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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과 결이 다른 신념 굳히기로 신문 품격 높인 《더 포스트》

[영화를 통해 보는 세상] 4화 - 닉슨 대통령의 비리에 맞선 워싱턴포스트의 집념

서영수 영화감독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09(Mon) 1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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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Run it)” 워싱턴포스트의 편집장 벤 브래들리(톰 행크스)의 한마디에 마감시간을 넘기고도 인쇄를 중단하고 멈춰서있던 신문사 인쇄국의 거대한 활판윤전기(活版輪轉機)가 굉음과 함께 다시 힘차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워싱턴D.C. 가판대에 가까스로 정시에 배포하게 된 워싱턴포스트는 조그만 지역신문사에 불과했지만 미국 언론 역사에 큰 획을 그은 ‘펜타곤 페이퍼’ 후속기사를 발행했다. 이 기사로 기소된 워싱턴포스트의 재판은 대법원까지 가게 됐다.

 

미 국방부 비밀문서 ‘펜타곤 페이퍼’에 기록된 사실을 폭로한 특종은 뉴욕타임스가 한 발 앞서 했지만, 발행금지 조치를 당한 뉴욕타임스 편에 서서 워싱턴포스트가 ‘펜타곤 페이퍼’ 후속기사를 발행한 사실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사건이었다. 화가 난 닉슨 대통령은 워싱턴포스트 소속기자 전원을 백악관에 출입금지 시켰다. 이런 행동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주는 특정 언론 기피와 데자뷰다.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 제작을 잠시 중단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서둘러 연출한 영화 《더 포스트(The Post)》가 2018년에도 유효한 이유이기도 하다.

 

‘펜타곤 페이퍼’ 기사를 발행금지 조치한 법원 결정을 어기면, 법정모독죄로 기소되어 감옥에 가야했다. 이런 위험을 무릅쓴 사주와 편집장이 신념을 굽히지 않고 미국 대통령과 맞선 이유는 단순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소신이다. 언론의 자유와 권리에 앞서는 의무를 지키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다. 영화 《더 포스트》는 벤의 용감한 주장에 과감하게 동의한 워싱턴포스트의 사주 케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을 통해 신문의 품격을 높이는 목표 앞에서 사주와 기자가 한 몸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펜타곤 페이퍼’는 미 국방부 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라마(브루스 그린우드)가 학술연구 목적으로 사설연구소에 보관했던 미 국방부 비밀문서의 유출 사건이다. 내부 유출자는 베트남전 종군기자로 참여했던 대니얼 엘즈버그(잭 우즈)였다. 대니얼은 47권에 달하는 방대한 비밀기록물을 석 달에 걸쳐 틈틈이 두세 부씩 밀반출해서 복사를 했다. 1950년대 초부터 1971년까지 역대 대통령들이 저지른 사실 왜곡과 월권으로 명분도 없고 이길 수도 없는 전쟁을 베트남에서 지속해왔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기록된 ‘펜타곤 페이퍼’를 뉴욕타임스의 민완기자 닐 쉬핸에게 전달해 세상에 폭로한 것이다.

 

‘펜타곤 페이퍼’ 사건을 반역 행위에 가깝다고 한 대통령의 반응에 경악한 대니얼은 TV 인터뷰에서 “어떤 기관과 개인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이 반역이라면 ‘짐이 곧 국가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며 “대통령이 국민과 국회를 기만하고 자기 마음대로 국가를 통치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나가는 순간 워싱턴포스트를 지지하는 전국의 수많은 신문들이 ‘펜타곤 페이퍼’ 폭로 기사에 동참했다. 워싱턴포스트가 지역신문에서 단숨에 전국구 신문으로 도약하는 순간이었다. 파산위기에서 벗어나 명성과 수익도 얻게 되어 함께 기뻐하는 케서린과 벤은 사실은 처음부터 의기투합이 된 사이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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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업을 하는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던 케서린이 남편의 자살로 공석이 된 워싱턴포스트의 새 대표이사로 오게 되며 벤을 뉴스위크에서 스카우트해왔지만, 케서린과 벤은 기사방향을 놓고 적잖은 갈등관계였다. 백악관에서 닉슨 대통령의 딸 결혼식에 쥬디스란 기자의 취재를 불허하고 다른 기자를 보내달라고 하면 케서린은 기사에 불만을 품은 닉슨의 보복행위라는 것을 알지만 백악관과 원만한 관계유지를 위해 동의해주자고 한다. 하지만 벤은 이에 절대 동조하지 않고 닉슨 대통령이 기피한 쥬디스 기자가 아닌 다른 기자를 보내는 것도 거부한다. 편집장 벤이 반대하는 이유는 업무상 융통성 부족이 아닌 “독선적인 정부에 굴복 할 수 없다”였다. 

 

부친의 신문사였지만 남편이 유산으로 물려받은 것을 당연시했던 케서린은 죽은 남편대신 떠밀리듯 맡게 된 신문사를 실패 없이 잘 운영하고 싶었지만, 수익구조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었다. 경영위기를 타개하고 사업 확장을 위해 워싱턴포스트의 주식을 좋은 가격에 상장하려는 케서린은 은행에 수익구조 개선을 제시해야만 했다. 여성독자층 이탈을 막기 위해 뉴 스타일 섹션지면에 여성독자들이 좋아하는 스틸레토 힐 파티(파티에 어울리는 킬 힐 슈즈)를 커버로 다뤄줄 것을 다시 요구하는 케서린에게 벤은 “당신은 발행인이고 제 보스입니다. 의견을 주는 것은 감사하지만, 이처럼 여러 차례 언급하는 것은 월권입니다”라며 케서린의 말문을 막아버린다.

