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공권력의 ‘갑질’, 검찰
  • 김정헌 화가 (4·16재단 이사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6.25 13:15
  • 호수 1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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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국민들을 향해 ‘갑질’을 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좀 나아졌다고 하지만 서지현 검사의 ‘#미투’에서 보듯이 그들의 오래된 갑질 관행은 쉽게 깨어질 것 같지가 않다.

 

그들은 흔히 ‘검사동일체’를 들이대며 검찰 조직에서 이탈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를 항시 까먹거나, 자기들에게 위임된 권력을 자기들이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권력으로 착각하고 살아간다.

 

내가 검찰을 항상 멍게에 비유해서 말해 왔다(멍게한테는 정말 미안하다). 멍게는 태어나서 동물로 살아간다. 어렸을 때는 아주 미약한 뇌의 활동으로 자기가 정착할 암반을 찾아 헤맨다고 한다(이런 헤맴도 마치 사시를 통과하기 위해 젊은 청년들이 고시원을 떠도는 과정을 연상케 한다). 어쨌든 동물로서 살아간다는 거다. 그러다 마침내 적당한 암반을 만나면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게 된다. 이때부터 뇌의 활동은 정지되고 식물로 살아간다.

 


 

마치 검사들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그들은 검찰 조직의 일원이 되는 순간 무뇌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냥 상명하복의 ‘검사동일체’ 조직으로 일생을 살아가야 한다.

 

물론 범죄에 대해 수사하고 기소권을 행사할 때 모든 검사들이 독립적인 검사로 활동하지 못한다는 것이 ‘검사동일체’의 요건이다. 그러나 모든 검사들의 최고 정점인 검찰총장이 정치적으로 오염돼 있을 때는 그 아래 검사동일체의 검사들도 오염을 피할 길 없다.

 

이번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거래’에서 보듯 법을 근거로 그 안에서 활동하는 판사들도 법관의 최고직인 대법원장이 오염돼 있으면 아무리 단독판사를 외치더라도 권력과의 거래를 무시할 수가 없다. 그들은 검사들과 다르게 ‘판사동일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가 어쩔 수 없이 검사를 찾아갔던 적이 있다. 바로 신학철 화백의 《모내기》 사건 때문이다. 이 《모내기》 그림이 북한을 찬양하는 이적표현물이라는 보안법상의 죄목이다. 신 화백의 아내와 친구와 함께 어렵게 담당 검사를 찾아갔다. 그 검사는 신 화백이 교직생활(마침 그 얼마 전 그는 교사를 관두고 그림만 그리겠다고 사직했다)도 안 하면서 생활비가 어디서 나오느냐며 그의 작품 배후로 북쪽의 검은돈을 의심했다. 나는 그의 그림이 일부 콜렉터들한테 잘 팔린다면서 그것으로도 생활비가 걱정 없음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런 와중에 그 검사의 부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그는 한참 동안 차 얘기를 했다. 전화가 끝난 후 내가 그에게 불쑥 물었다. “검사님은 검사 봉급으로 어떻게 차를 두 대나 굴립니까?” 그는 당황스러운 듯 “아, 처가 집안이 도와줘서….” 

 

그 검사가 순진했는지 나한테 걸려든 셈이다. 검사들을 멍게한테 비유하면서 검사동일체를 비난한 것은 그동안 그들의 ‘갑질’에 시민인 나도 상처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사건·사고 속에 범죄를 다스리는 조직이 없어서는 안 되겠지만 이제는 상명하복의 전근대적인 조직으로서의 ‘검사동일체’에 대한 자기혁신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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