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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스코이호 ‘보물선 소동’에 오버랩 되는 우리 식민 역사

[이원혁의 ‘역사의 데자뷰’] 11화 - 보물선 ‘잔혹사’

이원혁 항일영상역사재단 이사장 (前 KBS PD)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20(Fri) 12: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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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은 금은보화를 발굴해 한밑천 잡는 꿈을 꾼 적이 있을 것이다. 더욱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보물찾기는 이런 ‘로망’을 자극하는 흥미진진한 소재임에 틀림없다. 어마어마한 양의 금괴, 탐사대원들의 영웅담, 신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 등 대중들의 호기심을 당기는 내용은 차고 넘친다. 때론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들》처럼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로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일종의 착시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요즘 울릉도 앞바다에서 때 아닌 보물찾기가 벌어지고 있다. 1905년 러일전쟁 때 침몰한 발틱함대 소속 돈스코이호를 끌어 올린다는 것인데, 무엇보다도 이 배의 가치가 150조원에 이른다는 게 여간 흥미롭지 않다. 돈스코이호는 지구 반 바퀴를 도는 긴 항로 때문에 여러 나라 항구에서 연료나 식량·식수 보급을 받아야 했다. 이런 비용에다 장병들의 임금을 지불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금화와 금괴를 싣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사실 이 배는 2003년에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국해양연구소와 모 재벌기업이 인양 작업을 펼쳤고 얼마 후 돈스코이호로 짐작되는 침몰선을 발견했다. 국내는 물론 러시아와 일본이 서로 보물의 소유권을 주장할 정도로 국제적인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워크아웃 중이던 해당 기업이 파산하고 탐사 허가기간이 만료되면서 보물선 탐사는 중단됐다. 그러자 시중에는 IMF 이후 침체된 분위기의 반전을 꾀한 정치권력과 재기를 노린 재벌기업이 야합한 ‘대국민 사기극’이란 말까지 나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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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보물선 사건이 터졌다.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일제 금괴를 발굴한다는 소재로 주가를 수십 배 띄운 이른바 ‘보물선 주가 조작’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후에 ‘이용호 게이트’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권력형 비리 사건이었다. 현직 대통령 아들이 구속되고 검찰·국정원 등 내로라하는 권력기관 간부들이 이 사건에 연루되어 줄줄이 옷을 벗었다. 이처럼 ‘한국형 보물선 찾기’는 정치권력·기업·투자자들의 탐욕스런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기 사건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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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아닌 탐욕을 좇은 한국과 일본의 ‘바닷속 골드러시’ 잔혹사

 

일본에서도 러일전쟁 때 침몰한 러시아 나히모프호 발굴 소동이 끊이지 않았다. 전쟁 당시 이 배가 쓰시마섬 근해에서 일본 연합함대에 포위되자 함장은 퇴함을 거부하고 스스로 침몰을 선택했다. 한데 포로로 잡힌 승무원 101명 중 많은 이들이 금화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병사들에게 물 마시는 곳을 안내한 쓰시마섬 여성은 금반지를 받았다는 얘기도 전해졌다. 우체국장을 지낸 시게타로라는 이 지역 유지는 러시아 병사들로 부터 “나히모프호에는 엄청난 양의 금화가 실려 있다”라는 말을 들었다. 

 

