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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전 총리 별세…‘3金시대’ 역사 뒤안길로

한국 현대사의 산 증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 별세…파란만장한 JP의 역사

조유빈 기자 ㅣ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8.06.23(Sat) 11:4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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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의 산 증인이자 정치계의 거목으로 불리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6월23일 오전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김 전 총리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3김(金)시대’를 이끌었던 정치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9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2015년 서거했고, 이어 김 전 총리까지 이날 별세하면서 이제 ‘3김 시대’는 역사로 마무리됐다. 


김 전 총리는 한국 현대사를 본격적으로 보여 준 인물로 꼽힌다. 192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 전 총리는 공주중학교와 공주고등학교,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형인 박상희씨의 딸 영옥씨와 결혼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가 됐고, 1961년 제1대 중앙정보부장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5·16 군사쿠데타를 주도하면서 박정희 정권의 산업화와 유신 체제 공고화에 기여했다. 군사정부 체계와 사업, 정치·사회 개혁 등 계획을 만들었으며 중앙정보부장 재임 당시 한일국교정상화를 위한 회담에 특사로 파견돼 ‘김·오히라(大平) 메모’를 통해 한·일회담의 결말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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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공화당 창당을 주도하고, 그해 6대 총선에서 충남 부여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7·8·9·10·13·14·15·16대를 거치며 대한민국 역사상 최다선(9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1971년부터 1975년까지는 40대에 국무총리를 지냈다. 1990년에는 ‘3당 합당’을 통해 노태우·김영삼과 함께 보수대연합을 이뤘고, 1997년에는 김대중과 함께 내각제 개헌을 고리로 한 ‘DJP연합’으로 정권 교체에 일조했다.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된 뒤 박정희 정부에 이어 다시 한 번 국무총리를 지냈다. 2000년 1월 총리직에서 물러나 자민련 총재로 복당했고, 2001년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안 가결을 계기로 김대중 정부와 결별했다.

재기는 녹록지 않았다. 2002년 6·13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에 참패하고 소속의원들이 잇따라 탈당하면서 충청권 맹주로서 위상이 약화됐다. 2004년 총선에서 재기를 노렸지만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치명타를 받았다. 충남지역 4석이라는 사상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고 자신도 낙선하면서,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정계 은퇴’를 선언하면서 파란만장한 정치사를 접었다.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재활을 통해 몸을 회복했다. 2013년 9월 자신의 호를 딴 운정회 창립총회 참석차 국회를 방문한 것이 김 전 총리의 마지막 공식 행사였다. 대외활동을 자제하던 김 전 총리는 2016년 11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정국 때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국정개입 파문’에 대해 개탄하며, 처제인 박 대통령의 국정 실정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413호 김종필 전 총리 인터뷰 “5천만이 시위해도 박대통령 절대 안 물러날 것” 기사 참조)

김 전 총리는 일명 ‘킹 메이커’라고 불렸다. 정치적 생명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도 다시 돌아와 최고 권력의 옆자리를 지켰다. 김 전 총리의 지지를 기반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권에 성공했다. 충청권의 맹주로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1979년 10·26 사태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정권 2인자였던 자신이 대권의 욕심을 낼 수도 있었으나, 대통령 직선제라는 국민들의 열망에 부응하기 위해 소위 ‘체육관 선거’를 거부하며 김영삼·김대중과 함께 ‘80년의 봄’을 불러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대권 꿈은 전두환 신군부의 쿠데타로 좌절됐고, 이후엔 내각제 소신론자로 정치적 라이벌인 김영삼·김대중의 대권 쟁취에 도움을 줬을 뿐, 정작 자신은 대선에 출마하지 않았다. 그의 대선 출마는 1987년 13대 대선 딱 한번 뿐이었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한국사를 겪은 김 전 총리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이다. 쿠데타 원조에서부터 중앙정보부 창설자, 풍운의 정치인, 영원한 2인자, 경륜의 정치인, 처세의 달인 등  많은 별칭이 김 전 총리에게 붙기도 했다.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에 기여한 거목이라는 평가와 함께, 지역패권주의와 부정부패 등의 역사적 오점도 그에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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