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부대는 치외법권이라 어쩔 수 없다? 낙동강도?
  • 경북 칠곡 = 김종일·조유빈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20 11:45
  • 호수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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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경북 칠곡 캠프 캐롤의 슬픈 역사는 왜 반복될까

 

사람의 체온은 36.5도. 이보다 높은 온도는 ‘이상 징후’를 불러온다. 때마침 찾은 7월17일 경북 칠곡의 온도는 37도. 발암물질로 알려진 과불화화합물에 오염됐다는 주한 미군부대 캠프 캐롤 인근을 둘러보는데 머리가 아찔했다. 아스팔트가 뿜어내는 열기와 작열하는 햇볕이 온몸을 데웠다. 체감 온도는 분명 40도가 넘었다.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몸에서 열이 났다. 

 

공공기관의 실내온도 기준은 28도. 캠프 캐롤에서 배출되는 하수 처리가 어떻게 되는지 파악하기 위해 칠곡군 수도사업소, 왜관 하수처리장, 칠곡보 사무소, 칠곡군청 등 관련 기관을 일일이 찾아갔다. 분명 에어컨 바람 덕분에 더 시원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몸에서는 더 열이 났다. ‘치외법권 때문에’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었기 때문이다. 

 

치외법권(治外法權). 다른 나라의 영토 안에 있으면서도 그 나라 국내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국제법상 권리를 의미한다. 주한 미군부대인 캠프 캐롤은 국내법을 적용받지 않는 치외법권 지역이다. 그래서 시사저널은 공무원들에게 여러 가능성에 대해 질문했다. 캠프 캐롤이 유해물질인 과불화화합물에 오염됐다는데 지금은 안전한 상황인지, 안전한 상황이라면 이를 증명할 수 있는지, 혹시 안전하지 않다면 어떤 대책이 있을 수 있는지, 미처 아직 챙기지 못했다면 향후 계획은 무엇인지 등을 물었다. 

 

질문은 많았는데 그때마다 돌아온 답변은 한마디로 “치외법권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모르겠다”였다. 캠프 캐롤이 위치한 칠곡 공무원들은 “캠프 캐롤은 치외법권 지역이라 경찰은 물론 소방관들의 출입도 제한될 때가 많다”며 “우리로서는 바리게이트를 치고 막으면 어쩔 도리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답답했다.

 

경북 칠곡에 위치한 미군부대 캠프 캐롤 출입문 ⓒ시사저널 임준선


 

환경부 “과불화화합물 유출, 환경사고 아니다” 

 

그런데 흘러 다니는 물도 치외법권일까. 캠프 캐롤에서 흘러나온 하수는 인근 하천인 동정천을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간다고 알려져 있다. 낙동강은 치외법권이 아닐 텐데, 그렇다면 영남 지역 1100만 명의 식수원인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물의 수질을 조사하는 것은 우리 정부의 소관 업무가 아닐까. 캠프 캐롤에서 흘러나오는 물에 오염물질이 포함돼 있는지 검사하는 것도 한국 정부의 관할이 아닐까. 

 

캠프 캐롤에서 배출되는 하수의 수질은 어떨까. 여기서 배출되는 하수 통로는 몇 개일까. 정답은 ‘한국 정부는 모른다’이다. 칠곡군청 환경관리과 관계자는 “캠프 캐롤은 자체적으로 처리시설을 갖추고 하수를 정화해 기지 밖으로 내보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하수 배출 통로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라 일일이 모니터링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칠곡군청의 답변이 가장 구체적이었다. 다른 기관에서는 대부분 “모른다” “거긴 치외법권 지역”이라며 다른 곳에 문의해 보라고 했다. 

 

그렇다면 거대 부처 환경부나 국방부는 다른 답변을 내놨을까. 시사저널은 더불어민주당 이철희·신창현 의원실의 협조를 얻어 캠프 캐롤이 과불화화합물에 오염됐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적이 있는지, 통보 여부와 관계없이 어떤 대책을 갖고 있는지 등을 질의했다. 

