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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차(茶)를 완성시키는 이야기의 힘

[서영수의 Tea Road] 마을 위해 용과 싸운 청년의 피에서 탄생한 비뤄춘

서영수 차(茶)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05(Thu) 14:05:15 | 14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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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이 평생 매일 다른 차를 마셔도 중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차를 다 마셔볼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중국 전역에서 생산되는 차의 종류는 엄청나다. 중국차 전체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녹차는 중국 정부에서 지정하는 10대 명차에 오르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명차로 꼽히는 녹차의 경쟁력은 개성과 품질로만 승부하는 것이 아니다. 후발주자로서 창제연도가 짧은 차가 수천 년 전부터 알려진 전통명차와 맞서려면 이야기의 힘이 필요하다. 수백 년 전에 처음 만들어진 녹차도 매우 오래된 역사를 가진 차로 보이기 위해 사실과 무관한 전설이 차용되기도 한다. 용이나 황제가 등장하는 ‘스토리’는 품질과 더불어 명품차를 완성시키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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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 ‘비뤄춘’ 이름 하사

 

룽징차(龍井茶)와 더불어 중국 10대 명차의 반열에 올라 있는 저장성(浙江省) 최고의 특산물 둥팅비뤄춘(洞庭碧螺春)은 제주도만 한 호수 타이후(太湖)에 우뚝 솟은 둥팅산에서 생산되는 명품 녹차다. 최고 품질의 비뤄춘이 둥팅산을 중심으로 타이후 주변에서 생산되기에 타이후비뤄춘(太湖碧螺春)이라고도 한다. 청나라 제4대 황제 강희제(康熙帝)는 1699년 타이후 유람선상에서 이 차를 처음 마셔보고 감탄했다. 푸른 소라 모양의 찻잎을 보고 그 자리에서 황실공차로 지정하며 비뤄춘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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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시절부터 생산된 수월차(水月茶)는 강희제가 붙여준 비뤄춘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며 황제라는 후광을 업고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비뤄춘은 맛도 훌륭하지만 강렬하고 매력 넘치는 향기 때문에 혁살인향(?煞人香·사람 잡는 향기)이란 별칭이 있다. 100g을 만들려면 1만8000개가 넘는 어린 찻잎이 소요되는 최고급 녹차 비뤄춘은 다양한 버전의 민간 전설이 전해져 온다. 수많은 전설 가운데 미녀와 용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소개해 본다.

 

용과 사람이 어울려 살던 시절 타이후에 사는 청년 어부 아샹(阿祥)은 집과 반대 방향인 섬을 향해 열심히 노를 저어 갔다. 어디선가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산자락에서 어여쁜 소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샹의 배 앞에는 먼저 온 배들이 줄지어 있었다. 조실부모(早失父母)하고 마을의 귀염둥이로 살아가는 비뤄(碧螺)는 섬에 사는 모든 이의 시름과 피로를 노래로 달래주는 ‘해피 바이러스’였다. 고기도 잘 잡고 무예도 뛰어났지만, 비뤄에게 다가갈 용기가 부족했던 아샹은 비뤄의 노래를 멀리서라도 들어야만 살맛이 났다. 

 

평화롭던 섬에 어느 날 흉악한 악룡(惡龍)이 나타나 마을사람들을 위협했다. 산 위에 커다란 사당을 지어 매일 향을 피우고 어린 남녀를 몸종으로 바치라고 했다. 게다가 비뤄를 부인으로 삼겠다고 요구했다. 마을사람들은 비뤄를 숨기고 악룡의 요구를 외면했다. 화가 난 악룡은 거대한 파도를 일으켜 조업하던 어선을 모두 전복시켰다. 밤에는 광풍을 몰고 와 농작물을 망치고 나무와 집을 파괴했다. 아샹은 마을과 비뤄를 구하러 분연히 나섰다. 달이 뜨지 않은 칠흑 같은 밤에 아샹은 섬으로 건너갔다. 

