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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의 두 죽음과 2018년의 두 죽음

[영화를 통해 보는 세상] 5화 - 주검과 죽음으로 군부독재 타도 발화점 된 《1987》

서영수 영화감독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8.07(Tue) 1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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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죽음이 1987년 있었다. 고(故) 박종철 열사와 고 이한열 열사가 꽃다운 나이에 쓰러지며 주검과 죽음으로 군부독재를 무너뜨리는 발화점이 됐다. 영화 《1987》은 민주화과정에서 부당한 공권력에 희생된 두 사람과 수많은 이들에 대한 아픔을 담고 있다. 

 

사상 초유의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2018년 여름에도 두 죽음이 있었다. 박종철 열사의 사망원인을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단순 쇼크사로 위장 발표했던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이 86세로 지난 7월6일 별세했다.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라고 눈물짓던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 선생도 7월29일 새벽 89세로 영면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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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박종철·이한열의 죽음…2018년 강민창·박정기의 죽음

 

장준환 감독이 첫 장면으로 보여주는 ‘대한뉴스 대통령동정’에서 전두환에게 훈장을 받는 치안본부 대공수사처 박처원(김윤석) 치안감을 군부독재정권의 사냥개로 묘사한 영화《1987》은 1987년 1월 14일 발생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하려는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 물고문 현장에서 출발한다. ‘청와대 주인은 바뀌어도 남영동 주인은 그대로’라는 영화 속 장세동(문성근)이 언급한 주인공, 박처원이 세간에 주목받게 된 계기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 지시한 혐의로 구속되면서부터다. 

 

대공 수사에만 몰두했던 박처원은 평안남도 용강의 대지주 집안에서 자랐지만 해방 후 가족 모두가 공산당에게 학살당하자 1947년 혈혈단신으로 월남해 종로경찰서를 찾아가 경찰에 자원했다. 영화 《1987》 자막에 박처원이 ‘1950년 월남’이라고 표기된 것은 오류다. 1947년 경찰에 투신한 박처원이 모신 상관이 일제강점기시절 일본인 경찰보다 더 악질로 소문난 노덕술이다. 노덕술에게 수사기법과 고문기술을 전수받은 박처원은 1970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한 이근안에게 고문기술을 전수해 주며 그를 후계자로 총애했다.

 

박처원은 강민창(우현) 치안본부장에게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박종철이 물고문으로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경찰수뇌부는 구타와 물고문한 가혹행위를 감추고 가족들에게만 사망사실을 통보하고 조용하게 처리하려고 했다. 증거인멸을 목적으로 부검도 없이 화장해버리려는 박처원을 가로막아선 사람은 서울지검 공안부장 최환(하정우) 검사였다. 1971년 6월부터 1973년 12월까지 검찰총장을 지내고 법무부 장관에 오른 이봉성의 둘째사위였던 최환 검사는 경찰의 사체 화장 요청을 거부하고 시신보존명령을 내렸다.

 

최환 검사가 후배 검사를 통해 의도적으로 흘린 정보를 낚아챈 중앙일보 신성호(이신성) 기자는 이두석(오달수) 사회부장에게 바로 전화했다. 금창태 편집국장 대리는 신문사 윤전기를 멈추게 하고 사망기사를 황급히 실었다. 1월 15일 오후 3시30분 가판대에 뿌려진 중앙일보 사회면에는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기사가 실렸다. 비록 짤막한 2단기사지만 대어급 특종이었다.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그 기사 오보야, 오보”라고 금창태에게 전화했다. 그날 오후 6시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박종철의 사망사실을 해명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박종철이 조사를 받던 중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중앙대 부속병원으로 옮겼으나 사망했으며 수사관들은 일체의 가혹행위를 한 바 없다”고 했다. 기자회견에 배석했던 박처원 치안감은 “수사관이 책상을 ‘탁’치니 박종철이 ‘억’하고 쓰러졌다”고 부연설명 했다. 1월 15일 저녁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황적준 박사의 집도로 박종철(여진구)의 사체부검이 있었다. 사체부검결과는 ‘목 부위 압박에 따른 질식사’였지만, 경찰은 황적준 박사를 회유하며 사망 원인을 단순 쇼크사로 은폐하려 했다.

 

경찰이 박종철을 물고문한 이유는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으로 수배된 박종운의 소재를 캐내기 위해서였다. 부검의 황적준(김승훈) 박사를 회유하려 했던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16일 오전 박종철의 시신은 부산시 수도국 공무원인 아버지 박정기(김종수)에 인도되어 경찰의 회유와 협박 속에서 벽제서 화장되어 얼어붙은 임진강변에 뿌려졌다. 이때 박정기 선생은 “철아 잘 가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라고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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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느냐’에 대한 답이다.” 

