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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심판을 앞둔 일본 ‘사무라이 의사들’

[이원혁의 ‘역사의 데자뷰’] 9화 - 다시 ‘731부대’를 생각한다①

이원혁 항일영상역사재단 이사장 (前 KBS PD)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6.26(Tue) 10:5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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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중국 동북3성의 가장 큰 도시 선양(瀋陽)에서 항일영화제가 열렸다. 필자가 속한 재단에서는 ‘독립정신의 세계화’를 목표로 해외에서 영화제를 개최해 왔다. 우리 독립항쟁의 본고장인 옛 만주 땅에서 열린 이번 행사는 준비하는데 적잖은 어려움이 따랐다. 동북공정과 조선족 역사 문제에 대한 중국당국의 민감한 반응 때문이었다. 다행히 영화제와 함께 아직 포상을 받지 못한 조선족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모신 좌담회도 열려 행사의 의미를 더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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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를 선양에서 개최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영화제 기간 중 필자는 ‘선양 포로수용소와 731부대’란 주제 발표를 통해 현지인들에게 생소한 생체실험 자료를 공개했다. 생체실험은 731부대가 위치한 하얼빈에서 주로 이뤄졌다. 이 부대 군의관들이 600km 남짓 떨어진 선양에 ‘출장’ 온 이유는 단 하나, 앵글로 색슨계의 생체표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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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양 포로수용소에는 1942년부터 종전 때까지 미국·영국 등 연합군 포로 1500여명이 수감됐다. 지난 4월 이곳을 방문한 필자는 수감자 명단에서 제임스 프랭크라는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그는 오래전에 필자가 만든 《731부대는 살아있다》라는 방송다큐멘터리에 출연한 미군 참전용사였다. 당시 그는 코에 고무호스를 끼고, 산소통을 끌고 다닐 정도로 호흡 곤란을 겪고 있었다. 프랭크의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난 것은 731부대 군의관들이 정기적으로 찾아와 주사를 놓으면서 부터였다. 실제로 그의 두 손과 팔뚝에는 시커멓게 타들어간 흔적이 있었다. 그는 “이토록 양심 없는 민족이 어디 있는가. 일본에서는 양심을 가르치지 않는다”라며 자신을 안심시키던 군의관들을 증오했다. 

 

이 군의관들은 대부분 일본의 명문 의대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이들은 사람을 ‘산 채로’ 실험하는 매력에 끌려 이 부대에 자원(自願)했다. 당시 교토 의대를 다닌 어느 병원장은 2005년 12월 일본 아사히신문에 이런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731부대장 이시이는 주요 의과대학을 돌며 부대원을 모집하러 다녔다. 이때 영화를 상영했는데, 포로들을 각종 세균으로 감염시킨 후 사망할 때까지를 기록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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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부대를 설립한 이시이 시로(1892~1959) 중장은 교토대학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군의관으로 입대했다. 그는 1920년대 영국·독일 등 유럽 강국을 돌아본 후 “세균무기야 말로 가장 효과적인 전쟁방법이다”라며 세균전 준비를 역설했다. 군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이시이는 1936년 하얼빈에 본부를 두고 이어 베이징 등에 4개의 지대, 그 아래 수십 개의 단위부대를 만들어 광범한 ‘생체실험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같지만 너무 다른’ 심판, 731부대와 아우슈비츠의 ‘죽음의 의사들’

 

731부대는 마루타라 불리는 3000명이 넘는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30여 종류의 인체실험을 했다. 이는 나치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자행한 유태인 학살과 비교된다. 나치 친위대 의사 요제프 멩겔레(1911~1979)도 쌍둥이들을 생체실험하거나 유태인 눈에 염색약을 주사하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허나 실험의 목적은 달랐다. 멩겔레의 경우 순수 아리안족 출생률을 높이기 위한 우생학적 연구가 위주였고, 이시이는 대량살상용 세균무기 개발을 목표로 했다.

   

전후 두 사람의 행적도 너무 달랐다. 이시이를 비롯한 731부대원들은 미국에 실험 자료를 건네는 ‘거래’를 통해 면죄부를 받았고, 나치 의사들은 23명이 재판에 넘겨져 그 중 7명이 사형 당했다. 남미로 도주한 멩겔레는 사후에 묘지가 파헤쳐졌고, 유골은 상파울로 의대의 실험용으로 쓰였다. 반면 이시이의 묘는 지금도 도쿄 시내에 온전히 ‘모셔져’ 있다. 뿐만 아니다. 멩겔레의 출신대학은 1964년 그의 박사학위를 취소했다. 하지만 이시이는 종전 후 부대원의 박사학위 논문에 지도교수로 버젓이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독일과 달리 처벌받지 않은 이시이와 731부대 의사들은 이후 ‘침묵과 보은(報恩)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서서히 일본 의학계를 장악해 나갔다.

