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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페미니즘…‘워마드’가 촉발한 급진적 페미니즘 논란

조문희 기자 ㅣ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18.07.20(Fri) 11:30:59 | 15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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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요즘 이 말을 공개적으로 내뱉는 것만큼 부담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페미니스트로 알려지면 온라인상 집중 포화는 물론이고 현실에서 불이익을 당하기도 한다. 여자 아이돌이 페미니즘 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로 사진이 찢기고, 게임업계에선 페미니즘 글귀가 적힌 티셔츠를 인증한 여자 성우가 해고당했다. 학교에선 페미니스트로 몰린 여학생이 집단폭력을 당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른바 ‘백래시(backlash)’ 현상이다.

 

그런데도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여성들은 늘어나고 있다. 7월7일 열린 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혜화역 시위)’에는 6만여 명의 여성(주최 측 추산)이 모였다. 5월19일 진행된 1차 시위에 모인 1만2000명보다 4배가량 많은 숫자다. 이 시위의 대표 구호는 “불편한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였다. 이처럼 페미니스트는 우리 사회에서 ‘불편’하게 여겨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언제부터 페미니즘은 불편해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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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된 페미니즘, ‘미러링’으로 관심 폭발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에 등장한 건 30년 전이다. 1980년대부터 여성학과가 생겨나고 여성단체가 만들어졌다. 다만 지금처럼 대중적 관심을 받은 경우는 드물다. 성폭력·성희롱에 대한 특별법 제정이나 호주제 폐지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기도 했지만, 보통의 여성이나 대다수 남성에게 큰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의 이진옥 대표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여성운동은 항상 소수였고, 단 한 번도 대중적 여성과 함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던 페미니즘이 유명해진 건 ‘메갈리아’ 덕이었다. 정확히는 메갈리아의 ‘미러링’ 전략 때문이었다. ‘메갈’로 줄여 불리기도 하는 이 이름은, ‘메르스’와 ‘이갈리아’의 합성어다.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 체계를 뒤집은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에 빗댄 거다. 이들은 여성혐오를 거울처럼 비춰 보인다는 의미의 미러링을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에서 시작했다. ‘김치녀’는 ‘김치남’으로, ‘맘충’ 등 여성을 뜻하는 각종 충(蟲)에는 ‘한남충’으로 반사하는 식이다. 입에 담지 못할 언어들이 쏟아져 나오자 언론은 물론 대중의 시선이 쏠렸다.

 

논란에 불을 붙인 건 2016년 5월17일 강남역 살인 사건이다. 범인 김아무개씨는 강남역 인근 상가 화장실에서 남성 6명은 그냥 보내고 여성 한 명을 무참히 살해했다. 여성혐오 범죄냐, 조현병 환자의 묻지마 범죄냐를 두고 논란이 시작됐다. 경찰은 후자로 결론 내렸지만, 상당수 여성들의 생각은 달랐다.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형형색색 포스트잇을 붙이며 피해자를 추모했다. 추모 문구의 대다수는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내용이었다. 수많은 여성학자들은 이 사건이 페미니즘의 대중화를 불러일으키는 도화선이 됐다고 평가한다. 보통의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폭력을 되돌아보게 한 사건이란 의미에서다.

 

대학에서 페미니즘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는 강지윤씨(가명)의 생각도 같다. 강씨는 페미니즘에 입문하게 된 계기로 강남역 살인 사건을 꼽았다. “같은 날 그곳에서 약속을 잡았으면 나도 피해 여성처럼 살해당할 수 있었다. 너무나 일상적인 공포인데도 남자들은 ‘자기는 여자 안 싫어하는데 무슨 혐오냐’ 등으로 반응하는 걸 보고 어이없었다. 이전까진 욕 먹을까봐 ‘페밍아웃(페미니스트라는 걸 드러내는 것)’ 하는 게 무서웠는데, 이 사건 이후 페미니스트라는 게 떳떳해졌다.” 강씨는 이날 이후 SNS에서 페미니즘 관련 게시물을 적극 공유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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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중심, ‘워마드’는 유죄인가

 

그러나 동시에 페미니즘을 불편하게 여기는 이들은 늘고 있다. 급진적 페미니즘 단체로 알려진 ‘워마드(womad.life)’가 등장하면서다. 워마드는 메갈에서 떨어져 나왔다. 소수자에 대한 입장 차이 때문이다. 이들에게 남성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 남성 장애인, 남자 아이 등의 약자는 배척해야 할 대상이다. 오로지 “여자만 챙기기” 위해 워마드가 개설됐다. 당초 메갈리아가 미러링을 주장했다면, 워마드는 여성우월주의와 남성혐오를 기치로 내세웠다. 

