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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푸른 눈의 독립투사’

[이원혁의 ‘역사의 데자뷰’] 12화 - 파리 샤또덩街의 기적

이원혁 항일영상역사재단 이사장 (前 KBS PD)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8.07(Tue)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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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꼭 99년이 되는 1919년 8월6일, 프랑스 파리에서 조촐한 환송회가 열렸다. 우리 임시정부 파리위원부가 미국으로 돌아가는 김규식 박사를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그는 파리강화회의에서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를 떠나 이곳에 왔었다. 행사장에는 태극기와 독립선언서가 배포됐고 참석자들의 독립 지지발언이 이어졌다. 

 

그런데 80명 남짓한 참석자들의 면면이 ‘뜻밖에도’ 화려했다. 사회자는 프랑스 하원 부의장이었고, 재건국장인 페이예 장군, 하원의원, 모스크바 시민회의 의장, 파리주재 중국 총영사 등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자리를 메웠다.

 

김규식 박사 일행이 파리 샤또덩거리 38번지에 둥지를 튼 지 불과 4개월 만의 일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비록 파리강화회의 참석은 거부당했지만, 제2인터내셔널 제네바회의에서 한국 독립안을 승인받았고 영국에 한국친우회를 결성했다. 교황 베네딕토 15세로부터 ‘핍박받는 한국인들이 하루빨리 해방되기를 바란다’는 지지 서한도 받았다. 더구나 1919년 3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유럽 각국 신문에 한국 관련 기사가 무려 518회나 게재될 정도였다.

 

그 무렵 파리위원부의 모습을 담은 글에는 “숙소에 전등도 없어서 촛불을 켜고, 밤을 새워가며 편지를 쓰고, 전보를 치고, 신문사를 찾아다녔다”라고 적혀있다. 그만큼 우리 애국지사들은 조국의 현실을 알리는데 온몸을 던진 것이다. 하지만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기고 주프랑스 공사관이 철수한 후, 14년 동안 유럽에서 우리 외교는 단절됐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 잃은 힘없는 망명객들의 노력만으로 과연 이처럼 ‘놀라운’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아니면 대체 누가 이들을 도왔을까. 수년 전 필자는 이런 의문을 추적하는 방송 다큐멘터리를 만든 적이 있다. 이때 파리위원부의 성과 뒤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손’ 루이 마랭(1871~1960)을 주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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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한복판서 일군 임정의 ‘기적’, 그 중심에 선 한 프랑스 하원의원

 

그는 프랑스 알자스 로렌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곳 주민들은 오랫동안 프러시아의 지배를 받아 제국주의 침략에 대해 뿌리 깊은 반감을 갖고 있었다. 이런 지역적 배경 때문인지 진보적인 성향을 지니게 된 마랭은 1901년 러시아·중국을 거쳐 한국을 여행하면서 ‘우연히’ 우리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는 조르주 뒤크로와 함께 쓴 여행기에 “한국은 극동의 프랑스이며, 한국민은 순수하고 친절하다”라는 감상을 남겼다. 귀국 후에도 마랭은 대한제국 관련 학술논문을 7편이나 발표하며 한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05년 하원의원에 선출되어 정치적 영향력을 얻게 된 그는 한국을 돕는 일에 발 벗고 나섰다. 마랭은 일본과 독일의 침략, 식민지 정책을 규탄하는 의회 보고서를 11차례나 작성했다. 때마침 3·1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곧바로 의회에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펠리시앙 샬레라는 인권운동가를 한국에 파견했다. 두 달 남짓 경성 등지에서 시위를 목격한 샬레는 “일본 군경은 해를 끼치지 않는 군중을 향해 마구 총질을 하고 수많은 평화적인 한국인들을 죽였다”면서 “일본의 친구였던 내가 이제부터 일본 제국주의를 고발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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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샬레가 훗날 조선을 떠들썩하게 만든 ‘로맨스 사건’에 휘말리게 된 사실이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최린이 1927년 피압박민족대회 참가를 위해 파리에 들렀을 때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 나혜석을 만났다. 세계여행 중이던 나혜석은 그의 주선으로 샬레의 집에 머물게 되었고, 기혼이던 두 사람은 이곳과 시내를 오가며 만남을 이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샬레는 3·1운동의 인연으로 부적절한 관계에 얽힌 셈이었다. 그 후 이혼당한 나혜석이 최린을 정조 유린죄로 고소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요즘 이 사건이 최초의 ‘미투 운동’으로 화제가 되는 걸 보면 “역사란 우연과 필연이 얽히고설킨 불가사의다”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3·1운동은 국제정치의 중심지 파리에서 친한(親韓)세력을 결집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 중심에는 1921년 루이 마랭이 만든 ‘한국친우회’가 있었다. 프랑스 내무성의 보고서에는 ‘친우회의 창립총회에 프랑스 상하원의원 9명, 인권연맹 회장, 소르본대 교수, 언론인 등 저명인사들이 회원으로 참석했다. 대부분 마랭 의원과 교분이 있는 사람들이다’라고 기록되었다. 이 자리에서 마랭은 “한국 독립을 위해 100만인 서명운동을 펼치자”고 제안했다.

