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회장서 벗어나 자신의 이야기로 찾아온 강원국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20 14:09
  • 호수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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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의 글쓰기》, 글을 통해 자신을 찾는 여행자들의 친구

 

“의료진은 제 진단 영상을 보고 암일 확률이 98%라고 말했습니다. 중간에 추석까지 끼어 있어서 20일을 공포에서 살았습니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서 통곡했습니다. 그리고 오진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전직 청와대 비서관으로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말을 듣고, 행동하는 나에서 자신을 말하는 삶으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암 선고를 받는 순간 그는 처형장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도스토옙스키와도 같았다. 다행히 결과가 뒤집혔다. 그리고 그는 번지르르한 월급이 보장된 대기업 대신에 편집, 교정, 교열 등 출판의 전반을 진행하는 출판사의 평직원이 됐다. 2년 후인 2014년 2월 《대통령의 글쓰기》를 출간했다. 글쓰기 책으로 드물게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후 1000회 정도의 강연도 했다. 방송에 출연하면서 스스로 즐기는 ‘관종(관심종자)’이 괴롭다는 것도 서서히 알아가고 있다. 이후 4년이 지난 최근 《강원국의 글쓰기》를 출간한 작가를 을지로에서 만났다. 

 

“모셨던 분들에 관한 책이 아닌 제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결심하고 작업한 것은 오래됐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글쓰기》의 인기, 탄핵 정국 등이 겹치면서 미뤄졌습니다. 올 초 인터넷 매체에 40여 일간 연재하면서 원고를 정리하고, 다시 다듬었습니다. 이제야 제 책이 나온 셈이죠.”

 

긴 시간과 퇴고의 과정을 거친 후 책이 나와선지 《강원국의 글쓰기》는 틀이 잘 잡혀 있다. 책에서도 강조하듯 구조의 기틀을 잡고, 기둥을 세우고, 다양한 모습으로 지붕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틀에 박힌 구조가 아니라, 재미있는 예화 중심이라 아주 쉽게 읽힌다. 글의 시작, 독창성, 일관성, 쓰는 법 등으로 틀을 짰고, 마지막에 글을 쓰면서 놓치지 않아야 할 점을 모았다. 

 

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펴냄 | 336쪽 | 1만6000원 ⓒ메디치미디어 제공


 

잘 잡힌 틀로 제시하는 글쓰기 입문

 

《강원국의 글쓰기》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라면 ‘쓴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할 수 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처럼 시작하지 않으면 명작 또한 나올 수 없다. 작가는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서라도 쓰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독자에게 알려주려 노력한다. 몇 차례 이야기되는 어머니의 장례식, 책은 많다지만 남의 집일 수밖에 없는 친척 집에서의 생활, 사라져버린 아내의 연애편지 이야기 등은 저자가 써야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흥밋거리다. 실제로 작가의 글쓰기에서 책과의 만남은 중요했다. 

 

“고등학생 때 살았던 고모댁은 서점이었는데, 이곳에서 읽었던 책과 지하 카페에서 듣던 음악이 저를 키운 것 같습니다. 그 ‘홍지서림’은 지금 주인이 바뀌어 소설가 양귀자씨가 운영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만난 책들이 제 글의 근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서점에서 보낸 고등학생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우를 거쳐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을 쓰는 상황이 됐다. 

 

“거대한 두 대통령이나 그룹 회장의 어깨에 올라타면 겁은 사라지고, 통도 커집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고 결국은 개인의 생활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정권이 바뀌어 청와대에서 나왔습니다. 그때 죽음이 가까이 왔다는 체험은 중요한 전환점이 됐습니다.”

 

작가는 집필에서도 이제야 대통령과 회장을 떼고,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붙인 책을 냈다. 책은 글쓰기를 체계적으로 소개하는데, 수많은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등이 있다. 작가는 체계를 세울 부분에서 소중한 정보들을 이렇게 나열한다. 이 규칙들을 체화(體化)할 수 있다면 쓰지 못할 글은 없다. 하지만 쓴다고 다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독자들을 만나는 것이다. 

 

“독자가 없는 글은 무의미하죠. 글은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과 같습니다. 풍경은 바람이 불어야 소리가 나는데, 독자가 바람입니다. 독자는 내 글을 읽는 단순한 대상이 아니라 내 글의 주인입니다. 독자가 이해하고, 동의하고, 공감하고, 설득당하고, 감동할 때 글쓰기의 목적은 완성됩니다.”

 

이번 책을 꼼꼼히 두세 번 읽으면 최소한 글쓰기가 두렵지 않을 거라고 작가는 자신한다. 이런 자신감은 ‘이렇게 쓰면 되겠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하고, 나아가 자신의 글을 쓸 용기를 북돋을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이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만들기 위해서는 글뿐만 아니라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투명인간으로 사는 어리석음을 피하고, 오히려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글쓰기 책 넘어 순수문학에도 도전하고파

 

대통령과 회장들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을 만들어가는 작가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앞으로의 계획이었다. 대한민국 글쓰기 세계에서 존재감을 만들겠다는 계획 이후가 궁금했는데, 예상 밖에 빠른 답변이 왔다. 

 

“시와 소설을 써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배운 적이 없어서 다시 공부해야 합니다. 문예창작학과나 국문과에서 다시 공부할 생각도 있습니다. 제가 같이한 문사들도 대부분 어깨 넘어 귀동냥으로 글쓰기를 배웠는데, 한번 정식으로 배워보고 싶습니다. 김훈의 소설이나 안도현의 시를 좋아합니다.”

 

문학을 생각한다는 작가에게 사숙(私淑)할 만한 이들은 김훈이나 이병주처럼 뒤늦게 데뷔해 필명을 남긴 이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통해 그가 생각하는 글쓰기는 사회를 확장하고, 사람들의 진심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갈 계획이다. ‘어쩌다 어른’ ‘세바시’ 등으로 방송에도 익숙해졌다. 아직 프로그램을 공개할 수 없지만, 지상파 방송의 인터뷰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준비 중이다. 

 

“책에도 소개되지만 제 궁극적인 관심은 사람입니다. 패키지로 여행을 가서도 여행을 즐기기보다는 그 여행에 참여한 사람들 면면을 보는 것을 즐기고, 같이하려 합니다. 그런 형식이라면 어떤 방식도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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