 

그사이 메갈리아 이용자 수는 급격히 감소해 현재는 페이스북 페이지로만 운영되고 있다. 반면 워마드엔 하루에도 수백 건씩 글이 올라오는 중이다. 그중엔 아버지에게 칼을 들이대거나 남자 소아성애 포르노를 유포하는 내용도 있다. 이 같은 엽기 행각 탓에 워마드를 향한 대중의 시선은 절대 곱지 않다. 혜화역 시위가 지탄받는 것 역시 워마드와 비슷한 구호 때문이다. 자살을 뜻하는 ‘재기해’나 ‘유좆무죄 무좆유죄’ 등 워마드에서 통용하는 표현이 시위에 사용돼서다. 혜화역 시위를 적극 홍보한 것도 워마드였다.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대학생 김예린씨(가명)는 “그래서 혜화역 시위에 가지 않았다”고 운을 뗐다. “몰카 범죄 강력 처벌을 함께 외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워마드로 대표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의 언어 문법에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무리 미러링이 전략이어도 정도가 지나치면 그들과 똑같아지는 것”이라면서 “워마드와 동급으로 취급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김씨는 학교 게시판에 붙은 워마드 홍보 스티커를 모두 뗀 적도 있다.

 

혜화역 시위 운영진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6월26일, 3차 혜화역 시위가 열리기 전 ‘불편한용기’ 보도팀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보다 많은 여성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과도한 혐오 표현은 지양하고 있다”고 말했다.(시사저널 1498호 “남혐 시위 아니라, 몰카 규탄 시위다” 기사 참조) 또 워마드와는 확실히 선을 그었다. 운영진은 카페 내 공지를 통해 “우리는 워마드, 운동권 및 어떤 단체와도 무관하다”고 밝혔다. 3차 시위에서 “문재인 재기해” 구호가 나온 것에 대해선 입장문을 통해 “‘재기해’는 사전적 의미의 ‘재기(再起)하다’이지 자살하란 말이 아니다. 언론은 왜곡 보도를 멈춰라”고 발표했다.

 

 

탈코르셋에 女-女 갈등까지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는 건 또 있다. ‘탈(脫)코르셋’이다. 화장이나 치마, 하이힐 등 꾸밈을 ‘노동’으로 지칭하며 거부하는 운동을 말한다. 와이어와 보형물이 없는 속옷인 ‘브라렛’ 열풍에 이어 숏컷이 유행하게 된 이유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탈코르셋 인증 후기가 넘쳐나고, SNS에도 관련 해시태그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탈코르셋을 강요하는 분위기 때문에 여자 간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탈코르셋을 찬양하는 쪽에선, 화장을 즐겨 하고 머리를 길게 기르는 여성을 향해 ‘흉자’라고 비난한다. ‘흉내’와 남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단어를 합친 말이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해 인기를 얻은 뷰티 유튜버 한별도 흉자로 몰렸다. 지난 5월 다이어트 비법 영상을 올린 한별의 계정에 “페미니스트라면서 코르셋을 전파한다”고 비난하는 내용의 댓글이 다수 달려서다. 해당 영상은 조회 수 100만을 기록했다. 70만 구독자를 보유한 한별은 이 같은 논란에 대해 “다이어트 하라는 말이 폭력적인 건 맞지만, 다이어트 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도 또 다른 비난이고 억압이다. 외모 코르셋을 벗을지 안 벗을지는 여성 각자에게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대응했다.

 

메갈리아의 탄생부터 불편한용기의 시위까지 일련의 움직임을 두고 여성학계에서도 평가는 엇갈린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리나 연구원은 한국여성학 33권에 실은 논문 ‘메갈리안들의 여성 범주 기획과 연대’에서 워마드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 연구원은 “포스트-메갈리아의 한 갈래인 워마드는 기존의 연대 문법에 불편한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무정형의 디지털 공론장에 가깝다. 지금 필요한 건 다양한 입장과 갈등을 인정하고, 그 공론장을 지켜내는 일”이라고 했다. 워마드도 다양한 페미니즘 갈래 중 하나로 여겨야 한다는 의미다.

 

반면 지난 4월 열린 한국여성철학회 학술대회에선 미러링 전략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김선희 이화여대 교수(철학과)는 ‘혐오담론에 대응하는 여성주의 전략의 재검토’ 발표문을 통해 “워마드는 페미니즘과 관련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혐오전략이 갖는 한계가 해소되지 않는다”고 했다. “혐오의 대상이 구조적 문제가 아닌 개별 남성을 겨냥하게 되면 초점이 남녀 간 갈등으로 이동하고, 그 결과 남성들은 역차별당하는 피해자로 생각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양심적 살인자가 살인을 정당화할 수 없듯이, 양심적 혐오자도 혐오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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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혜화역 시위는 여전히 불씨로 남아 있다. 이들을 불편하게 보는 시각이 있는 동시에 시위가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7월7일 3차 혜화역 시위 이후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여성가족부 장관 정현백 경질을 청원합니다’란 글이 게재됐고, 6만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청원자는 “혜화역 시위는 분명히 남녀 갈등을 조장하고 대통령을 모욕하는 언사로 가득 찬 시위였다. 그런데도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에 동조하고 있다”면서 “현 정부의 이념에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니 경질하라”고 적었다. 반면 불편한용기 측은 4차 시위를 준비 중이다. 8월4일 오후 3시, 이번엔 광화문광장에서 열린다. 주최 측은 “더 많은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넓고 쾌적한 장소를 찾겠다고 한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며 장소 변경 이유를 밝혔다. 

 

페미니즘 역사상 수만 명 여성이 참여한 건 혜화역 시위가 처음이다. 가보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셈이다. 페미니즘은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까. 숱한 갈등이 양산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 또 하나의 숙제를 부여하고 있다. ​ 

 

※ 관련기사

페미니즘이 변질됐다? “미러링 유효기간 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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