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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의 상징이 성찰과 치유의 장으로

베를린, 부끄러운 과거 기꺼이 직면하는 도시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서울대 도시조경계획연구실 연구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18(Wed) 17: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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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평화의 바람이 불면서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 DMZ)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더 커지고 있다. 진짜로 통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과 함께 ‘생태계의 보고’로 알려진 DMZ를 보존할 수 있을 것인지 걱정 또한 앞서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의 ‘그뤼네스 반트(Grünes Band)’는 우리나라 DMZ의 미래를 상상해보기 위해 종종 언급된다. 그뤼네스 반트는 독일이 분단된 시절 동독과 서독을 가로지르던 경계지역이었는데, 지금은 시민환경단체의 노력으로 그 생태적 가치가 알려지고 보존되며 생태관광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한반도 DMZ를 두고 우리가 늘 꿈꾸는 미래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인 셈이다.

 

하지만 전쟁과 분단은 우리에게 DMZ 속 자연환경 외에도 많은 것을 남겼다. 냉전 시대가 초래한 살상의 비극,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완전히 분리됐던 남한과 북한의 삶, 그 오랜 시간 동안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든 군사경관들. 슬프고 부끄러운 과거들은 말끔히 지워버리는 것이 최선인 걸까. 우리보다 먼저 분단과 통일을 경험한 독일, 그 수도인 베를린에서는 이 숙제를 풀기 위해 애쓴 흔적들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베를린은 지리적으로는 동독에 위치하고 있지만, 분단과 함께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쪼개지게 된 도시다.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장벽이 세워졌다. 지금은 대부분이 철거되고 일부만 기념물로서 남아 분단의 역사를 덤덤히 보여주고 있다. 베를린 장벽은 이 도시가 반으로 나뉘어 있었을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게 해주는 중요한 매개체였다. 그다지 높지도 않은 이깟 콘크리트 벽이 뭐였기에, 그때의 베를린 시민들은 마음껏 오가는 자유조차 없었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북적거리는 거리 한가운데에서도 잠시 숙연해지는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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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상징물 된 ‘베를린 장벽’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Topography of Terror)’ 옆에 남아 있는 베를린 장벽은 좀 더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 박물관은 나치가 저지른 공포정치에 대해 그 어떤 변명 없이 고백하는 듯한 전시를 하고 있다. 그 옆으로는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베를린 장벽의 일부가 무심하게 서 있어, “우리가 이렇게 분단된 채 살았어야만 했던 이유는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했다. 베를린 시민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에 사는 독일 사람들도, 그리고 냉전 시대의 아픔을 겪은 다른 나라의 사람들도 베를린 장벽을 보며 어떠한 다짐이나 치유의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베를린 장벽은 독일의 다른 도시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 평화의 상징물로서 기증되기도 했다. 필자는 독일 여행 중 뒤셀도르프에서 그 자취를 또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서울과 대전에 베를린 장벽 일부가 전시돼 있기도 하다. 하지만 본래의 맥락에서 벗어나 마치 조각품처럼 덩그러니 서 있는 베를린 장벽은 그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기엔 조금 힘겨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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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는 나치의 유대인학살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공간들이 있다. 유대인 박물관(Jewish Museum)과 유대인학살 추모공원(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이 대표적이다. 유대인 박물관은 지그재그 모양으로 펼쳐진 독특한 형태로, 유대교를 상징하는 ‘다윗의 별’에서 모티브를 딴 것이라고 한다.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는 중간중간에 일부러 텅 빈 곳들을 만들어 독일 사회에서 소외됐던 유대인들의 처지를 표현하기도 했다. 

 

그중 한 곳에서는 유대인들의 희생을 표현한 이스라엘 예술가의 ‘Fallen Leaves’란 작품이 전시돼 있다. 이 작품은 바닥에 금속으로 만든 얼굴 모형 1만개를 깔아놓은 것으로, 나치에 의해 희생당한 유대인들을 의미하는 얼굴들이었다. 관람객들은 그 위를 밟고 지나가게 돼 있었다. 전시실의 좁은 폭과 차가운 벽, 그리고 높은 천장은 그 아래 깔려 있는 얼굴들을 더욱 비참하고 절망적으로 보이게 했다. 게다가 그 얼굴들을 밟을 때마다 쇠붙이들이 서로 부딪혀 철컹거리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는데, 마치 비명 같았던 그 소리는 전시실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계속 들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비극적인 과거를 또렷이 마주하고, 이것이 우리 중 누군가에 의해 또 반복될 수도 있음을 깨닫는 경험. 사람들이 작품에 직접 참여하도록 하는 방식은 그러한 경험을 더욱 극대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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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 과거를 반복해 마주하는 독일

 

유대인학살 추모공원은 좀 더 직접적으로 홀로코스트의 진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지상에는 관을 연상케 하는 네모반듯한 검은 돌들이 규칙적으로 나열돼 있고, 지하에 전시장이 있다. 사람들은 따뜻한 햇살에 적당히 데워진 돌 위에 드러눕기도 하고 그사이를 뛰어다니기도 하면서, 다른 보통의 공원에서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지하 전시장에 들어서면 희생자들의 이름과 사진,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설명, 마지막 일기나 편지에 절절히 남겨진 이야기들이 관람객들의 마음을 엄숙하게 만든다. 그들의 사연을 하나씩 읽다 보니 어느새 눈물이 차올라서, 도망치듯 전시장을 빠져나왔던 기억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 현대 예술의 중심지로 불리는 베를린의 뒷면에는 부끄러운 과거사를 용기 있게 대면하는 과정들이 있었다. 지난 역사가 도시에 남긴 생채기들을 전 세계인들과 함께 성찰하고 위로하는 장으로 재탄생시킨 베를린의 사연에서, 한국전쟁 종전을 준비하는 우리는 어떤 기억의 장소들을 만들어야 할지 단초를 발견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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