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년’ 만의 최고 폭염 기록이라는 이유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8.08.01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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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공식 일기 예보 시행…한국 '100년 관측소' 2곳 선정

 

1994년 7월24일자 동아일보는 ‘서울 낮 최고기온이 38.4도로, 기상관측소가 설립된 1907년 이후 87년 만에 최고치’라고 보도했다. 24년이 흐른 2018년 8월1일 오후 1시 41분 현재 서울 기온이 38.8도를 기록하면서 111년 만에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언론이 관측 기준으로 삼는 1907년은 인천관측소 산하에 경성·평양·​용암포·​대구·​부산·​목포·​원산·​성진 등 8개 측후소가 설립됐고, 일기 예보와 폭풍 경보 규정을 공포함과 동시에 예보 업무를 시작한 해다. 

 

1900~1920년 서울관측소(왼쪽)와 부산관측소 ⓒ기상청

 

한반도의 날씨 관측기록에 대한 역사는 기원전부터 있었고, 고려 초기에도 기상과 천문을 관측하는 태사국(太史局)이라는 기관이 있었다. 1308년(충렬왕 34)에는 서운관(書雲觀)이라는 기상관측기관이 설치돼 조선 초기까지 존속했다.

 

기상관측기를 사용해서 정량적인 기상관측을 시작한 것은 1442년(세종 24) 측우기를 만들어 우량관측을 하면서부터다. 과학적인 우량관측이 서양(1639년)보다 198년 앞선 것이다. 

 

서양의 기상관측기가 도입된 것은 고종 때의 일이다. 조선 해관 총세무사로 임명된 독일인 묄렌도르프는 1884년 인천항과 원산항에 기상 관측 기기를 설치해 근대적인 기상 관측을 개시했다. 1887년에는 부산항에도 기상 관측 기기를 설치했다. 

 

예조 소속이던 관상감이 1894년에 학무아문(學務衙門) 소속의 관상국으로 바뀌고, 다시 1895년에 학무아문이 학부(學部) 소속으로 바뀌면서 관상소가 됐다. 관상소는 천문·기상을 관측하는 관청이다. 

 

관상소는 1904년부터 부산·​목포·​인천·​용암포·​원산 등 5개소에 임시 기상 관측소를 설치했고, 그 후 성진과 진남포에도 임시 관측소를 설치해 모두 7개 관측소로 기상 관측망을 구성했다. 관상소는 1907년에 측후소로 이름을 고쳤는데, 실질적인 운영은 일본인이 담당했다. 이때 전국 8곳에 측후소가 설립됐고, 공식적으로 일기를 예보했다. 

 

광복 후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발족한 문교부 국립중앙관상대가 1962년에 교통부로 이관됐다가 1967년 과학기술처가 신설되면서 과학기술처로 이관됐다. 1982년 국립중앙기상대로 이름이 바뀌었고, 1990년 1월 기상청으로 승격됐다. 

 

우리는 1956년 3월 세계기상기구(WMO)에 가입했다. WMO는 2017년 서울과 부산 관측소를 '100년 관측소'로 선정했다. 이는 기상 분야의 유네스코 문화재라고 불린다. 100년 관측소의 기준은 '100년 전 설립' '비활동 기간 10년 미만' 등이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부산 관측소는 1904년 3월7일, 서울 관측소는 1907년 10월1일 각각 설립됐다. 

 

전 세계 기상관측소는 1만여 곳이 운영 중이며, 이 중 60곳이 '100년 관측소'로 선정됐다. 세계 최다 '100년 관측소' 보유국은 스페인이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3곳으로 가장 많고, 키르키스스탄에 2곳이 있고, 일본에는 1곳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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