 

여성 경영자를 면전에서 무시하는 대내외적인 시대적 편견과 이사진의 비아냥에도 “솔직한 의견에 감사하다”라고 응대하며 참고 견딘 케서린은 주식 상장에 일단 성공하지만 은행은 심각한 해지사유가 발생하면 1주일 이내 상장을 취소할 수 있다. 정부에 맞서 ‘펜타곤 페이퍼’를 기사화한 것은 천재지변에 버금가는 사건으로 분류되어, 투자자 일부는 투자를 철회하고 은행도 상장해지 여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신문사는 문을 닫게 되고 자신은 감옥에 갈 위기 상황에서도 초보 언론인 케서린은 언론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고 ‘펜타곤 페이퍼’를 기사화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언론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 믿었다.  

 

언론인으로서 벤은 일이 잘못되어도 명성은 더 높아지고 직장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만, 발행 결정을 승인한 케서린은 여성 경영인으로서 줄곧 투명인간 취급을 받으면서도 전 재산과 신문사를 잃을 것을 각오하고 내린 용단임에 틀림없다. 이런 사실을 아내로부터 뒤늦게 깨우친 벤은 진정한 영웅은 자신이 아닌 케서린이라는 사실에 감동을 먹고 케서린의 집으로 단숨에 달려가 “감옥에 가는 것은 둘째 치고, 당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걸고 있는지 이제야 깨달았다”며 발행 결정 재고를 제안한다. 영화 《더 포스트》는 특종 경쟁이 아닌 치열한 언론의식을 다루다가 극 후반에 페미니즘을 슬쩍 얹어보는 방식을 취한다.

 

워싱턴포스트의 인쇄국에서는 식자(植字) 작업이 마무리되어 제판(製版)을 완성하고 인쇄 명령만 초조하게 기다린다. 자정 무렵 케서린의 집에서 긴급 회동한 이사진 전원과 법률고문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케서린은 “발행하겠다는 결정은 계속 유지합니다. 이만 자러 가겠어요”라고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낮지만 당당한 어조로 말하고 침실로 간다. 불이익을 감수하고 내린 용기 있는 판단과 결정도 소중하지만, 더 큰 파도가 몰아쳐도 결정을 번복하지 않는 케서린의 신념 지키기는 영화 《더 포스트》의 백미다. ‘멘붕’에 빠진 이사진을 뒤로하고 벤은 전화로 대기 중인 인쇄국 책임자에게 신문인쇄를 지시한다. 

 

‘펜타곤 페이퍼’ 발행 사건으로 일개 지역신문에서 전국신문으로 도약한 워싱턴포스트는 대법원에서 6대3으로 승소한다. 대법관 블랙판사의 판결문 요지는 “이 나라의 건국이념에 따르면 언론은 자유를 보장받고 민주주의 수호자의 역할을 수행해야한다”며 “언론이 섬기는 것은 국민이지 국민의 통치자가 아니다(The press was to serve the governed, not the governors.)”였다. 케서린은 워싱턴포스트를 부친과 남편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업과 유산이 아닌 온전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워싱턴포스트와 닉슨 대통령과의 악연은 ‘워터게이트’사건으로 다시 한 번 재연된다. 닉슨은 임기 중 하야하고 워싱턴포스트는 1973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영화 《더 포스트》의 실체인 워싱턴포스트는 1877년 12월6일 민주당의 기관지로 창간됐다. 1933년 케서린의 아버지 유진 마이어(Eugene Meyer)가 법정관리인 자격으로 워싱턴포스트를 인수했다. 1946년 딸이 아닌 사위 필립 L. 그레이엄(Philip L. Graham)에게 신문사를 물려줬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뉴욕타임스·월스트리트저널과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3대 신문사로 인정받게 됐다. 선정적이고 선동적인 황색언론과 거리를 두며 퓰리처상을 40여 차례 받은 워싱턴포스트의 현재 소유주는 아마존의 최고경영자 제프 베조스(Jeff Bezos)다.  

 

영화 《더 포스트》는 페미니즘과 언론의 자유 및 권리를 동시에 다룬 솜씨가 돋보이면서도 ‘미투’ ‘타임즈 업’ 운동으로 작년부터 할리우드에 불어 닥친 여성캐릭터 중시 풍조에 편승한 조급함과 얄팍함도 엿보인다. 하나의 주제에 오롯이 천착하지 못한 감독의 과욕이 부른 패착인 듯해 안타깝다. 전미비평가위원회에서 작품상과 남녀주연상을 받았지만, 2018년 아카데미시상식에서는 후보에만 올랐다. 비록 특종은 뉴욕타임스에 놓쳤지만 신념 굳히기로 언론의 소명의식을 보여주는 영화《더 포스트》의 시대배경은 1971년이지만 오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이유를 곱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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