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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에 돈 대신 현물 지원해 퍼주기 논란 없애야

[손기웅의 통일전망대] 국군포로·납북자 생환 위해 독일 프라이카우프 활용

손기웅 한국DMZ학회 회장·前 통일연구원 원장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8.07(Tue) 17:00:00 | 1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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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8·15 광복절을 계기로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8월20일부터 갖기로 했다. 2015년 이후 3년 만이다. 신청자들의 수가 수만 명에 달하는 현실에서 이번에도 대상은 남북 각각 100명에 불과하다. 시작 자체가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넓은 의미에서 이산가족에 포함되나 성격이 다른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이에 반인권적 상황에 놓인 정치범을 석방하기 위해 추진돼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독일의 ‘정치범 석방거래’, 이른바 ‘프라이카우프(Freikauf)’를 활용한 ‘한국형 거래’가 고려될 필요가 있다.  

 

프라이카우프는 동독에서 정치적 이유로 투옥돼 인권침해를 받았던 정치범들을 서독 정부가 동독에 대가를 지불하고 서독으로 데려온 거래를 말한다. 아데나워 정부 시기인 1963년부터 시작된 프라이카우프는 특히 빌리 브란트가 집권한 1969년부터 활발하게 추진됐고 통일 직전까지 지속됐다. 이 정책으로 1963년부터 1989년까지 총 3만3755명이 석방됐다. 대신 34억4000만 마르크가 동독 측에 제공됐다. 소요비용은 전적으로 서독 정부의 예산으로 충당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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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독 정치범 석방거래 방식으로 쓰여

 

프라이카우프가 양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기 이전, 시작은 서독 교회가 했다. 교회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 점령지역 즉 동독 지역에 전쟁포로 등으로 잡혀 있는 목사와 교회 관계자 등의 석방, 수형조건 개선,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다각도로 동독과 협상을 진행했다. 결국 1962년 15명의 개신교계 인사를 대상으로 한 석방거래가 처음으로 성사됐다. 동독은 그 대가로 화물차 3대 분량의 칼륨(Kali)을 요구했다. 거래는 계속돼 1962~63년 초 사이 총 100여 명이 석방됐다.

 

이후 동독 정부가 거래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자 서독도 정부 차원에서 논의하기 시작했다. 분단 이후 미·소 양 진영 간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수천 명의 전범, 반(反)소련 및 반동독 성향의 민간인 등이 중형을 선고받고 동독 형무소에서 복역 중인 상황에서 서독 정부는 석방 혹은 수형조건 완화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개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1961년 8월 베를린장벽이 세워진 이후 하루아침에 이산가족이 된 부모와 자식, 부부 등 가족의 재결합을 위해 서독 정부가 적극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결코 외면할 수 없었다. 

 

동독 주민의 인권상황 개선이라는 큰 틀에서 이러한 문제를 다뤘던 서독은 동독이 체제 위협을 느끼지 않는 범위에서 이 문제를 외면하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 즉 동독에 간접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다루고자 했다. 동독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지 않도록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동독이 자국의 인권정책을 전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편 것이다. 프라이카우프는 ‘인권분야에서의 특별노력(besondere Bemuhungen im humanitaren Bereich)’이라는 명칭으로 추진됐다. 

 

프라이카우프가 시작된 이래 서독에서 25년간 6차례 정권이 바뀌었지만 다양한 유형과 조건의 프라이카우프는 1989년 11월9일 베를린장벽이 붕괴된 그다음 달까지도 계속됐다. 다만 서독 정부는 법률대리인과 종교계가 전면에 나서고 정부는 뒤에서 지원하는 형식의 간접적 방식으로 이 문제를 다뤘다. 또한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행위가 자칫 돈을 주고 사람을 거래한다는 반인권적 행위로 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동독 정부가 프라이카우프를 받아들인 주된 목적은 경제적 이해관계에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소련에 막대한 전후 배상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서 경제를 다시 발전시켜야 했던 동독 정부에 프라이카우프는 막대한 외화를 획득할 수 있는 최상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프라이카우프가 자국민을 돈을 받고 서독에 판다는 점에서 동독 체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했다. 동독 정부는 시종일관 “동독에는 정치범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서독과 마찬가지로 동독 또한 변호사를 인권문제 관련 전권대사로 임명해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을 통해 프라이카우프 문제를 다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동독의 주체는 무엇보다도 동독의 국가보안성 ‘슈타지(Stasi)’였다. 1966년 이후 프라이카우프가 최대의 외화획득사업으로 자리 잡으면서 슈타지는 동독의 군사·기술정보 등이 서독으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대상자 선정 등 사업 전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 

 

1971년 울브리히트가 물러나고 새로운 당서기장으로 호네커가 임명되면서 프라이카우프는 당 서기장의 ‘핵심과제’가 된다. 호네커는 1974년 특별계좌를 만들어 자신의 수입을 관리했는데, 1974~90년 수입 가운데 61%가 프라이카우프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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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 호네커의 가장 큰 정치자금줄

 

서독은 1963년 정부 간에 처음 실시된 프라이카우프에서 8명의 정치범 석방 대가로 총 34만 마르크, 1인당 평균 4만2500마르크의 보상금을 동독에 지불했다. 1인당 가격은 1980년대 들어 약 9만6000마르크까지 늘어났다. 마지막 프라이카우프가 진행된 1989년 이전 12년 동안의 평균치를 유로화로 환산하면 1인당 5만8000유로(약 7654만원)가 프라이카우프 대가로 동독에 지불되었다. 이를 당시 12년간(1978~89년) 서독 주민 1인당 평균 국민소득을 기준으로 환산해 보면 1인당 프라이카우프 금액은 서독 주민 1인당 평균 국민소득 1만1699.7유로(1544만원)의 약 5배에 달했다. 

 

한편 프라이카우프의 대가로 서독이 동독에 현금을 지불한 것은 1963년 최초의 거래가 유일했다. 이후 대가는 합의된 금액만큼의 현물로 제공됐다. 서독의 현물 지불 제안은 다음과 같은 효과를 노렸다. 첫째, 수출통제품목에 들어 있는 전략물자의 동독 반출을 막는 것이었다. 둘째, 서독 내에서 생산 가능한 물자를 보냄으로써 서독의 일자리 확보와 고용 안정화를 꾀했다. 셋째, 동독이 요구하는 희망 물품목록을 통해 당시 동독의 경제상황이 어떤지를 가늠해 봤다.

 

분단 시기 독일과 한반도의 상황에는 엄연히 차이가 존재한다. 독일에서의 정치범과 한반도에서의 국군포로와 납북자 간에도 분명히 큰 차이가 있다. 발생원인, 그들의 삶, 해결을 위한 과정 등 여러 측면에서 비교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에서 추진된 프라이카우프가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으로 창조적으로 응용될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유사성 때문이다. 첫째, 이들 문제의 해결은 국가적 의무다. 둘째, 두 사안은 모두 인권적인 문제다. 셋째, 동독은 정치범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북한은 국군포로와 납북자의 존재를 근본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넷째, 독일의 경우 프라이카우프 외에는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대안이 없었다. 물론 현재 한반도 상황에서도 프라이카우프 외의 다른 접근은 성과를 거둘 수 없다. 다섯째, 동독과 마찬가지로 북한에도 프라이카우프가 매력적인 ‘사업’이 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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