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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의 핵무기’ 세균무기의 뿌리는 일제 731부대

[이원혁의 ‘역사의 데자뷰’] 10화 - 다시 ‘731부대’를 생각한다② 세균무기의 ‘흑역사’

이원혁 항일영상역사재단 이사장 (前 KBS PD)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12(Thu)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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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북한의 생화학무기까지 거론되고 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도 바쁜 마당에 무슨 생뚱맞은 얘기냐고 할 지 모르지만, 미국의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핵 협상에 생화학무기도 포함시킬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아마도 이 문제는 잠시 ‘잠복기’를 거칠 뿐 언제든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북한은 탄저균·천연두균 등 세균무기를 이미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쪽도 다를 바 없다. 3년 전 오산 미군기지에서 일어난 탄저균 배달사고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러구러 한반도는 ‘보이지 않는’ 세균무기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과연 이런 무기는 얼마나 위협적이며, 또 어떤 ‘흑역사’를 갖고 있는 걸까?

 

세균무기는 만드는 비용에 비해 살상(殺傷) 효과가 뛰어나다. 속된 말로 ‘가성비’가 높아 ‘가난한 자의 핵무기’로 불리기도 한다. 이 무기는 감염자의 이동을 통해 2차·3차 감염으로 퍼지기 때문에 피해가 급격히 확산될 수 있다. 게다가 자연발생적인 질병으로 비춰져 폭탄사용에 따른 비난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일찍부터 세균무기 개발에 힘쓴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중 리케차, A형 간염 바이러스, 말라리아균 폭탄 실험 등을 했다. 영국도 1942년 스코틀랜드 근처 섬에서 탄저균 폭탄 실험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균무기를 실전에서, 더구나 민간인에게 직접 사용한 것은 일제의 731부대였다. 확인된 사례만 봐도 1939년부터 3년 동안 중국의 저장성(浙江省)·후난성(湖南省)에서 8차례에 걸쳐 세균전을 펼쳤다. 특히 1940년 11월 창더에 떨어뜨린 페스트균 폭탄은 7600명이 넘는 민간인 사망자를 냈다. 중국은 일제 세균전의 피해자를 약 30만명으로 주장하는 반면, 일본 자료에는  2만6000여 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렇듯 피해규모의 차이가 큰 것은 역설적으로 ‘피해조차 가늠할 수 없는’ 이 무기의 위력을 반증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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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형 처해진 日 옴진리교 교주 “인류는 핵·세균·화학무기로 멸망한다” 

 

1936년 만주 하얼빈에 설립된 731부대는 ‘마루타’로 불리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각종 균을 주입해 몸이 변화하는 과정을 기록했다. 예컨대 34살 마루타의 목구멍에 탄저균을 뿌렸더니 12시간 만에 팔다리가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다음날 장기가 기능을 잃고 3일 만에 사망했다는 식이었다. 또 야외에서 사람을 말뚝에 묶고 5m 간격으로 세균폭탄을 터뜨리거나 심지어 10명 쯤 묶어 놓고  비행기에서 폭탄을 떨어뜨려 보기도 했다. 이들은 성별·연령별·인종별로 갖가지 실험을 거쳐 ‘가장 손쉽게 사람을 죽이는’ 폭탄을 만들었다. 

 

