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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대 기숙사에서 경험한 대지진과 옴진리교 사건

[이인자 교수의 진짜일본 이야기] 학생자치 기숙사와 ‘료보(寮母)·료후(寮夫)’

이인자 일본 도호쿠대학 교수(문화인류학)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15(Sun) 08:33:09 | 15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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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에서는 옴진리교 사린가스 사건 주범 7명에 대한 사형 집행과 함께 서일본호우(西日本豪雨) 재해 뉴스가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7월12일 현재 사망 200명이라는 보도가 나가고 있습니다. 당분간 인명피해는 늘어나겠지요. 또한 크고 작은 저수지가 붕괴될 위험이 있다고 하니 비가 멎은 곳의 복구 작업도 생각처럼 쉽게 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이번 호우가 서일본을 강타하기 직전인 6월28일, 저는 대학생들이 사용하는 기숙사인 교토(京都)대학 YMCA지엔료(地鹽寮)에 있었습니다. 이곳은 1913년에 미국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으며 학생자치로 운영되는 기숙사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100세가 넘은 나이에 현역의사로 활동한 히노하라 시게아키(日野原重明)씨도 교토대학 전신인 교토제국대학 시절 기숙생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곳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교수들과의 중식회와 함께 전공이 서로 다른 학생들과의 교류가 자신의 연구와 의료 활동에 큰 영향을 줬다고 회고하는 글을 많이 남겼습니다.

 

오후까지 멀쩡하게 맑던 하늘이 갑자기 덮쳐온 검은 구름과 함께 하늘이 갈라져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듯 비가 내리는 초저녁에 기숙사에 도착했습니다. 목적은 두 가지였습니다. 기숙사에서 학생들 저녁밥을 짓고 주변 청소를 해 주고 가끔 학생의 고민도 상담해 주는 료후(寮夫)를 만나는 것과 손님방을 이틀 정도 예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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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생 면접 만장일치 아니면 낙방

 

저도 1990년대 대학원생 때 이 기숙사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는 육십을 훌쩍 넘긴 료보(寮母)가 같은 일을 하면서 상주했습니다. 100년 전부터 이 기숙사는 학생들과 같이 상주하면서 돌봐주는 료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함께 살면서 학생들을 돌봐줄 사람을 찾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그것도 대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엄마(아빠)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찾기 힘든 일이지요. 

 

학생들도 아무나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신입 기숙생을 뽑는 데도 상당히 깐깐한 절차를 밟습니다. 자기소개서 격인 원서와 해마다 다른 주제로 내놓는 수필을 써서 내야 합니다. 그리고 면접을 거쳐야 하지요. 면접 때는 기숙생 전원이 면접관으로 나옵니다. 30여 명 규모의 기숙사로 매년 많으면 7~8명, 적을 때는 2~3명의 신입생을 받아들입니다. 면접에서는 30명에 가까운 기존 기숙생이 원서와 수필을 읽고 질문을 퍼붓듯이 해댑니다. 그리고 면접관 전원이 받아들이겠다는 만장일치가 아니면 낙방입니다. 자치로 이끌어 가야 하는 삶터이기에 현존 멤버 중 한 사람이라도 싫다고 하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치운영이기 때문에 기숙사비를 걷어야 하는 중대한 일에서부터 쓰레기봉투를 사야 하는 자잘한 일까지 적절하게 나눠 맡아야 합니다. 면접에서는 철저하게 협동하면서 기숙사의 멤버로 역할을 할 자세가 돼 있는지를 봅니다. 새로운 주민을 뽑는 데도 이렇게 면밀한 곳에 기숙사의 어버이 격인 료보(료후)를 구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겠지요. 제가 졸업한 후 고령으로 료보가 그만뒀습니다. 하지만 적절한 료보를 구하지 못해 당시 기숙생이었던 이학부 대학원생 고사카 가쓰야(小坂勝彌)군이 료보 역할을 담당하기 시작했는데, 이후 20년간 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홍수 같은 빗속에서 저를 맞이한 고사카군은 이제 중년 아저씨가 돼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숙사 생활을 했을 땐 격동의 해였어. 고베대지진(阪神淡路大震災) 때 한 일주일은 모두 함께 모여 생활했었지. 또 옴진리교 사건 때문에 고발당한 일도 있었잖아!”

