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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 몰아주기에 체면 구긴 허일섭 녹십자 회장

녹십자엠에스 내부거래 증가세 전환…‘윤리경영 전도사’ 이미지 퇴색

이석 기자 ㅣ ls@sisajournal.com | 승인 2018.08.09(Thu) 08:00:00 | 15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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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녹십자그룹(녹십자)은 기록이 많다.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알부민을 생산했고, 유행성출혈열 및 수두백신, 에이즈 진단시약, 혈우병 치료제, B형 간염백신 등을 처음으로 개발했다. 국내 제약업체들이 기피하는 혈액제제와 백신 등 필수의약품 분야에 역랑을 집중한 결과였다. 창립 첫해 1276만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1조1979억원까지 늘었다.

 

녹십자의 초기 성장을 이끌었던 인사가 고 허채경 창업주와 차남인 고 허영섭 전 회장이다. 허 전 회장이 1980년 대표이사에 취임해 2009년 작고할 때까지 녹십자는 단 한 차례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녹십자는 수익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허 전 회장은 1984년 국내 1호 민간연구법인 연구소인 목암생명과학연구소를 설립했다. 사회환원 차원으로, 전 세계에서 녹십자가 세 번째로 개발한 B형 간염백신의 수익이 연구소 설립 재원이었다.  

 

2009년 허 전 회장이 지병으로 타계하면서 동생인 허일섭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허 회장 역시 ‘윤리경영’에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녹십자는 최근 유전자재조합 혈우병A 치료제인 ‘그린진에프’와 헌터증후군 치료제 ‘헌터라제’를 연이어 개발했다. ‘수익성’을 이유로 다른 제약사들이 개발을 꺼리는 분야로, 허 회장의 ‘인도주의 경영’ 의지가 적극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허 회장은 2013년 기존 윤리강령을 보완한 ‘녹십자 윤리기준’을 제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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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환원 차원서 백신 개발 적극 

 

그랬던 허 회장이지만, 최근 재계에 몰아치고 있는 일감 몰아주기 논란은 피해 가지 못했다. 녹십자의 국내 14개 계열사 중에서 오너 일가 지분이 있거나, 간접적으로 지배하면서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회사는 ‘녹십자엠에스’와 ‘녹십자이엠’ 등이다. 두 회사는 그동안 계열사 지원을 통해 고성장을 이어왔다. 특히 녹십자엠에스의 경우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높아 회사기회유용 사례로 꾸준히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2003년 설립된 녹십자엠에스는 체외 진단용 시약과 의료기기 등을 제조·판매하는 업체다.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42.10%의 지분을 보유한 ㈜녹십자다. 하지만 허일섭 회장과 장남인 허진성 녹십자바이오테라퓨틱스 상무, 허영섭 전 회장의 차남과 삼남인 허은철 ㈜녹십자 대표, 허용준 녹십자홀딩스 대표 등이 25.1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983억9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861억6000만원) 대비 14.2%나 매출이 증가했다. 올해는 매출이 10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증권가는 예상하고 있다.  

 

문제는 이 회사의 매출 중 상당수가 내부거래를 통해 나온다는 점이다. 지난해 녹십자엠에스는 215억6000만원의 매출을 계열사인 ㈜녹십자와 녹십자메디스 등으로부터 올렸다. 전체 매출의 21.9%에 달한다. 그나마 2010년에는 매출 293억원을 모두 ㈜녹십자로부터 채웠다. 내부거래율은 100%였다. 이후 내부거래 비중이 줄어들면서 2015년에는 계열사 의존도가 19.2%까지 하락했다. 하지만 2016년부터 또다시 내부거래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매출은 201억7000만원으로 전체 매출의 23.4%에 달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해 발간한 경제개혁리포트에서 “녹십자엠에스의 사업은 의약품 등의 제조와 판매를 목적으로 설립된 ㈜녹십자와 사업목적이 거의 동일한 만큼 회사기회유용 사례에 해당된다”고 지적했다.

 

2003년 회사 설립 당시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등록법인신청서에 따르면, 녹십자엠에스의 향후 성장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기존의 면역학 장비가 노후화되면서 대처할 수 있는 장비의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나 의료보험수가 변화로 시약 가격이 저렴한 자동화 장비 요구가 증대될 수 있다는 점도 새로 시작하는 녹십자엠에스에 호재가 됐다. 그럼에도 녹십자그룹은 허 회장을 포함한 오너 일가에게 많은 지분을 배정했고, 계열사를 통해 일감을 몰아줬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실제로 녹십자엠에스의 매출은 설립 이듬해인 2004년 60억원에서 지난해 983억9000만원으로 13년 만에 1540%라는 유례없는 성장을 했다. 바꿔 말하면 허 회장 등은 오너 일가라는 이유로 가만히 앉아 보유 지분만큼 1540%의 시세차익을 낸 셈이 된다. 재계 관계자는 “보안이나 회사의 필요에 의해 설립했다고 해도 오너가 아니라 법인이 지분을 투자하는 게 정상”이라며 “향후 성장이 예상되는 회사의 지분을 오너 일가에게 넘겼다는 점에서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녹십자 측은 “오너 밀어주기는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회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녹십자엠에스의 내부 거래가 높았지만, 현재는 20%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1~2% 정도의 차이는 사업 환경상 얼마든지 변동이 있을 수 있다”며 “영업이익률도 미미한 수준이다. 2016년에는 영업적자를 기록한 만큼 일감 몰아주기 지적은 억울한 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오너 일가가 녹십자엠에스의 주식을 취득한 것은 경영상의 판단”이라며 “2014년 회사가 상장할 당시 주식 분산 요건을 충족해 투자자별 비중을 요건에 맞춰 진행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녹십자 측 “사업 환경상 변동 가능”

 

하지만 재계에서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린다. 형제 기업과의 교차거래나 계열사 합병 등의 꼼수를 통해 어떻게든 내부거래를 줄이고 있는 최근 재계와 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오너 일가 지분이 30%를 넘는 상장 계열사(비상장사는 20%) 가운데, 내부거래액이 200억원 또는 연 매출액의 12% 이상이면 규제 대상이 된다. 이른바 ‘일감몰아주기법’이 시행되면서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들은 대부분 논란을 해소한 상태다. 

 

하지만 중견기업들은 그동안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일감 몰아주기의 혜택을 누려왔다. 지난해 출범한 문재인 정부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일감 몰아주기 조사 대상을 중견기업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국세청도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세금 없는 부(富)의 대물림’에 대해 집중 점검에 나섰다. 이제 중견기업들도 더 이상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어떻게든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도 모자랄 판에, 녹십자는 오히려 내부거래를 늘렸다는 점에서 의혹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 회사가 향후 녹십자 승계를 위한 지렛대 역할을 하지 않겠냐는 시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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