 

그는 1909년에도 ‘폴란드친우회’를 만들어 100만인 서명운동을 펼친 적이 있다. 필자가 파리에서 만난 폴란드친우회장 다누프 드부아는 “마랭 회장이 대중을 상대로 펼친 서명운동은 파리강화회의에서 폴란드의 독립을 이끌어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한데 정작 한국 독립을 위한 서명운동은 실천에 옮겨지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프랑스 한국친우회에 일본 첩자가 있었다”

 

한국친우회 부회장을 지낸 프랑스 상원의원의 손자는 필자에게 “친우회 사무국장이 친일파였다. 일본이 그를 지원했고 필요한 걸 제공해주었다”라는 충격적인 내용을 전했다. 끌로드 페레르(1876~1957) 사무국장이 일본의 첩자였고 서명운동을 비롯한 친우회 활동을 도리어 방해했다는 주장이었다. 페레르는 프랑스 극동함대의 장교로 복무하면서 수차례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1938년 그에게 한국·중국·만주국 시찰을 주선하고 ‘변하지 않는 영원한 우정’을 담아 2등 공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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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을사늑약 후 프랑스 공사 민영찬이 파리에 남아 루이 마랭과 같은 진보적 정치인들과 손잡고 대중을 상대로 한 강력한 선전활동을 펼쳤다면 어땠을까. 폴란드 독립의 사례에서 보듯 우리 식민역사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을사늑약 때 자결한 형 민영환과 달리 민영찬은 귀국해 일제 앞잡이가 됐고, 한국친우회는 일본 첩자가 쥐락펴락 했다고 하니 참으로 어이없고 분통터지는 우리 역사의 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반면에 루이 마랭은 이방인이었지만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푸른 눈의 독립투사’였다. 그는 중국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지에 있던 우리 임시정부를 보호하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특히 윤봉길 사건 때 프랑스가 일본과 외교적 마찰을 빚으면서도 한인 체포를 막은 데는 그의 힘이 컸다. 당시 집권당 총재였던 ‘거물’ 마랭이 프랑스 외교채널에 여러 차례 강한 ‘압력’을 행사한 문서가 뒤늦게 공개되기도 했다. 

 

또한 한국의 신탁통치를 비판한 1945년 연말 ‘나시옹’지 칼럼에서 그는 “가련하고 유순한 자긍심과 숭고한 정신을 지닌 이 나라 백성들은 또 다시 자유를 기다려야 한다”면서 강대국들의 ‘농간’에 굴복하지 말라는 애정 어린 충고를 남겼다.

 

이렇듯 3·1운동, 파리강화회의, 윤봉길 의거 등 우리 역사의 굵직한 대사건 뒤에는 루이 마랭이란 인물이 있었다. 하지만 40년 넘게 한국 독립을 도운 그는 우리에게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3년 전 한불 수교 130주년을 앞두고 필자는 윤봉길의사 손녀인 독립기념관장에게 마랭 이야기를 알렸다. 기념관 부설 연구소에서 그의 공적 사실을 확인하여 그 해 광복절에 루이 마랭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이 주어졌다. 안타깝게도 후손이 없어 훈장을 직접 주지는 못했지만, 프랑스인으로는 처음으로 독립운동 포상이 이뤄진 의미는 작지 않다. 

 

며칠 후면 광복 73주년이자 정부 수립 70주년 기념일이다. 반쪽이나마 독립은 이뤘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주변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온전한’ 해방을 맞지 못하고 있다. 100년 전 파리 샤또덩가의 기적을 만든 우리의 든든한 ‘우군’, 루이 마랭. 해묵은 역사의 갈피에서 그를 끄집어내게 되는 이유는 뭘까. 아마 그때나 지금이나 한반도 상황이 위태롭긴 마찬가지라는 생각 때문일 게다. 한데, 지금은 우리에게 ‘제2의 루이 마랭’이 있긴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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