 

그랬습니다. 1995년 1월17일 일어났던 일본 간사이(關西)지역의 지진은 상상을 초월한 것으로 기숙사도 크게 흔들렸습니다. 유학 초기 지진 경험이 없던 저로서는 정말 세상이 끝나는 것 같은 두려움을 맛봤습니다. 석사논문 마감 3일 전이었기에 밤샘을 하고 겨우 자리에 누운 시간이었습니다. 잠이 들까 말까 했던 새벽 5시46분 크게 지면이 흔들렸지요. 대지가 흔들리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한 저는 순간 “밖으로 나가야 하나, 그냥 있어야 하나, 이 흔들림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이런 말을 머리에서 되뇌고 있었습니다. 얼마가 지났는지 모르지만 “여러분! 괜찮습니까? 괜찮습니까?” 귀에 익은 료보의 외침이 들려왔습니다. 그때처럼 료보의 목소리가 반가운 때는 없었을 겁니다. 책장에서 책도 떨어지고 어수선했지만 다시 잠을 잤지 싶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안부를 묻는 료보의 목소리만 기억하고 그 후의 일들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네요.

 

석사논문을 걱정한 기숙사 친구들이 낮밤을 가리지 않고 들러리를 서주고 참고문헌을 입력이며 그림이나 표의 번호가 맞는지 체크도 해 주고 제출할 땐 10여 명이 함께 서무과에 들어서는 바람에 사무실이 기숙생으로 가득할 정도였습니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것은 같은 과 동창으로 마감 1주일을 남기고 논문 제출을 1년 늦춘 친구가 제 논문의 인쇄를 도맡아 해 줬던 기억입니다. “정말 고마웠어.” 이런 제 인사에 기숙사 대표는 “형제자매인데, 이렇게 하기 위해 우리가 면접도 철저히 보고 받아들일 때 엄중하게 한 거야”라고 말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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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있으니 괜찮습니다”

 

그렇게 지진으로 일본 전체가 힘들어 하면서 복구 작업이 시작될 무렵인 3월20일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 사건이 일어납니다.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전모가 밝혀지고 옴진리교의 교주 아사하라 쇼코(麻原彰晃)와 관계자들이 체포됩니다. 이 사건으로부터 23년이 지난 7월6일 7명의 사형집행이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기숙사와 무슨 관련이 있었냐고요? 당시 지역주민과 경찰들은 학생들을 주시했습니다. 옴진리교는 젊은 층의 지지를 얻고 있었습니다. 대학축제 때면 유명 대학에서 교주인 아사하라를 초청해 강연회를 열었고, 그 행사가 많은 손님을 끄는 역할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생자치회는 경쟁적으로 그를 초청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유명대 학생이나 그 출신 신자도 많았고 그들이 교단의 간부로 활동했습니다. 지엔료에서는 전공과 상관없이 많은 연구회와 독서회 등이 하루가 멀다 하고 열립니다. 밤 2시나 심지어 새벽 4시에 시작하는 연구회도 있습니다. 기숙생만의 모임이 아닙니다. 친구를 통해 정보를 얻은 자취생들도 자전거를 이용해 기숙사 식당에 모입니다. 이런 풍토가 노벨물리학상을 낳게 했다며 지역주민들도 따뜻한 눈길을 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옴진리교 사건이 일어난 후엔 같은 행동을 했을 뿐인데 비밀리에 경찰에 신고가 들어가곤 했습니다. 학생들이 이합집산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의 대상이 됐던 것이지요. 

 

이럴 때 또한 가장 든든하게 우리의 방패가 돼 준 분이 료보입니다. 경찰은 기숙생들을 의심하고 감시를 부탁하는 일부 주민에게 “어른이 있으니 괜찮습니다”라고 해명했다고 합니다. 료보는 기숙생에게 있어 밥 지어주는 아주머니가 아닌 정말 기숙생들의 어버이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숙사를 졸업한 지 20년 이상 지났지만 아직도 저 역시 매년 4000엔의 회비를 내고 있습니다. 이 돈은 현재 입실해 생활하고 있는 재학생의 자치에 보탬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제가 재학생이던 시절 역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어느 선배가 회비를 내줬기에 적은 기숙사비(2만 엔)를 내면서 료보가 있는 기숙사 생활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여름방학을 맞아 교토대학 의과대에 입학을 희망하는 고교생들에게 지엔료를 소개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소개를 마치자 “목표가 변했습니다. 교토대학 의대에 들어가고 싶지만 그보다 지엔료에 입실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하면서 웃음을 자아내더군요. 지금은 다목적 회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100년 전 세워진 기숙사 건물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받아 지엔료의 얼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거나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점은 아니지만 저는 료보·료후가 100년간 이어지고 있는 점이 중요무형문화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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