔디 로맨스였던 것이다.

요즘엔 로맨스물조차도 현실 남친을 내세우는 경향이 있었다. 얼마 전 화제가 된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도 평범한 월급쟁이 남자친구가 나왔다. 회사생활의 고단함도 리얼하게 묘사됐다. 청춘물인 KBS 《쌈, 마이웨이》나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에도 88만원 세대 루저 커플들이 등장했다. 이런 식의 현실 남친 코드가 대세였는데,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모처럼 대놓고 왕자님 신데렐라 코드를 내세웠다.

물론 작품 자체의 힘도 있다. 극 초반에 군더더기 없이 경쾌하게 진행됐다. 늘어지는 구성이었다면 아무리 법조물 속에서 튀는 로맨스물이고, 오랜만의 왕자님이라 해도 대중의 시선을 잡아끌지 못했을 것이다. 기본적인 욕망을 반영하는 트렌드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쉬어갈 뿐이다. 왕자님 신데렐라 코드도 그렇다. 대중의 욕망 중에 이런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식상하다고 해도 주기적으로 돌아오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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