 

기가 막힌 노릇이지만 한국전쟁은 731부대 의사들에게 ‘돈벼락’을 안겨주었다. 전후 자유를 얻은 이들은 혈액은행을 세웠고,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피가 부족한 미군에게 인공혈액을 팔아 막대한 부를 얻었다. 혈액은행을 만든 나이토 료이치는 731부대 군의대좌로 싱가포르 지대장을 지낸 인물이었다. 그는 말의 피를 사람 몸에 주입하는 실험을 한 인공혈액 전문가였다. 또 다른 설립자 기타노 마사지는 이시이에 이어 2대 부대장을 지냈다. 그는 한국전쟁 중 미군병사들 사이에 ‘원인 모를’ 전염병이 퍼지자 이 병이 731부대에서 연구한 유행성출혈열이라며 미군에게 백신을 팔아 엄청난 돈을 챙겼다. 

 

그러나 ‘단죄 받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평범한 진리는 731부대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1980년대 초 일본과 미국 등에서 혈우병 환자 수천 명이 에이즈에 걸린 사건이 일어났다. 혈우병 신약을 개발한 일본 제약사가 에이즈균 검사를 무시하고 그냥 판매해 버린 때문이었다. 이 사건으로 일본에서만 2600여명이 에이즈에 감염됐고 그 중 500명 이상이 사망했다. 

 

문제의 제약사는 한국전쟁 때 큰돈을 번 나이토와 기타노가 만든 녹십자사였다. 이 회사는 생체실험의 ‘성과’를 바탕으로 당시로는 획기적인 혈우병 치료제를 개발했다. 놀라운 것은 두 사람 외에도 약 판매를 승인한 국립예연의 소장과 이 사건 조사를 맡은 후생성의 에이즈 조사반장도 731부대 출신이란 사실이었다. 이들과 녹십자사는 혈우병 환자들의 에이즈 감염 위험을 ‘알면서도’ 약을 판매했고, 더구나 사건을 조직적으로 ‘숨긴’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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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믿기 어려운 일은 이런 와중에도 생체실험을 한 점이다. 후생성 에이즈반장인 아베 다케시가 그 장본인이었다. 731부대 촉탁 군의관으로 데이쿄 의대 부학장을 지낸 그는 1985년에 혈우병 환자에게 에이즈 위험성이 ‘확인된’ 혈액제재를 계속 투여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환자가 에이즈로 죽기까지의 치료과정을 2년 뒤 자신의 논문에 상세하게 기록한 사실이었다. 아베는 법정에서 “환자에게 독을 주사한 것은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였다”라며 조금의 뉘우침도 보이지 않았다. 칼 대신 메스를 든 731부대 의사들의 마비된 윤리의식이 전후 50여 년 뒤 에이즈 파문에서 되풀이 된 것이다.

 

 

“혈우병 환자에 에이즈균 주입한 것은 치료법 개발 위한 정당한 행위” 주장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제국주의 시대에 ‘과학이란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도구’라는 사고에 철저한 ‘사무라이’ 과학자와 의학자들은 성과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일본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유카와 히데키도 “과학자의 가장 큰 책무는 기존 기술을 최대한 빨리 전쟁능력을 높이는데 활용하는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와 같이 전후 일본에서 전쟁의 광기는 ‘참회 대신 업적’이 되었다. 731부대원들의 반인류적 범죄 역시 ‘눈부신’ 의학적 성과로 여겨졌고, 이들은 당당히 일본 의학계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지금 일본은 의료역사의 ‘적폐’를 청산할 기회를 맞고 있다. 지난 4월, 그동안 기밀로 분류된 731부대원 3607명의 명단이 공개된 것이다. 명단을 확보한 진보적 의학단체는 이들의 학위 취소를 요구할 예정이다. 전후 이시이 시로의 모교인 교토대 의대에서만 최소 23명의 부대원들이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 가운데 생체실험 데이터로 짐작되는 내용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조만간 실명이 공개되고 독일의 경우처럼 학위나 논문이 취소된다면 731부대에 대해 처음으로 역사의 단죄가 이뤄지는 셈이다.

 

이번 기회가 일본의 ‘야만적’ 의료역사와 결별하는 계기로 이어질 지 아니면 또 다시 사무라이 의사들의 범죄에 ‘역사적 알리바이’를 제공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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