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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의 덫’에 빠진 재벌, 과감히 메스 들이대야”

[인터뷰]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이스라엘 특별법 벤치마킹 필요”

이석 기자·유경민 인턴기자 ㅣ ls@sisajournal.com | 승인 2018.07.24(Tue) 14:00:00 | 15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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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개혁은 단순히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필수 코스니만큼 땜질식 처방에 그쳐선 안 된다.” ‘학계의 재벌 저격수’로 불리는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7월10일 기자와 만나 한 말이다. 그는 “국내 재벌기업이 단가 후려치기나 일감 몰아주기 등의 성과에 안주하면서 제조업의 혁신을 게을리했다. 그 결과가 부메랑이 돼 지금의 위기를 맞고 있다”며 “과거 독일과 일본이 제조업의 진화를 통해 위기에서 벗어난 것과 대조적”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문재인 정부가 현재 재벌 개혁을 부르짖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행정력을 동원한 일감 몰아주기 단속 등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과거 이스라엘도 한국과 같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 문제로 몸살을 앓았지만, 특별법을 제정해 문제의 원인부터 접근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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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재벌기업의 경제력 집중 현상이 확대되고 있다. 

 

“재벌기업들은 그동안 ‘땅 짚고 헤엄치기식’ 사업을 해 왔다. 부를 독식한 후 2세나 3세들에게 물려줬다. 상위 기업으로 올라갈수록 경제력 집중 현상이 커지고 있다.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의 매출이나 자산이 공정위 지정 대규모 기업집단 32곳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이 격차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재벌기업 내에서조차 부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4대 그룹의 자산이나 매출 비중이 소폭 하락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2015년 이후 실적이 부진했다. 삼성그룹도 2013년 화학 및 방산 계열사를 한화나 롯데그룹에 매각하면서 통계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지배력 면에서 유의미한 변화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인가. 

 

“그동안 한국 경제의 성장을 이끌었던 제조업이 최근 사양화되고 있다. 숙련된 노동력과 임금 경쟁력이 인도나 중국 등에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80~90년대 한국이 고속 성장할 때 일본이나 독일 등이 겪었던 제조업 진화 과정이다. 당시 일본과 독일은 최종재 조립이 아닌 고부가가치 중간재 위주로 산업 구조를 재편해 위기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한국에는 이 진화 과정이 없었다. 오랜 시간 계속된 강력한 수요독점을 무기로 중간재 ‘단가 후려치기’와 협력업체 기술 탈취에 몰두해 왔다. 일감 몰아주기와 수직 계열화 등을 통한 부의 승계가 재벌의 유일한 관심사였다. 그 결과 재벌의 덩치는 커졌지만, 혁신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 한국 경제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 재벌 개혁은 단순히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경제의 위기를 탈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필두로 문재인 정부가 최근 재벌 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으레 재벌 개혁을 외쳤지만 그때뿐이었다. 정치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땜질식 처방으로 일관했다. 재벌들도 마찬가지다.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식의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비판을 자초했다. 말기 암에 걸린 환자를 예로 들어보자. 하루빨리 수술 날짜를 잡는 것이 상식이다. 현재 한국 경제가 그렇다. 약물 치료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수술 대신 약물 치료로 일관하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건드리지도 못하고, 행정력을 동원한 일감 몰아주기 단속 등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낙수효과’를 노린 보수정권의 정책과 ‘소득주도 성장’을 목표로 하는 현 정권의 정책은 상반돼 보이지만, 개혁이라는 ‘수술’이 아닌 증세 완화라는 ‘약물 치료’일 뿐이라는 점에선 다를 게 없다고 본다.”

 

이스라엘도 과거 재벌의 경제력 집중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고 들었다. 

 

“그렇다. 1980년대까지만 이스라엘은 노동당이 집권한 만큼 사회주의 성향이 강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기업집단도 노조가 소유하다 보니 생산성이 약했다. 1990년대 보수당으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대부분의 기업들이 국유화됐다. 이후 국유화된 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재벌의 경제력 집중 현상이 생기게 됐다.” 

 

이스라엘의 경우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 어떤 정책을 도입했나.

 

“이스라엘은 2013년 12월 특별법인 ‘경제력 집중법’을 제정했다. 모든 기업집단에 대해 6년 안에 2층의 지배구조를 만들게 한 것이 특징이다. 한 상장기업이 다른 상장기업에 출자를 하면 출자를 받은 상장기업은 다른 상장기업으로 출자를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지주회사-자회사 개념이다. 물론 비상장기업은 예외였다. 때문에 비상장기업을 중간에 끼워 사실상 한 층을 더 만드는 편법을 사용하는 기업들이 생겨났지만, 강력한 대응과 재입법을 예고하면서 이 문제 또한 사라졌다. 우리나라도 이스라엘의 특별법을 벤치마킹한다면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사익편취나 경제력 집중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본다.” 

 

경제력 집중 완화를 위한 방안이 더 있나.

 

“이스라엘의 경우 경제력 집중이 우려되는 기업은 국유자산을 매각하는 경매에서 배제하기도 했다. 국유화됐던 자산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특정 기업집단의 경제력 집중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재벌 일가가 특정 계열사 내 자원을 자신이 지분을 많이 가진 계열사로 이동시키는 이른바 ‘터널링’을 방지하기 위한 정책도 있다. ‘(소수집단의) 다수결’인 MOM(Majority of Minority Rule)이다. 오너 일가의 월급이나 계열사 합병, 오너 2·3세의 경영 참여 등 지배주주와 비지배주주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안건은 비지배주주 절반 이상의 동의를 얻어 통과시키는 게 MOM의 요지다. 이 방법 또한 현재 한국 재벌에 만연해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MOM을 공정거래법 11조에 반영하면 상장기업들과 일정한 요건 이상의 비상장기업에 적용할 수 있다. 경제력 집중 완화를 위해서는 이스라엘과 같은 상장회사 2층 구조를 만들면 된다. 공시 기업집단 출자를 규제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규제하면 총수가 소수 지분으로 계열사 지배력을 최대로 늘리는 지금의 (재벌기업) 지배구조가 풀린다.”  

 

※관련기사

☞4대 그룹 자산, 한국 GDP의 절반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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