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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그림에도 팔자가 있다

김정헌 화가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4·16재단 이사장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25(Wed) 08:00:00 | 15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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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뉴월 땡볕에 무슨 팔자타령인가?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게도 운명이나 팔자가 있듯이 나는 그림에도 반드시 팔자가 따른다는 주술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어떤 그림은 ‘어쩌다 보니’ 어느 집 안방에 걸려 있기도 하고 남북 정상들이 회담한 판문점 ‘평화의집’에 걸려 있기도 한다.

때로는 ‘어쩔 수 없이’ 그림의 신전이라는 미술관에 걸려 있기도 하고, 그림의 가격이 올라 이리저리 팔려 다니기도 한다. 팔자에 의해 ‘어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이 좋은 장소에 걸린다 하더라도 이들 작품은 대부분 관객들에 의해 제대로 또는 좋게 평가를 받은 경우다.

내가 이미 어떤 지면에 기고했지만 우리나라에선 그림의 팔자가 더러운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팔자가 사나워 관객과 만나기도 전에 비극적인 일을 당한 일은 얼마나 많았는가. 전시장에서 전시장을 봉쇄당한 채 쫓겨나거나(1980년 현발 창립전), 정부가 불온의 딱지를 붙여 압수보관하거나(1982년 현발과 몇 작가의 작품들), 심지어는 전시장 안에서 경찰들이 마구 작품을 짓밟고 약탈한 경우(1985년 《힘》전 사태)도 비일비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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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악의 경우가 신학철 작가의 《모내기》 작품이다. 이 작품은 보안법의 이적표현물로 작가와 함께 재판을 받은 후 검찰의 창고 안에서 아직도 무기징역을 살고 있다(얼마 전에 보관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기로 했다). 얼마 전까지도 정부의 사상 검열(블랙리스트 작가 등)로 전시장에 걸리지 못하는 작품들이 있었으니 이것이 잘못 태어난 작품의 팔자 탓만은 아닐 것이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내가 1985년 공주대 교수로 근무할 때 공주교도소 내벽에 대형 벽화(높이 3m, 길이 30m) 《꿈과 기도》를 그린 적이 있다. 이 벽화는 15년형을 받은 여자 장기수의 그림지도를 위해 드나들다 교도소장을 움직여 교도소 안에 재소자들이 볼 수 있는 그림을 그려주겠다는 제안이 이루어져 그리게 된 것이다. 

그 벽화 제작에는 제자들의 도움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방학했을 때 요즘처럼 무더운 7월에 그렸는데, 이 그림을 매일 내려다보던 언덕 위에 홀로 갇혀 있던 징벌방의 아저씨는 우리들이 나타나면 그렇게 신나 할 수가 없었다. 아침에 우리가 나타나면 “교수니임~ 안녕하세요”를 두세 번 외치고 우리가 벽화를 진행하는 속도에 맞추어 적절한 현장비평을 가한다. “교수니임~ 참 이고 가는 처녀 더 예쁘게 그려주세요.” 때로는 “그 처녀 치마를 더 짧게 그려주세요.”

주로 자기의 취향(?)에 따른 요구였지만 제작 중에 제대로 관객을 만난 셈이다. 이 벽화는 뒤에 작가 황석영이 이 교도소로 이감 오면서 운동을 하던 그의 눈에 띄어 특별 면회를 갔을 때 “거 운동장에서 뛰다 보니까 민중미술 냄새가 나는 벽화가 있던데 거 김 교수가 그린 거지?” “뭔 벽화에 냄새가 나?”

이 벽화를 본 작가 황석영은 교도소를 나와 작가로서 승승장구했는데 징벌방 아저씨는 더 잘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벽화는 처음 법무부 재산으로 등록되어 잘 관리를 받았지만 부실한 시공(시멘트블록 담 위에 그려 안료가 계속 일어나 떨어져 나갔다)과 교도소 구조개선 때문에 10여 년 만에 사라져버렸다. 다 이것도 벽화의 팔자 탓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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