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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키 크는 약의 비밀…3개월에 0.3cm 자란다

전문의들 “의학적으로 무의미하다”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ㅣ no@sisajournal.com | 승인 2018.06.26(Tue) 08:00:00 | 14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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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키가 크지 않을까 봐 조바심을 내는 부모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먹이고 싶어 한다. 이런 조바심을 노린 건강기능식품이 ‘키 크는 약’으로 둔갑해 시중에서 팔리고 있다. 1년 치가 약 200만원이다. 그만큼 효과는 있을까? 건강기능식품을 먹이면 일반 아이보다 0.3cm 더 자란다는 게 업체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의사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이미숙씨(가명·36)는 아이 키 성장에 도움을 준다는 건강기능식품, 이른바 ‘키 크는 약’을 살까 말까 고민 중이다. 그는 “10살짜리 우리 아이 키가 또래보다 작아 걱정인데, 주변 엄마들에게 물어보니 J제약사 제품을 먹여보라고 했다. 무슨 대단한 제품이라고 일반 약국이나 마트에서는 팔지도 않는다. 인터넷으로만 파는데, 그것도 상담 과정을 거쳐야 가격을 알려준다. 1년 치가 199만원이다. 상담원은 2개월분을 더 준다며 1년 치를 사게 유도한다. 비싼 만큼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시중에서 3~4종의 ‘키 크는 약’이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키가 작은 아이를 둔 부모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신용카드 할부로 수백만원짜리 건강기능식품을 산다. 그만큼 효과는 있을 것일까. 시사저널은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한 제약사에 근거 자료(연구 논문 등)를 요청했다. 이 업체는 A4 용지 2장짜리(표지 포함 3장) 자료를 보내왔다. 2장짜리 연구결과가 ‘키 크는 약’의 근거냐는 기자의 물음에 이 제약사 관계자는 “관련 연구 논문을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다. 인체적용시험을 진행한 N사가 연구 논문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도 받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 논문의 요약본만 가지고 있어서 요약본만 전달할 수밖에 없다”며 “제품의 효능은 연구를 거쳐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인정받은 것이므로 판매사가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제품 효과는 알 바 아니라는 판매업체

 

N사는 한 대학병원에 특정 성분의 효능 시험을 의뢰했고, 2009년 그 결과가 나왔다. 이를 근거로 식약처는 그 성분을 승인했고, 이후 그 성분으로 만든 ‘키 크는 약’이 시중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시사저널이 제약사로부터 받은 근거, 즉 2장짜리 요약본에 따르면, 7~12세 아이 88명을 44명씩 두 그룹으로 나누고 한 그룹에 매일 1.5g의 특정 성분을 12주(3개월) 동안 먹였다. 그랬더니 제품을 먹인 아이들의 키는 2.25cm, 먹이지 않은 아이들은 1.92cm 자랐다. 즉 3개월에 0.33cm(3.3mm) 더 컸다는 것이다.

  

기자는 이 자료를 전문의들에게 보여주고 의학적인 소견을 구했다. 명승권 국립암센터 암예방검진센터장은 “통계적으로는 0.3cm가 성장한 것처럼 나왔지만, 의학적으로 볼 때 유의미 정도가 빈약하다. 또 실제로 의미가 있는지(임상적 유의미)를 봐야 하는데, 예를 들어 6개월 또는 12개월 후에도 같은 효과가 유지되는지, 안전한지, 부작용은 없는지 등을 연구한 결과가 있어야 한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반복해서 같은 결과가 나와야 임상적 유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며 “그 또래 아이는 특정 식품을 먹지 않아도 1년에 6~7cm(매월 약 0.5cm)씩 자라는데, 3개월에 0.3cm 자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또 신현영 명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도 “인체적용시험 논문 전체를 살펴봐야 구체적인 유의미 정도를 알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나타난 0.3cm 차이만으로는 아이 키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식약처는 어떻게 이 성분을 승인해 준 것일까. 아이들 키 성장에 도움을 준다고 식약처가 승인한 성분은 황기추출물등복합물(HT042)이다. 흔히 한약재로 쓰는 황기 추출물에 가시오갈피와 한속단 등을 섞은 것이다. N사는 대학병원에 이 성분의 효능 검사를 의뢰했고, 3개월에 0.3cm 더 큰다는 결과를 내놨다. 그 결과를 식약처가 2014년 받아주면서 이 성분에 대해 ‘어린이 키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이라는 애매한 표현을 달았다. 