이러한 생체실험과 폭탄제조법은 8000여 장의 슬라이드 표본에 담겨졌다. 전후 냉전시대를 맞아 무기경쟁을 펼치던 미국과 소련(지금의 러시아)에겐 ‘군침이 도는’ 자료였다. 미국은 이시이 시로를 비롯한 부대원들에게 면책특권과 거금을 쥐어주며 자료를 입수하는 거래를 했고, 소련은 가와시마 세균제조부장 등을 붙잡아 일부 자료를 확보했다. 1992년 미국으로 망명한 구소련 생물무기연구소 간부 켄 알리베크는 그의 저서에서 “우리는 731부대의 세균폭탄 제조기술을 입수해  본격적인 무기개발에 나섰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미·소 간의 세균무기 경쟁은 한반도로 이어졌다. 1950년 겨울, 한국전쟁에서 갑자기 콜레라·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발생하자 조셉 니담 박사와 7명의 다국적 과학자들이 현장조사를 벌였다. 이들은 미군이 중국과 북한 지역에서 731부대의 수법과 비슷한 ‘이시이 식(式)’ 세균전을 벌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세균 사과’ ‘세균 조개’ 등 증거물도 제시했다. 또 전쟁 중 이시이 부대장이 미군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사실도 세균전 의혹을 부채질하기에 충분했다. 당연히 미국은 이 같은 조사결과를 소련과 중국의 상투적인 거짓선동으로 몰아붙였다. 세균전 공방은 유엔으로 이어졌지만 아쉽게도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은 더 이상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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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국전쟁 후 약 40년 만에 또 다시 731부대의 망령이 되살아났다. 그 무대는 중동의 사막이었다. 1992년 걸프전에 참전한 미군 18만여 명이 원인 모를 병에 걸렸다. 당시 필자는 이른바 ‘걸프전 신드롬’을 앓던 찰스 햄든 대위의 집을 찾은 적이 있다. 그는 심한 두통과 발진으로 고통 받고 있었고, 이 같은 증상은 9살짜리 딸 린시에게도 전염되었다. 한데 놀랍게도 그와 부인은 731부대를 조사하고 있었다. 그는 “내 병은 731부대가 개발한 세균무기에 감염된 것이다”면서 이들을 전범으로 처벌하지 않은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체 걸프전 피해자들과 731부대는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좀 더 상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미국 LA에 있는 세균학 연구소를 찾았다. 이 연구소 니콜슨 박사는 “참전용사들은 탄저균에서 배양된 마이코 플라즈마에 감염됐다. 이 탄저균 폭탄의 제조방식은 미국이 731부대로 부터 넘겨받았다”라고 주장했다. 1986년 이란과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은 이라크에 탄저균을 제공했고 그 뒤 이라크가 반미(反美)로 돌아서자 걸프전을 일으켰다. 이때 미군의 폭격으로 이라크군 무기고의 생화학폭탄들이 터져 미군 병사들이 탄저균에 감염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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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걸프전 신드롬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1997년 미 정부는 참전용사들이 생화학무기에 노출됐을 가능성을 인정했고, 이후 해마다 10억 달러의 치료비와 보상금을 피해 군인들에게 지급하고 있다. 결국 731부대의 세균무기 확보를 위해 이들의 반인류적 범죄행위를 묵인하고 동참한 미국은 걸프전 신드롬이란 역사의 부메랑을 거꾸로 얻어맞은 셈이다. 하지만 세균무기의 ‘흑역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7월6일 일본 옴진리교 교주 일당 6명이 23년 만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들은 1993년 도쿄지부 옥상에서 탄저균을 뿌리는 실험을 했다. 강력한 악취로 실험이 중단되자 2년 뒤에는 도쿄 지하철에 사린가스를 풀어 13명을 살해했다. 이 사건은 아사하라 쇼코 교주가 “인류는 핵·세균·화학무기로 멸망한다”라고 예언한 사실을 경고하기 위해 저지른 것이었다. 2001년 9·11테러 한 달 후에는 미국에서 탄저균 우편테러로 5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또 2015년 4월 오산 미군기지에 탄저생균이 반입됐고, 주한미군이 그동안 16차례나 탄저균을 실험한 사실도 뒤늦게 확인돼 충격을 주었다. 게다가 작년 12월에는 청와대 직원들이 탄저균 예방접종을 받았다는 언론보도로 한바탕 소동이 난 적도 있다.

 

 

“한반도는 이미 세균무기에 노출되어 있다”

 

탄저균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세균무기의 대명사로 떠오른 걸까? 흔히 ‘공포의 백색가루’로 불리는 탄저균은 동물 접촉이나 호흡기로도 감염된다. 이 균은 감염 후 즉시 치료받지 않으면 80%가 사망할 만큼 강력한 위력을 지녔다. 이런 까닭에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에 탄저균을 장착하거나 드론으로 서울 상공에 탄저균을 퍼뜨린다는 ‘가상 시나리오’까지 등장할 정도다. 아무튼 이런 끔찍한 무기를 북한이 대량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반도 비핵화에 희망을 걸고 있는 우리를 맥 빠지게 한다. 

 

세균 무기는 보이지 않는 법이라 현상은 있지만 증거가 없다. 마치 적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최첨단 스텔스기와 같다. 한국전과 걸프전 사례처럼 논란과 공방만 이어질 뿐이다. 이런 무기가 한반도에서 우리의 운명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사이비라지만 세균무기의 재앙을 예고한 옴진리교 교주의 말이 가벼이 여겨지지 않는 이유다. 

 

협상의 격언 중에 “모든 것이 합의될 때까지는 아무것도 합의되지 않은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막연한 기대는 금물이 아닐까 싶다. 핵뿐만 아니라 세균·화학무기까지 한반도 평화는 ‘산 넘어 산’이란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 모두가 731부대의 망령에 씌운 필자만의 지나친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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