 

나무를 뿌리째 뽑아 집을 부수고 횡포를 부리는 악룡의 등에 번개처럼 올라탄 아샹은 용의 급소인 역린(逆鱗)을 향해 작살을 날렸다. 역린 사이를 뚫고 깊숙이 들어온 작살 때문에 악룡은 땅에 떨어져 뒹굴며 발버둥을 쳤다. 악룡 위에 올라탔던 아샹도 산등성이에 내동댕이쳐졌다. 악룡은 발톱을 세울 힘도 없게 되자 독버섯 같은 피를 뿜어내며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피투성이가 된 아샹도 산등성이에서 피를 흘리며 혼절했다. 신기하게도 뿌리째 뽑혀 죽은 나무와 부러진 가지들이 아샹이 흘린 피에 닿자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악룡을 물리친 아샹을 마을로 데려와 상처를 치료해 주는 마을사람들을 따라 비뤄도 함께 간병을 했다. 혼수상태인 아샹을 위해 좋다는 약을 모두 써봤지만 차도가 없었다. “비뤄의 노래를 들으러 노를 저어 매일 왔었다”는 아샹의 얘기를 마을사람들에게 전해 들은 비뤄는 아샹을 돌보며 틈틈이 노래를 불러줬다. 귀에 익은 친근한 노랫소리에 깨어난 아샹은 비뤄가 옆에 있는 것을 알고 행복에 겨운 미소를 지었지만 기력이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선약을 찾아 산을 헤매던 비뤄는 아샹이 악룡과 싸우다가 피를 흘린 산속에서 돋아난 자그마한 어린 차나무를 발견했다. 추운 늦겨울인데도 잎을 틔우려는 새싹을 보호하기 위해 비뤄는 매일 새벽 일찍 산에 올라 입김을 따뜻하게 불어줬다. 속삭이듯 노래를 해 주며 냉해를 입지 말고 잘 자라기를 기원했다. 비뤄의 기운을 받아 어린 찻잎이 몇 개 발아했다. 비뤄는 입술로 채취한 찻잎을 가져와 차를 끓였다. 차를 끓이는 향기만으로도 벌써 눈이 맑아진 아샹은 차를 마시자 몸에 활기가 도는 것을 느끼며 혈색이 좋아졌다. 침상에서 몸을 일으킬 수 있는 아샹을 보고 비뤄는 감격했다. 

 

비뤄는 새벽마다 산에 올라가 찻잎을 입술로 물어와 차를 만들어 아샹에게 마시게 했다. 하루가 다르게 아샹의 몸은 좋아졌다. 그러나 비뤄는 나날이 수척해졌다. 아샹이 침상을 벗어나 기운을 완전히 회복하던 날, 비뤄는 숨을 거뒀다. 비뤄가 키운 찻잎은 비뤄의 원기로 농축된 결정체였다. 아샹과 마을사람들은 차나무 옆에 비뤄를 묻어줬다. 아샹은 비뤄의 무덤 아래 움막을 짓고 평생 묘를 지키며 살았다. 수십 년 후 마을사람들이 비뤄의 산소를 찾아왔다. 차나무가 무성한 산속에 아샹이 있었다. 자신들은 세파에 시달려 노인이 됐는데 아샹은 젊은 청년의 모습 그대로였다. 불로장생차로 여긴 마을사람들은 매년 봄 곡우 전에 산에 올라 차를 따서 마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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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뤄춘 이야기 문화·관광산업 위해 재가공

 

저장성 최고의 특산물로 방문객의 구매희망 품목 1순위로 떠오른 비뤄춘에 얽힌 이야기는 문화와 관광산업을 위해 맞춤형 버전으로 재가공되고 있다. 우수한 품질과 더불어 명차에 숨어 있는 이야기의 발굴과 스토리 탄생은 모바일게임에도 주요 테마로 활용되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팩트와 거리가 먼 전설을 그냥 ‘뻥’으로 치부하지 않고 차문화 교육용 애니메이션과 성인을 위한 판타지 영화로 확대·재생산하고 있는 중국차는 1차 산업을 넘어 4차 산업에 이미 들어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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