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과 돈③] ‘제2, 제3의 노회찬’ 신화 계속된다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18.07.27 13:39
  • 호수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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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계파 싸움 없는 당원 중심 시스템…도덕성 논란 뛰어넘어야

 

7월23일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투신 소식이 알려진 직후, 당 대표실과 대변인실 등 국회 본청에 있는 정의당 사무실에는 취재진이 대거 몰려들었다. “우리도 지금 막 속보(速報) 보고 알았다. 일단 사실부터 파악해야 할 것 같다.” 당 관계자들은 몰려오는 취재진을 밀치고 사무실 문을 굳게 잠갔다. 그러고는 한참 동안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노 의원이 당 원내대표까지 맡고 있어 이날 정의당이 받은 충격은 더했다. 그래서였을까. 닫혔던 사무실 문은 이후 한동안 열리지 않았다. 오후 3시45분 상무위원회 회의를 끝마친 뒤 최석 대변인을 통해 정의당은 “유가족과 상의하고 고(故) 노회찬 원내대표님 장은 정의당장, 기간은 5일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상임 장례위원장은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맡으며 각 시·도당에 분향소를 설치할 예정”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7월24일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빈소에 KTX 해고 승무원이 조문을 한 뒤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부둥켜안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노회찬, 여의도式 아닌 서민 언어로 정치해

 

노 의원 사망은 단순히 한 정치인의 죽음으로 국한시킬 수 없다. ‘노회찬’이라고 하는 정치인이 가진 상징성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노 의원은 진보정당의 원내 진입 이후 첫 3선 의원이다. 특히 그가 가진 대중성은 그를 진보정치 진영에서 단연 돋보이게 만들었다. 노 의원은 여의도식이 아닌 서민의 언어로 정치를 펴, 이념으로 덧칠해진 진보정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정의당의 정당 지지도는 상승세였다. 한국갤럽이 7월20일 발표한 정당지지도 조사에 따르면, 7월 셋째 주 정의당 지지도는 10.4%를 기록해 9.9%인 자유한국당을 앞섰다. 진보정당이 거대 보수정당을 지지도에서 앞선 것은 헌정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그러다 보니 정의당 내부에선 ‘지금 분위기라면 다음 총선에선 뭔가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넘쳐났다. 이러한 정의당 상승세를 이끈 주역이 바로 ‘노·심(노회찬 원내대표,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 쌍두마차’다. 드루킹 관련 언론보도가 나온 이후에도 정의당이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은 것은 대상이 도덕적으로 완벽함을 자랑하는 노 의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노 의원은 특검 수사에 상당한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 노 의원은 일부 언론을 통해 특검의 수사 내용이 흘러나올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일 없다. 절대 아니다. 걱정 마라”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 관계자는 “어떤 대가나 청탁도 없는 순수한 정치후원금이라고 생각하고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문제의 단체에서 준 돈이어서 본인 스스로가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언론의 금품 수수 의혹은 꼬리를 물고 이어져 7월 중순 여야 원내대표단의 미국 워싱턴 순방길에까지 이어졌다.   

 

당초 노 의원은 7월23일 오전 국회 본청에서 열리는 당 상무위원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회의 직전 당에 “어머님이 아프셔서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고 통보했다.  

 

노 의원 죽음이 진보정치 진영에 큰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진보정치의 한계는 정파성과 대중성으로 요약돼 왔다. 군소 정치인들이 난입하는 구조다 보니 수권 능력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 정의당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지는 이유엔 노회찬 의원과 같은 간판스타가 내공을 쌓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진보정당 내에서도 대중성을 갖춘 스타 정치인을 중심으로 빅텐트를 꾸리는 것이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노 의원은 입증하는 듯했다. 당 관계자는 “노 원내대표가 진보정당이라는 힘든 길을 외면하고 민주당에 갔다면 벌써 4선, 5선을 하고도 남았을 것”이라면서 “서민과 노동자를 위한 정치를 펴왔기에 정치 역정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었다”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노 원내대표는 지금의 경제구조를 단순히 노동환경의 불합리성에만 두지 않고 어떻게 하면 일자리를 늘리면서 한국 경제의 미래 먹거리를 만들 것인지 현실적으로 고민한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다 보니 당장 정의당 당직자들은 노 의원을 죽음에 이르게 한 현 정치구조를 강하게 성토했다. 당 관계자는 “당장은 장례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정신이 없지만, 노 대표를 죽음에 이르게 한 보수언론과 특검의 행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당원 김아무개씨도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언론에 흘려 여론몰이에 나선 것은 과거 고 노무현 대통령 때와 똑같다”면서 “특검 관계자가 보수언론 정치부 데스크들을 만나고 다닌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그게 이런 일로 이어질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 의원의 사망으로 가장 충격에 빠진 곳은 그가 몸담았던 정의당이다. 그중에서도 동지이자 경쟁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던 심상정 의원이 받은 충격은 더하다. 심 의원은 빈소가 마련되자마자 오후 2시 소속 의원 중 가장 먼저 빈소를 찾아 깊이 애도했으며 장례일정 내내 노 의원 곁을 떠나지 않았다. 

 

7월24일 새벽 심 의원은 자신의 SNS에 노회찬 의원의 별세를 알리며 “영원한 동지를 잃었다”며 비통한 심정을 밝혔다. 그러면서 심 의원은 “나의 영원한 동지, 노회찬. 그가 홀로 길을 떠났습니다. 억장이 무너져 내린 하루가 그렇게 갔습니다”라고 애도했다.  

 

 

정의당, 당분간 심상정 ‘원톱’ 불가피

 

정치권에선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노 의원마저 금품 수수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의당 또는 진보진영의 도덕성이 도마에 오를지 않을까 예의 주시하고 있다. 노 의원도 유서에서 이런 고심을 담았다. 그는 “무엇보다 어렵게 여기까지 온 당의 앞길에 큰 누를 끼쳤다.…사랑하는 당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대가성이 없기 때문에 뇌물죄는 성립되기 힘들지만, 돈을 받은 사실을 본인이 시인했기 때문에 정치자금법 위반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 “이 문제를 진보진영이 어떻게 푸느냐가 숙제”라고 지적했다. 

 

반대 시각도 있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는 “유력 진보정치인마저 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지금의 정치구조가 더 큰 문제”라면서 “정치자금을 받는 창구는 확대하되 용처를 분명하게 확인토록 하는 정치자금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대중성 측면에선 다소 타격이 있겠지만, 당내 계파 갈등이 없었기 때문에 포스트 노회찬이 나온다면 지금의 위기를 잘 벗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도 “정의당은 여의도 정치권 내 사당화(私黨化) 논란에서 가장 자유로울 정도로 당원 중심, 이념 중심의 정당이기 때문에 지금의 위기를 전화위복으로 삼을 저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 

 

※‘정치인과 돈’ 커버스토리 관련기사

[정치인과 돈①] 돈과 정치 그리고 ‘바보 노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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