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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서울의 정체성을 궁궐에서 찾아야 하나”

《서울 선언》 펴낸 규장각한국학연구소 김시덕 교수

조철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29(Sun) 16:00:00 | 15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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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도 서울인가? 어디까지 서울인가? 인위적으로 구획된 행정구역인 서울특별시 안의 지역들을 걷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나? 나는 왜 우연히 탄생한 것일 뿐인 행정구역 서울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걸까?”

 

고문헌학자가 서울 답사에 나섰다고 하면 ‘문화유산 답사’를 떠올릴 것이다. 궁궐과 박물관, 역사 유적을 돌아보겠거니 생각할 만하다. 그러나 규장각한국학연구소 김시덕 교수가 펴낸 《서울 선언》에 그런 장소는 등장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찬란한 문화유산이나, 아픈 근대의 흔적 같은 이야기는 없다. 물론 이 책도 역사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시점은 대체로 현재에 가깝다. 

 

“오늘날의 서울이 1963년에야 지금의 형태를 띠게 된 것처럼, 현재 서울의 역사라는 것도 원래부터 존재하던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현재와 같은 형태를 띤 서울특별시는 역사적으로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에 ‘올바른 서울의 역사’란 것도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서울 선언》에 등장하는 장소들은 현대 서울이다. 얼핏 봐선 볼품없는 곳들이다. 아파트 단지와 상가, 골목, 공단과 종교 시설, 주택가, 유흥가와 집창촌, 서울 안의 농촌 지대, 이런 곳들이 김 교수의 관심사다. 이들 장소의 공통점은 바로 시민의 생활 터전이라는 점이다. 경복궁 근처에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람도 극소수일 뿐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시민 대다수가 사는 공간엔 관심이 없고, 함부로 없애버려도 된다고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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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속 모든 공간과 사람, 동일하게 가치 있는 존재”

 

“서울에 대한 책을 출간하신 어떤 문화유산 연구자분께서 ‘세계 어디를 가도 5개의 궁궐을 가진 곳은 서울밖에 없다. 서울이 궁궐의 도시라는 게 관광의 캐치프레이즈가 되길 바란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내 생각은 다르다. 사대문 안만 서울이 아니고, 대부분은 사대문 밖에 사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서울의 정체성을 사대문 안, 그것도 이제는 망해버린 지배집단의 거점인 궁궐에서 찾아야 하나. 서울은 조선시대 후기 권력층만 살던 도시가 아니다.  내가 살고,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 그리고 내 친구가 사는 공간은 왜 서울 이야기를 할 때 비껴나가고 의미를 부여받지 못할까. 이제까지 서울을 말해 온 사람들이 조선시대 궁궐과 왕릉, 양반의 저택과 정자들을 주로 거론해 온 것은 대단히 편협한 귀족주의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든 옛 책이 동일하게 귀중한 것과 마찬가지로, 서울 속의 모든 공간과 사람도 동일하게 가치 있는 존재들이다.”

 

김 교수는 서울 곳곳을 다니면서 재개발 예정지와 맞닥뜨렸다. 그곳의 주민들에게서는 불안감을 느꼈다. 토지주가 아닌 임차인인 그들은 거주지가 개발되면 그곳에서 쫓겨나기 때문이었다. 

 

“서울의 뜻깊은 공간인 이 지역에 대한 기록을 남기려 사진을 찍겠다고 했더니, 한 주민이 ‘여기 뭐 볼 게 있냐’고 하셨다. 슬픈 마음이 들었다. 그곳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곳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역사와 의미를 뺏긴 거다. 살고 있는 땅에 대한 애착감이나 역사감을 잃어버리고, 저기 멀리 사대문 안 조선시대 후기 지배집단이 만든 궁궐과 정자를 자기 도시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도록 교육받은 것이다. 나는 이걸 일종의 역사 전쟁, 계급 전쟁이라 생각한다. 말하자면 헤게모니를 뺏긴 것이다. 서울에 관한 담론을 되찾고, 시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한국은 조선 왕족과 양반이 지배하는 땅이 아니라 공화국 시민의 땅이라는 선언을 하자. 그래서 ‘서울 선언’이라는 제목이 나왔다.”

 

 

“서울이 ‘역사 없는 도시’가 되고 있다”

 

김 교수는 조선 왕조와 사대부 문화의 계승을 서울의 정체성 확립과 동일시하는 관점을 비판한다. 이 관점을 ‘조선 왕조 중심주의’라 칭하고, 강남 개발 과정에서 파괴된 백제 고분과 왕성들, 은평 한옥마을 조성 과정에서 파괴된 5000여 기의 평민 무덤을 예로 든다. 한편으로는 일제 잔재 청산을 이유로 근대 문화유산을 마구잡이로 훼손하는 행태도 문제 삼는다. 일제를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아픈 역사를 감추고 지울 것이 아니라 보존하고 드러내야만 교훈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서울의 백제 유적이 파괴된 것은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뒤도 아니고, 임진왜란 때도 아니고, 식민지 시대도 아니고, 바로 우리 한국인들이 정부를 세운 현대 한국 시기였다. 현대 한국, 현대 서울에 이렇게까지 유적·유물이 남아 있지 않은 책임의 일부는 바로 우리 현대 한국인들 자신에게 있다. 이 책임을 회피하면 안 된다.”

 

김 교수는 서울이 ‘역사 없는 도시’가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애초에 우리는 외국에 비해 문화유산이 그리 많지 않다. 흔히 ‘침략을 많이 받아서’이거나 ‘일제의 약탈’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는 그 책임이 현대 한국에도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사대문 내 조선 왕조를 복원해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같은 일에 매달리는 한편, 사대문 밖 오래된 장소들은 함부로 파헤쳐 재개발하는 데 여념이 없다는 것이다.

 

“‘구로공단’이라는 이름은 ‘구로디지털단지’ ‘G밸리’로 바뀌고, ‘가리봉역’이라는 이름은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바뀐다. ‘가산’은 1963~70년 사이에 존재한 지명이기는 했지만, ‘가리봉’이 훨씬 오래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가리봉’과 ‘독산’을 합친 인공적인 지명인 ‘가산’이 ‘가리봉’을 대체한 데서, 나는 모종의 의도를 느낀다.”  

 

김 교수는 서울의 정체성을 다시 정립할 것을 요청했다. 그에 따르면, 서울은 조선 왕조와 사대부의 전통을 잇는 도시가 아니고, ‘공화국의 수도’이자 ‘시민의 도시’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화려하고 세련된 모습뿐 아니라 초라하고 더러운 모습도 공존하는 도시다. 이 모든 것을 역사로 받아들이는 것이 곧 서울의 진정한 주인, 시민을 존중하는 길임을 강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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