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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국인의 타 문화 포용력 유감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10(Tue) 11:00:00 | 14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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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험프리 보가트를 떠올리게 하는 ‘보가드 스케일’이란 것이 있다. 우리가 인종 혹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상대에 대해 어느 정도의 거리감 혹은 포용력을 갖고 있는지 측정하기 위해 개발된 도구다. 스케일 자체는 단순해 ‘대한민국 국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나와 이웃이 되어도 좋다’ ‘나의 직장 동료가 될 수 있다’ ‘나와 (혹은 내 자녀와) 결혼할 수 있다’ 각각의 문항에 대해 찬성 혹은 동의율을 측정한다. 마지막 문항까지 찬성할 경우 타(他) 인종 및 타 문화권을 향한 포용력이 높은 것으로 간주한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미국인, 유럽인, 아프리카인, 동남아시아인 등 다양한 집단과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는지 보가드 스케일을 적용해 보면, 거의 대부분의 응답자가 ‘나와 (혹은 내 자녀와) 결혼할 수 있다’에서 동의율이 급격히 낮아진다. 이민족 혹은 타 인종과의 결혼은 불허하겠다는 배타적 태도가 여전히 강하게 견지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허용도에 차이가 있고 세대별로도 포용력의 차이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여전히 순혈주의를 선호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상황에서 미국이 경험해 온 이민족과의 통합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큼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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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이민을 허용했던 1960년대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을 앞세우며 미국이야말로 멜팅 팟(melting pot : 용광로라는 뜻)의 나라라 주장했다. 언어와 인종, 역사와 전통을 달리하는 다양한 이민자들이 한데 모여 미국 시민으로 거듭나 저마다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용광로가 되리라던 미국의 꿈은 오래지 않아 실현 불가능한 허구임이 감지되었다. 

 

그러자 뒤를 이어 미국은 ‘비프스튜의 나라’라는 은유가 등장했다. 소고기와 야채를 보기 좋게 썰어 뭉근하게 끓이는 비프스튜처럼, 미국에 온 이민자들은 감자·당근·양파 등 야채의 맛에 소고기 향이 스며든 양상으로 보아 무리가 없으리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야채는 이민자들 각자 가지고 온 문화적 배경을 의미했고, 야채에 스며든 소고기 향은 미국인이라는 의미의 은유였다.

 

그러나 비프스튜의 나라 또한 곧장 ‘샐러드 바의 나라’에 자리를 내주었다. 오늘날 미국은 마치 각종 야채와 과일이 저마다의 맛을 내는 샐러드 바처럼 다양한 인종과 민족 배경을 지닌 이민자들이 공존하면서 미국인으로서의 시민권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주장이다.  

 

한국은 1990년대 이후 결혼이주와 노동이주를 수용하기 시작한 나라일 뿐, 그 이전에는 미국과 일본 등지로 이민을 가던 나라였다. 한국인이 미국으로 이민 갈 경우 시민권을 부여받긴 하지만, 인구센서스에서는 미국인이 아니라 ‘한국계 미국인’으로 분류된다. 한국계 미국인은 한국인도 아니요 미국인도 아닌 만큼 제3의 정체성 혹은 이중 정체성을 현명하게 내면화해야 한다. 한국계 미국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한 채 미국에 이민 갔으니 미국인이라고 생각하면, 주위에서 “바나나”라 부르며 경멸적 시선을 보낸다. 바나나처럼 겉은 노란데 속은 하얀색이니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의미다.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난민을 둘러싸고 찬반 논쟁이 뜨겁다. 난민 이슈는 인권적 차원에 더하여 법 제도적 차원의 이슈까지 두루 포함하고 있기에 소신 있게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다만 반대의 목소리 가운데 이민족에 대한 근거 없는 고정관념이나 악의적 편견이 작동하고 있음은 유감이다. 결혼이주자와 노동이주자 비율이 날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타 문화를 향한 감수성과 타 인종을 향한 포용력을 겸비한다면, 갑자기 직면하게 된 난민 이슈도 성숙하게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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