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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스8》 한국의 시선에서는 부러운 기획

여성들이 주도하는 금지된 영역의 장르 설정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6.23(Sat) 11:53:23 | 14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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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이후 케이퍼 무비를 언급할 때 가장 자주 소환되는 영화가 바로 《오션스 일레븐》(2001)이다. 스티브 소더버그라는 숙련된 연출가와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등 스타 군단이 만나 훔친 것은 거액의 현금만이 아니었다. 관객 마음도 강탈했다. 《오션스 일레븐》 성공을 발판으로 《오션스》 시리즈는 《오션스 트웰브》(2004), 《오션스13》(2007)으로 이어지며 11억2000만 달러를 빨아들였다. 그리고 11년 만에 《오션스8》이라는 이름으로 귀환했다. 

 

《오션스8》은 《오션스》 3부작의 스핀오프다. 정확히 말하면 여성 버전이다. 공식은 같다. 각 분야 범죄 전문가들이 의기투합해 목표를 수행하고 흩어진다. 캐릭터 운용도 《오션스 일레븐》과 비슷하다. 짝을 이뤄 팀을 이끌었던 조지 클루니-브래드 피트 역할을 산드라 블록-케이트 블란쳇이 계승했다. 산드라 블록이 연기한 데비 오션은, 이름에서 짐작하겠지만, 《오션스》 시리즈에서 조지 클루니가 연기한 대니 오션의 여동생이다. 《오션스8》은 기존 시리즈가 남긴 유산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함이 없다. 같은 구성의 영화라도 성별을 전환시키면 영화가 얼마나 흥미로워질 수 있는가를 증명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남성이 주인공이었던 작품을 여성으로 바꿔 재가공하는 ‘젠더 스와프(Gender Swap)’ 흐름은 2년 전 개봉한 《고스트버스터즈》에서부터 감지됐으니, 《오션스8》의 전략이 아주 새롭다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남성의 전유물로 평가받는 하이스트 장르에서 여배우들로만 주인공을 채운 경우는 희귀하다. 범죄 장르에서 여배우가 “남자가 끼면 일만 복잡해져”라고 무심하게 내뱉는 광경을 목격하는 생경함과 비슷하다. 남성 서사의 부속물이거나, 필요할 때 동기로 사용되는 주변인이거나, 구원받음으로써 남성의 매력을 보강해 주는 조미료에 그치기 일쑤였던 지난날 범죄액션 영화 안에서 여성 캐릭터 역사를 떠올려봤을 때 《오션스8》은 반가운 뒤집기 한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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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스8》의 성취와 아쉬움

 

‘여자들만 모였네?’라고 짐짓 놀라운 시선으로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들과 달리 영화 속 캐릭터(배우)들은 ‘그걸 희한하게 보는 것 자체가 후진 거 아냐?’라고 항변하듯 여성으로만 뭉친 자신들 무리에 대해 달뜬 감흥을 드러내지 않는다. 즉 《오션스8》은 세간의 짐작과 달리, 페미니즘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영화가 아니다. 젠더 이슈에 무심해서라기보다, 이 영화의 출발 자체가 상업오락 영화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오션스8》에는 성 선입견을 풍자하는 장면이 딱히 없다. 현재 미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PC(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박도 희미하다. 내내 가볍고 내내 경쾌할 뿐이다. 《오션스8》이 페미니즘에 집착하다가 매력을 잃었다고 외치는 일부의 주장이나, 페미니즘 영화이기에 응원해야 한다는 평가는 그래서 조금 의아하다. 여성들이 중심에 선 영화라고 해서 과도하게 여성 관점으로 작품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기계적 해석 아닐까. 

 

대니 오션이 《오션스 일레븐》에서 그랬듯, 같은 핏줄 아니랄까 봐, 데비 오션도 감옥에서 출소하자마자 목표물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데비가 점지한 거사일은 패션계 최대 축제인 ‘메트 갈라’가 열리는 날. 톱스타 다프네(앤 해서웨이)가 걸고 나올 1억5000만 달러 상당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훔치기 위해 데비는 보석 전문가, 장물아비, 소매치기, 컴퓨터 해커 등 각 분야의 숨은 여성 전문가들을 한 명씩 스카우트하기 시작한다. 산드라 블럭, 케이트 블란쳇의 부름을 받고 앤 해서웨이, 리한나, 헬레나 본햄 카터, 사라 폴슨 등 여배우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박력 넘치는 여배우들이 떼로 나와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를 하거나 거침없이 활보하는 풍경은 이 영화가 안기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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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션스8》의 한 장면​ ⓒ워너브라더스



 

‘여성 주인공 영화는 흥행이 안 된다’는 선입견

 

그러나 이렇게 좋은 배우들을 모아놓은 것치고는 전반적으로 밋밋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는 없다. 우연의 법칙에 너무 쉽게 기댄 탓에 인물들이 모이고 전략을 짜고 작전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케이퍼 무비 특유의 긴장감이 잘 살지 못한 탓이다. 팽팽하게 조율돼야 할 범죄 과정이 플래시백이라는 트릭을 빌려 손쉽게 설명되는 것도 아쉽다. ‘선수들’ 개인의 기량은 출중하지만, 호흡에서 그다지 좋은 시너지를 내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패착이다.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오션스8》이 우리 입장에서는 부러운 기획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하이스트 무비를 연출하게 된 계기에 대해 게리 로스 감독은 “금지된 영역처럼 보였던 이 장르를 여성들이 주도한다는 신선한 설정에 마음이 끌렸다”고 말했다. 

 

한국은 어떨까. 한국 제작자들 역시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신선할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나,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는 흥행이 안 된다’는 선입견에 더 크게 동요한다. 실제로 여성 주인공 영화의 상업적 성공 사례가 많이 없기도 하다. 그런데 이 성공 사례라는 게 조금 애매하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개봉한 상업영화 중 여성 주연 영화 비율은 24%에 머물렀다. 성공 사례가 많이 나오기엔 출발선에서 이미 불공정한 지점이 적지 않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많은 한국 영화가 모성 프레임에 머무르며, 관객의 기대를 배반한 것도 뼈아프다. 김혜수의 《미옥》과 김옥빈의 《악녀》가 대표적이다. 주인공의 갈등이 모성으로 귀결되면서 여성 영화에 대한 편견 아닌 편견을 높인 경우다. 왜 우린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누이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여성’을 만나기가 이렇게나 힘들까. 

 

최근 할리우드 마블스튜디오는 첫 여성 히어로 단독 주연작 《캡틴 마블》을 준비 중이다. 제시카 차스테인, 마리옹 코티아르, 페넬로페 크루즈 등이 모인 첩보 영화 《355》 또한 제작 중이다. 할리우드라고 해서 ‘여성 영화는 흥행이 안 된다’는 편견이 없는 게 아니다. 우리와 다른 게 있다면, 이러한 편견을 뒤집기 위한 시도와 아이템 발굴이 꾸준히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이쯤이면 드는 생각. 한국에서는 《오션스8》 같은 작품을 안 만드는 것일까, 못 만드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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