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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하라’…세상에서 가장 슬픈 자기결정권

[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낙태는 죄다”에 앞서 “수태는 책임이다”가 먼저

노혜경 시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13(Fri) 14:32:33 | 15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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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첫째 주말 광화문에서 울려 퍼진 ‘낙태죄를 폐지하라’라는 구호를 생각해 본다. 나의 자기결정권을, 낙태할 나의 권리를 보장하라. 참 슬픈 구호다. 

 

1980년대 초반 천주교 부산교구의 교구공의회에서 일한 적이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권고에 따라, 전 세계 교회가 지역공동체의 문화적 특성에 맞춰 전례를 토착화하고 변화하는 시대에 따른 교회와 신앙의 쇄신을 추구한 작업이 교구공의회다. 성직자와 수도자를 포함한 신도 대표 150여 명이 무려 5년에 걸쳐 교회의 시대적 소명, 사회와의 관계, 신도들의 삶에 관여하는 교회의 역할 등을 놓고 토론하고 숙의했다. 당시, 가장 논쟁적이고 찬반이 갈렸던 주제가 바로 ‘낙태’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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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반은 박정희 시대의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으로 말미암아, 임신중절이 신자들 사이에서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비공식 집계에 따르면, 신자 가정에서도 낙태를 경험한 비율이 60%가 넘었다고 한다. 태어나는 아기보다 낙태로 인해 사라지는 아기 수가 더 많을 것이라는 다소 끔찍한 이야기도 있던 시절이었다. 교회가 신자 가정을 상대로 생명의 소중함과 자연피임법을 통한, 달리 말하면 금욕적 방법을 통한 산아조절을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한 신앙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이십대 중반 여성이던 나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행복한 가정/산아조절’이라는 제목의 의안을 쓰면서 혼란에 빠졌다. 나는 대학 시절 여러 친구의 임신중절 수술을 도운 경험도 있고, 생활비를 아끼고자 동거를 선택했던 어린 여성노동자들이 중절 시기를 놓쳐 미혼모가 되고 아기를 입양 보내는 일들도 많이 보았다. 교회가 이야기하는 행복한 가정과 산아조절이라는 주제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를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교회가 돌보아야 하는 영혼은 오히려 원치 않는 임신으로 나락에 떨어질 위험에 처한 그 여성들일 텐데, “낙태는 죄다”라는 선언으로 죄인으로 만드는 게 과연 구원의 교회다운 태도인가. 

 

‘수태는 책임이다.’ 낙태죄 폐지에 가장 강경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교회의 입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세상은 가정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옮아가고 있지 않은가. 나의 모태신앙 가톨릭교회가, 태아의 생명 못지않게 여성의 존엄과 여성의 생명도 중시해 주면 좋겠다. 교회가 가르쳐야 하는 것은 “낙태는 죄다”에 앞서 “수태는 책임이다”가 먼저 아닐까? 낙태가 죄인 세상에서도 낙태를 가장 손쉬운 피임법으로 생각하는 남성들에게 말해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난 김에, 낙태는 죄라고 가르치는 가톨릭이 국교인 필리핀에는 무려 3만 명의 코피노가 있다. 이 애비들을 찾아내어 부양의무를 지우는 운동부터 교회가 해 주면 좋겠다. 

 

국가는 종교와 다르다. 헌법재판소가 이번에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 자기결정권을 먼저 존중해 주면 좋겠다. 임신·출산·양육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는, 심지어 도덕적 질타까지도 해대는 세상에서 낙태죄 폐지 요구는 자신의 정신적 타격과 육체적 건강을 대가로 사회적 생존의 최저선을 보장받으려는 거의 마지노선의 저항에 가깝다. 

 

이것은 일종의 허무개그지만, 콘돔 없는 섹스로 임신이 되면 성폭행으로 간주하는 법을 만들면 어떨까? 낙태가 현저히 줄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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