 

당시 식약처는 건강기능식품을 등급별로 분류했는데, ‘어린이 키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이라는 성분은 생리활성기능 2등급에 해당한다. 생리활성기능 2등급은 건강기능식품 분류 중 가장 낮은 등급으로, ‘소수의 임상시험이 있으나 과학적으로 입증됐다고 할 수 없음’ 판정을 받은 성분이 여기에 해당한다. 즉 식약처도 HT042 성분이 아이들 키 성장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었던 셈이다.

 

제약사 등 몇몇 업체는 이 성분에 다른 성분 몇 가지를 섞어 여러 건강기능식품을 만들었다. 이들 건강기능식품 중 대다수는 ‘키 크는 약’으로 판매되고 있다. 심지어 홍삼 제품도 ‘아이 키 성장에 좋은 약’으로 둔갑해 판매되고 있다. 김태민 식품전문 변호사는 “관련 산업을 육성할 목적으로 정부가 건강기능식품 승인을 남발한 부분이 있다”며 “이런 건강기능식품은 신문이나 잡지에 기사식 홍보를 하는데, 공식적으로 광고가 아니므로 광고 심의도 받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업체의 교묘한 마케팅 효과

 

너도나도 ‘키 크는 약’을 팔기 시작하자 언론이 의문을 가졌다. 2015년 MBC 등 언론은 0.3cm 키 성장의 차이가 의학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같은 해 국정감사에서도 0.3cm 차이가 유의미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식약처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고, ‘키 크는 약’은 여전히 시중에서 팔리고 있다. 

 

업체는 제품 광고물에 관련 내용을 교묘하게 표현하며 소비자의 심리를 자극한다. 예를 들어, 인체적용시험 기간을 ‘3개월’이 아니라 ‘12주’라고 표현한다. 두 자리 숫자로 표현함으로써 장기간 시험한 듯한 착시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키 성장의 차이도 0.3cm나 3.3mm 대신 ‘17%’를 강조함으로써 큰 차이가 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제품을 먹은 아이는 2.25cm, 먹이지 않은 아이들은 1.92cm 자랐으므로 그 차이가 17%라는 것이다. 광고물 하단에 작은 글씨로 ‘시험결과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는 문구를 첨부했다. 효과가 없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일종의 ‘안전장치’인 셈이다. 업체는 ‘키 크는 약’을 우유에 타서 먹으라고 권장한다. 어떻게든 키가 조금이라도 더 크는 효과를 바라는 마케팅이다. 또 일반 매장이 아니라 텔레마케팅 상담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며, 소비자에게 장기 복용을 권한다. 제품을 판매하는 제약사 관계자는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텔레마케팅으로 판매한다”며 “장기 복용해야 효과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 6개월 또는 1년 복용을 권한다”고 설명했다. 

 

사실 안 크는 키를 키울 수 있다면 그 제품은 건강기능식품이 아니라 성장 장애를 치료하는 의약품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대의학으로 키 성장을 담보하는 약은 없다. 따라서 시중에서 판매되는 ‘키 크는 약’은 건강기능식품일 뿐이다. 건강기능식품은 연구·생산·관리·유통·판매가 의약품보다 까다롭지 않다. 또 짧은 기간에 판매해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제약사들에 이와 같은 건강기능식품은 돈벌이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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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 생길 수 있다”

 

건강기능식품은 의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경우가 있으므로 자칫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실제로 식약처는 2017년 ‘건강기능식품 상시적 재평가 결과보고서’에서 ‘키 크는 약’의 재료 중 하나인 가시오갈피에 대해 ‘1개월 이상 섭취하는 경우 전문가와 상담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또 HT042 성분에 대한 인체적용시험을 할 때 그 성분을 먹은 아이 중 6명은 설사 등의 이유로 중도에 포기했다. 이 보고서에는 ‘2015년과 2017년 각 2건씩 모두 4건의 이상 반응(위통·두드러기·빈뇨 등)이 있었으나 HT042 성분 외에 다수의 원료가 혼합돼 있어 특정하기 어렵다. 섭취 중단 후 증상이 완화됐다’는 기록이 있다. 강희철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이른바 ‘키 크는 약’이라는 건강기능식품을 먹고 자칫 콩팥이나 간에 부담을 주는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키 성장 시기는 아이마다 다르다. 초등학교 이전에 크는 어린이가 있는가 하면, 고등학생이 돼서야 부쩍 자라는 아이도 있다. 따라서 키가 크지 않는다고 조급할 이유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강희철 교수는 “아이 키가 작다고 병원을 찾아오는 부모가 적지 않다. 이들 중 병적으로 작은 아이는 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들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 나머지는 자라는 시기가 다를 뿐이지 결국 정상치까지 성장한다. 따라서 부모가 너무 걱정한 나머지 건강기능식품을 먹일 이유가 없다. 그 돈을 차라리 아이 정서 발달에 사용하는 게 아이 키 성장에 더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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