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긴축 기조에 고민 깊어지는 한국은행
  • 황건강 시사저널e. 기자 (kkh@sisajournal-e.com)
  • 승인 2018.06.25 13:35
  • 호수 1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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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 중앙은행 기준금리 인상 예고…전문가들 “4분기 韓銀도 금리 인상 가능성”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중앙은행이 연이어 긴축 행보를 보이면서 국내 기준금리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외국인 자본이 일부 이탈하더라도 한국의 대외건전성은 양호하다”며 시장을 안심시키고 있지만, 불안감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하고 있다. 

 

6월14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에서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했다. 동시에 올해 금리 인상 횟수를 한 차례 늘려 네 번으로 상향 조정했다. 하루 뒤인 15일에는 유럽중앙은행(ECB)도 양적완화 프로그램 축소 및 연내 종료 방침을 밝히면서 긴축 행보에 동참했다. ECB는 현재 매월 300억 유로(약 38조원) 규모인 자산 매입 프로그램을 9월말까지 유지하기로 했다. 이어 4분기인 올해 10월부터 12월까지는 자산 매입 규모를 월 150억 유로로 줄이며 종료한다는 계획이다. ECB의 자산 매입 프로그램은 시장에서 채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통화완화정책이다. ECB가 더 이상 금리를 낮출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시행 중인 프로그램이다. ECB는 현재 기준금리를 제로로 유지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이 잇달아 긴축에 나서면서 국내 기준금리 행보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EPA 연합



美·유럽 긴축 행보에 외국인 6거래일 순매도

 

두 선진국의 발표에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세계 금융시장을 좌우하는 선진국들의 긴축 행보는 향후 시장 유동성 축소로 이어지며 외국인들의 자본 회수가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국내 증시에서는 두 중앙은행의 발표를 전후로 매도세가 강하게 나타났다. 외국인들은 6월11일부터 19일까지 6거래일 동안 코스피에서만 1조4735억원가량을 순매도했다.

 

채권시장에서도 외국인들은 금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국채 선물시장에서 외국인들은 주로 만기가 짧은 채권 위주로 매입하는 모습을 보이는 중이다. 채권의 가치는 금리와 반대로 움직이고 변동 폭은 잔존만기(듀레이션)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금리 상승이 진행될 경우 잔존만기가 긴 채권의 가치 하락폭이 잔존만기가 짧은 채권에 비해 크다. 따라서 금리 인상이 예견되는 시기에는 만기가 짧은 채권 수요가 늘어난다. 채권시장에서는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면서 한국 역시 조만간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하는 셈이다. 신얼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통화정책 정상화 흐름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동결을 고집하더라도 시장 금리 상승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며 “7월 열리는 금통위에서 금리 인상 의견이 소수의견으로 등장한 뒤 이후 인상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하반기 중으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회의 일정을 감안해 인상 시점은 4분기가 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미국이 하반기 두 차례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늦어도 4분기 중에는 대응할 것이라는 기대가 담겼다. 

 

연준위원들의 금리 인상 예상 시점을 점으로 표시한 점도표에 따르면, 미국은 올해 9월께 한 차례 더 기준금리를 올린 뒤 11월과 12월 중 추가로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회의는 9월에 열리지 않는다. 올해 9월에는 금통위 금융안정회의만 예정돼 있다. 반면 미국 연준은 오는 9월25~26일 양일간 FOMC 회의를 진행한다. 한국은행은 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 여부와 시장 반응을 확인한 뒤 10월18일로 예정된 금통위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를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은 시장의 기대에 명확한 신호를 보내지 않고 있다. 어쩌면 시장 예상보다 더 긴 시간을 감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6월19일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주열 총재는 외국인 자본유출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언급했다. 이 총재는 한·미 금리 역전과 외국인 자본유출 가능성에 대해 “한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되고 있고 외채 구조도 양호한 모습을 보이는 등 대외건전성이 좋다”며 “현재 상황에 비춰볼 때 대규모 자본유출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박정훈


 

 

이주열 총재 “한국 대외건전성 좋다”

 

한국은행은 외국인 자본유출과 함께 국내 가계부채 문제 역시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수년간 전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에서 한국 역시 시중 유동성 확대를 선택했다. 문제는 한국인의 부동산 선호 현상과 맞물려 늘어난 유동성 대부분이 부동산 관련 대출이라는 점이다. 6월20일 발표된 ‘2017년 국민대차대조표’ 잠정치에 따르면, 한국의 가구당 평균 순자산 3억8867만원 가운데 75.4% 정도가 부동산이다. 정부의 부동산 관련 대출 규제로 가계 신용대출이 급격히 늘어난 점도 부각되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가계 신용대출은 지난해 3분기 이후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면서 은행권에서만 12조3000억원 늘었다. 이들 대출의 대부분은 변동금리 대출이라 시장 금리 상승 시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다.

 

물가 역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망설이게 하고 있다. 국내 물가상승률은 현재 한국은행의 목표 수준인 2%를 밑돌고 있다. 물가상승률이 낮은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올려 시장에 긴축 신호를 줄 경우 국내 경기가 침체될 수 있다는 부담이 생긴다. 즉 외국인 자본유출을 과도하게 우려해 금리를 올리다 부동산 관련 대출 부담과 저물가 등으로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임혜윤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이 선진국 통화정책 정상화 흐름에 맞춰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면 충격을 최소화하는 경로를 택하고자 할 것”이라며 “한·미 금리차 역전도 잠재적 리스크임을 부인할 수 없으나 안정적인 대외건전성 지표를 감안하면 당분간은 이를 감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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