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스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서 ‘꼼수 승계’ 논란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18.06.25 13:17
  • 호수 1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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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뺨치는 중견기업 일감 몰아주기 실태] 퍼시스그룹

아름다운 퇴장 이면에 아른대는 편법승계 그림자

손동창 회장 평소 지론과 배치 

손동창 퍼시스그룹 회장은 가구업계의 신화적 인물 중 하나다. 공고를 졸업하고 무일푼으로 시작해 국내 사무용 가구업계 1위 회사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2017년 퍼시스그룹의 전체 매출은 6400억원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퍼시스그룹은 부채가 없기로 유명하다. 은행 빚이 전혀 없고, 어음도 발행하지 않는다. “기업이 적자를 내는 것은 죄악”이라는 손동창 회장의 평소 지론 때문이다. 

 

창업 35년째인 올해 3월 손 회장은 또 한 번 재계를 놀라게 했다. 임기가 2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등기이사직을 사임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이다. 중견 가구업체의 성공 신화를 써왔던 창업주의 아름다운 퇴장인 것이다. 재계에서는 손 회장의 장남인 손태희 퍼시스 부사장의 경영 승계를 위한 포석으로 해석하고 있다. 손 부사장은 지난해 퍼시스 정기인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10년 평사원으로 입사한 지 6년 만이었다. 

 

그룹의 지배구조 또한 2세 체제로의 전환을 사실상 마무리한 상태다. 퍼시스그룹은 현재 가정용 가구 판매업체 일룸이 지배구조의 정점에 올라 있다. 이 회사를 통해 상장회사인 시디즈(옛 팀스)를 거느리는 구조다. 일룸의 대주주가 29.11% 지분을 보유한 손태희 부사장이다. 장녀인 손희령씨도 9.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일룸의 자기주식이 61.29%니만큼 오너 2세들이 일룸을 통해 핵심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동창 퍼시스그룹 회장 © 뉴스뱅크이미지


 

시디즈서 일룸으로 지주사 바뀐 배경 주목

 

문제는 2세 체제로의 전환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2015년 말까지 퍼시스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던 회사는 시디즈(현 퍼시스홀딩스)였다. 최대주주 역시 80.51%의 지분을 보유한 손 회장이었다. 손 회장이 시디즈를 통해 일룸과 팀스, 퍼시스 등 계열사를 거느리는 구조였다. 하지만 2016년 시디즈는 일룸의 지분 45.84%를 이익 소각한다. 일룸은 2007년 시디즈에서 인적분할한 회사로, 최근 5년간 매출이 3배 이상 증가할 정도로 알짜였다. 그런 회사의 지분을 시디즈가 이익 소각하고, 반대로 오너 2세는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서게 됐다는 점에서 ‘꼼수 승계’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시디즈는 2017년 4월 팀스의 지분 전량(40.58%)을 또다시 일룸에 매각한다. 마찬가지로 팀스 역시 2010년 퍼시스에서 인적분할한 교육용 가구업체다. 손 회장은 팀스의 지분을 일룸에 넘겼다. 이듬해에는 시디즈의 주력 사업인 의자 제조 및 유통부문마저 325억원에 팀스에 넘겼다. 이후 그룹의 주축이 ‘손동창 회장→시디즈→일룸·팀스·퍼시스’에서 ‘손태희 부사장→일룸→시디즈’로 바뀐 것이다.

 

퍼시스그룹 측은 “시디즈와 팀스의 영업 양수도 계약은 상장회사 팀스의 사업을 확장하고, 이를 통해 주주 가치를 제고하기 위함이었다”며 “325억원의 계약금액 역시 회계법인의 외부 평가를 통해 결정한 만큼 문제는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계열사 간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오너 2세가 매출만 3000억원대인 그룹의 경영권을 사실상 확보했다는 점에서 뒷말이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 애널리스트는 “창업주가 핵심 계열사 지분을 2세에게 넘기고, 그 금액만큼 세금을 내는 것이 기존의 승계구도”라며 “퍼시스그룹의 경우 계열사 간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사실상 2세에게 경영권이 승계됐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손동창 회장 일가가 일룸 등 계열사의 내부 경영 상황을 알고도 2세를 지원했다면 배임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요컨대 일룸은 2007년 시디즈에서 인적분할한 후 고성장을 거듭해 왔다. 2013년 635억원, 2014년 995억원, 2015년 1315억원, 2016년 1555억원, 2017년 1923억원으로 매년 두 자릿수 이상 매출이 증가했다. 오너 일가의 경우 계열사의 이런 경영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위치에 있다. 2세의 승계를 위해 회사 내부 정보를 이용했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일룸의 주식을 손동창 회장의 장남인 손태희 부사장과 장녀 손희령씨가 취득한 배경에도 의문이 일고 있다. 2008년까지 일룸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오너 2세는 없었다. 시디즈와 손동창 회장이 각각 45.84%, 18.90%를 나눠 보유하고 있었다. 2009년 손태희 부사장이 2.07%의 지분을 보유하며 새롭게 주주로 등장하기는 했지만, 이후 5년간 큰 지분 변화가 없었다. 

 

퍼시스그룹은 최근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지배회사가 시디즈에서 일룸으로 바뀌었다.© 시사저널 고성준


 

 

퍼시스 측 “상속이나 증여와 무관” 

 

2015년 손 회장이 보유한 일룸 지분이 0%가 된다. 대신 손태희 부사장과 손희령씨의 지분이 각각 15.77%와 5.20%로 증가한다. 손 회장이 자녀들에게 증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6년에는 시디즈가 이익을 소각하면서 손 부사장과 손희령씨의 지분이 각각 29.11%와 9.60%로 늘어났다. 

 

문제는 이 기간 동안 일룸의 매출이 급증했다는 점이다. 일룸의 매출은 2014년 995억원 수준이었다. 손 회장이 2세들에게 지분을 넘겼던 2015년 일룸 매출은 131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2% 증가한다. 시디즈가 이익을 소각한 2016년에는 1555억원(18.3%), 지난해에는 1923억원(23.7%)으로 매출이 증가했다. 그룹 지배구조 조정으로 2세들은 가만히 앉아 거액의 시세차익까지 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서도 퍼시스그룹 측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을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오너 2세들에게 일룸의 지분이 넘어간 것은 일반적인 지분 증여다. 법과 규정에 따라 증여세도 납부했다”고 해명했다. 팀스 지분에 대한 시디즈와 일룸의 거래에 대해서도 회사 측은 “지분 거래의 목적은 수직계열화를 통한 내부 제조 프로세스 효율화다. 법인 간 지분 거래로 상속이나 증여와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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