 

미국 국방부가 과불화화합물에 오염된 미군기지 현황과 대책 등을 조사해 미 의회에 보고한 보고서에는 ‘오염 탐지 시 신속한 지역사회 고지’가 필수 조건으로 적시돼 있다. 미 국방부는 보고서에서 “정화 작업 전반에 걸쳐 (미) 국방부는 규제 당국 및 지역사회와 협력하고 개방적이고 투명한 방식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며 “과불화화합물 증가 사실이 발견되는 경우 국방부는 피해 가능성이 있는 지역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이를 고지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지역사회와 적극 소통’ ‘현지 정부기관과 협력’ ‘공청회 주최’ ‘언론을 통한 경보 전달’ 등을 명시했다. 

 

이런 사실을 확인한 시사저널은 환경부와 국방부에 먼저 미국 측으로부터의 통보 사실을 물었다. 두 부처 모두 “관련 사항을 통보받은 사실이 없다”고 답했다. 재차 물었다. ‘왜 통보받지 못했는지 법률적 근거와 관련 규정을 명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두 부처의 답변은 조금씩 달랐지만 내용은 같았다. “환경사고가 아니기 때문에 통보받지 않아도 괜찮다”는 설명이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환경정보공유 및 접근절차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환경사고’를 환경부에 통보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환경사고가 발생하면 최단시간 내 유선으로 한국 측에 연락을 취하게 돼 있다. 이후 48시간 내 서면으로 통보해야 한다. 통보 대상은 ‘공공안전·인간 건강 또는 자연환경에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이 있는 경우’라고 명시돼 있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는 왜 ‘환경사고’가 아닌 것일까. 환경부는 “금번 과불화화합물 관련 조치사항 등은 미 환경보호청의 권고안에 대한 선제적 조치로 명시하고 있어, 환경오염 사고로 판단하기 곤란하다”고 답했다. 

 

환경부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이런 사실 자체를 한국 정부가 아예 모르고 있는 상황은 정상적인 일일까. SOFA 환경정보공유 및 접근절차에 따르면, 양측은 합의하는 바에 따라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도록 돼 있다. 

 

‘환경사고’가 아니라는 한국 정부의 설명과 달리 미 국방부는 과불화화합물이 기준치 이상 검출된 기지에서 자신들의 매뉴얼대로 신속하게 처리한 전례가 있다. 예전 미 공군기지 식수 표본의 과불화화합물이 기준치를 초과한다는 사실을 파악한 미군 측은 해당 지역주(뉴햄프셔) 환경부에 신속히 이런 상황을 알렸다. 이에 해당 시(市)에서는 즉각 해당 우물을 폐쇄했고, 미군 측은 해당 지역의 지하수와 우물에서 과불화화합물의 출처를 찾기 위한 조사에 돌입했다. 이철희 의원은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경고등이 켜져도 제도나 규정 탓만 하며 팔짱끼고 있는 정부는 국민이 기대하는 모습은 아닐 것”이라고 꼬집었다.

 

 

고엽제 매립 논란 일었던 캠프 캐롤

 

캠프 캐롤은 이미 비슷한 사건을 겪은 바 있다. 2011년 주한미군 3명은 캠프 캐롤에서 근무 당시 50여 톤의 고엽제를 부대에 묻었다고 주장했다. 매장된 50여 톤의 고엽제가 토양과 지하수로 흘러 들어갔다면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암을 비롯한 치명적인 병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제기됐다. 논란이 일자 주한미군은 그때서야 “1978년 기지 내 오염물질을 매립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매립 물질이 고엽지인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매립 1년 후에 해당 물질들을 다른 곳으로 반출했다고 언급했지만 옮긴 곳이 한국 밖인지는 알지 못한다고 밝혀 더 큰 논란을 일으켰다. 

 

고엽제 사태는 무려 33년 만에 미군의 양심고백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아직까지도 이에 대한 실체적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번 과불화화합물 사태는 어떻게 진행될까. 캠프 캐롤을 뒤로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2018년 대한민국은 40년 전과 얼마나 달라졌을까. 돌아오는 길에 마주한 낙동강이 넘실거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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