1919년 시게타로가 금화 발굴에 착수했지만 실패하고 전재산을 잃었다. 8년 뒤에는 시모다 카메요시팀이 발굴 작업을 벌였지만 수심 90m에서 조류에 휩쓸려 잠수부들이 사망하는 사고를 겪었다. 1932년에는 한꺼번에 3개 단체가 나히모프호 탐사에 나섰다. 여기에는 옛 쓰시마 당주, 국회의원, ‘광산왕’으로 불리는 인물 등 쟁쟁한 멤버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그 중 일본 최초의 실업가 단체인 교마코토사는 신문에 대대적인 광고를 내고 투자자들을 유치했다. 1인당 10엔 씩 모집했는데 무려 31만 엔, 현재 가치로는 150억 원이 넘는 투자금을 거뒀다. 하지만 곧 일본의 대륙침략이 본격화되면서 탐사 작업이 중단되고 투자자들은 ‘생돈’을 날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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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보물선 ‘흑역사’는 전후에도 이어졌다. 탐사 바턴을 이어 받은 이는 일본 선박진흥회 사사카와 료이치(1899~1995) 회장이었다. 1931년 국수대중당이란 우익단체를 만든 그는 이탈리아 무솔리니와 회담한 A급 전범 용의자로 스가모 형무소에서 3년간 복역하기도 했다. 1980년 9월 사사카와는 “나히모프호에는 7조 엔의 보물이 잠들어 있다”고 선언하고, 사재를 털어 발굴 작업에 나섰다. 81세 나이에도 그는 스스로 잠수정을 타고 침몰선을 촬영하는 등 적극적인 작업을 펼친 끝에 수심 93m 해저에서 10kg짜리 백금괴 16개를 인양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일본과 구소련은 이 금괴의 소유권을 놓고 치열한 외교 공방을 벌였다. 이런 와중에 사사카와는 "바닷속 보물을 식량 부족에 허덕이는 소련에 통째로 넘겨줄 테니 대신 북방 영토를 돌려 달라"는 난데없는 주장을 폈다. 북방 영토란 2차 세계대전 후 소련에 귀속된 쿠릴열도 남부 4개 섬을 말한다. 보물선 탐사에까지 영유권 침탈 야욕을 드러낸 일본 극우세력의 행태는 혀를 찰 일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백금괴의 무게가 너무 가볍다는 의문이 제기됐고, 성분을 분석해 보니 어이없게도 백금이 아닌 납덩이로 밝혀졌다. 7조 엔 보물이 숨어있다던 나히모프호는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영토분쟁을 이슈화하기 위한 극우세력의 ‘자작극’이 아니냐는 의혹만 남기고 흐지부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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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보물선 탐사에는 발굴을 합리화하는 역사적 사실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나히모프호 경우도 몇 가지 ‘그럴듯한’ 근거를 내세웠다. 러일전쟁 개전 직후, 프랑스와 독일 주재 일본 공사관에서 ‘러시아가 극동함대를 부활시킬 군자금으로 독일에서 8억 마르크, 프랑스에서 7억 프랑을 빌렸고, 이를 영국 파운드화로 바꿔 발틱함대에 실었다’는 전문을 본국에 보냈다는 것이다. 또 러시아 해군사령부의 ‘러일개전사’에 발틱함대에는 영국 돈 1300만 파운드가 실렸다는 기록이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다 니미호프호가 발틱함대에서 회계를 담당한 배라는 점도 금화와 금괴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됐다. 당연히 사료나 증거는 없었다.

 

이와 같은 나히모프호 사건을 살피다 보면 돈스코이호를 떠올리게 된다. 두 전함 모두 발틱함대에 속했고 일본 연합함대의 포격을 받아 각각 쓰시마섬 근해와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했다. 150조 원이라는 돈스코이호의 가치도 나히모프호 발굴 때 내세운 근거로 추정한 것으로 여겨진다. 투자자를 모집하는 방식 역시 비슷하다. 돈스코이호 발굴 업체는 중앙 일간지에 전면광고를 내고 가상화폐로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이는 80여 년 전 나히모프호 발굴 때 신문 광고를 내고 출자증서를 발급한 것과 닮은꼴이다. 증서가 첨단 화폐로 바뀌었을 뿐 투자금을 공개적으로 모집한 방식은 같다. 

 

돈스코이호와 나히모프호에는 제국주의 침략과 수탈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있다. 두 배가 참전한 러일전쟁은 러시아와 일본이 조선과 만주 지배권을 놓고 벌인 싸움이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같은 해 을사늑약을 강제하고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았다. 두 전함은 한반도와 함께 침몰한 셈이다. 이런 까닭으로 돈스코이호 침몰은 일제의 갖은 수탈이 이뤄진 우리 식민역사의 일부라고 말해도 그리 지나치지 않다. 따라서 뼈아픈 역사를 미끼로 한 보물선 ‘잔혹사’가 더 이상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수십 년 동안 수많은 피해자를 낸 나히모프호 교훈을 그냥 흘려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돈스코이호 침몰은 우리 식민 역사의 한 부분이다”

 

이번 돈스코이호 탐사는 십수 년 전 이 배 발굴에 실패한 기업의 임원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이들의 재도전이 ‘쨍하고 해 뜰 날’로 바뀔까? 아니면 또 다시 좌절하고 ‘님은 먼 곳에’를 노래할까? 관전 포인트는 또 있다. 정말 엄청난 양의 보물이 나온다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는 어떤 ‘뜬금없는’ 주장을 펼 지 궁금하다. 아베는 일본이 러일전쟁 승전국이니 자기네 전리품이라고 행여 우기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사사카와의 ‘납 소동’에서 보듯 일본 극우세력 또한 독도가 제 것인 양 영토분쟁을 부추기지는 않을까.

 

연일 푹푹 찌는 날씨에 뭍에선 북핵에다 경기침체로 팍팍한데, 바다마저 ‘보물 소동’으로 시끌벅적하니 이래저래 밤잠을 설치게 되는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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