 

박종철의 억울한 죽음은 대학가와 재야 운동권 등 군사정권에 저항하던 이들의 구심점이 되어 1987년 6·10항쟁을 불러온 결정적 계기가 됐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분노하던 이한열(강동원)은 연세대 만화동아리 ‘만화사랑’을 민주화운동 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만화동아리에서 보여주는 ‘1980 광주’를 기록한 영화를 보다가 뛰쳐나간 연희(김태리)는 “총 든 군인들하고 싸울 건가요? 그러다 사람 죽으면 누가 책임 질 건데요?”라고 외치며 이한열에게 대든다.

 

‘호헌 철폐’ 데모에 참여하던 이한열이 연희를 찾아와 합류를 권유한다. 운동권으로 포섭하려는 이한열에게 연희는 “데모하러가요?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 왜 그렇게 다들 잘 났어. 가족들 생각은 안 해요?”라고 쏘아대며 “그날 같은 거 안와요. 꿈꾸지 말고 정신 차리세요”하며 꾸짖듯 훈계한다. 이한열은 “나도 그러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 마음이 너무 아파서”란 말을 어렵게 남기고 떠난다.

 

《1987》을 용산CGV에서 관람한 문재인 대통령은 “실제로 6월 항쟁, 또 그 앞에 아주 엄혹했던 민주화 투쟁의 시기에 민주화 운동하는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했던 말이 독재권력 못지않게 부모님들이나 주변 친지들이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느냐’는 그런 말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오늘 이 영화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 순간에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항쟁을 한 번 했다고 세상이 확 달라지거나 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 속 1987년 6월 항쟁으로 우리가 《택시운전사》란 영화로 봤던 세상과 그 세계를 6월 항쟁으로 끝을 낸 것이다. 그리고 6월 항쟁 이후에 정권교체를 하지 못해서 여한으로 남게 된 그 6월 항쟁을 완성시켜준 게 촛불항쟁”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다. 우리가 함께 힘을 모을 때, 연희도 참가할 때, 그때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영화가 보여주는 것 같다”고 밝혔다. 덧붙여 “제가 영화를 한 번씩 보는데, 영화를 보면 ‘이 영화가 1000만을 넘기겠다, 아니겠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오늘 영화를 보니까 이 영화는 확실히 1000만을 넘기겠다는 예감이 든다. 국민께서 이 영화를 많이 봐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총제작비 145억 원이 소요된 《1987》은 관객 720만 1370명을 동원하며 579억 3629만 4645원의 매출을 올렸다. 장준환 감독의 첫 흥행작이면서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연희는 6월 9일 저녁신문에 실린 이한열의 사진을 보고 오열한다. 로이터통신 기자가 찍은 이한열은 최루탄을 머리에 맞아 피 흘리며 이종창에게 부축 받는 모습이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부르짖다 쓰러져 한 달 가까이 사경을 헤매던 이한열은 7월 5일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증거조작을 시도하기 위해 이한열의 시신을 법의 이름으로 탈취하려는 경찰과 맞선 학생들은 시신을 지켜내고 마침내 이한열 열사 노제가 7월 9일 시청 앞에서 진행됐다. 100만이 운집한 노제에서 문익환 목사는 피 끓는 명연설을 했다. 《1987》의 마지막 장면인 노제에 나타난 연희는 버스위로 올라가 시위에 동참한다. 다른 버스 맨 끝에 빨간 손수건을 오른손목에 두른 문소리(장준환 감독 부인)가 ‘고문살인 자행하는 군부독재 몰아내자’를 외치고 있다.

 

이한열을 사망에 이르게 한 최루탄을 만든 삼양화학은 최루탄 독점 제조업체였다. 1988년 재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삼양화학 대표가 당시 소득 랭킹 4위에 올랐다. 삼양화학이 전국 소득세납세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는 사실은 군사독재 부패정권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필리핀에서 온 최루탄 구매사절단이 한국산 최루탄의 독성을 직접 체험하고 “필리핀처럼 더운 나라에서 이 최루탄을 사용하면 전부 견디지 못하고 모두 죽을 것”이라며 깜짝 놀라 수입을 포기했다는 일화도 있다.

 

《1987》의 대미를 보여주는 고 이한열 열사 노제위로 흐르는 민중가요 《그날이 오면》은 1985년 노래모임 새벽이 전태일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노래이야기 《불꽃》 공연을 위해 만든 노래다. 촛불이 탄생시킨 문재인 정부 2년차인 오늘, 영화 《1987》에서 장준환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그날’은 왔는지 궁금하다. 고 이한열 열사를 행동하는 뜨거운 양심으로 만든 ‘마음이 너무 아파서’처럼 ‘아직도 마음이 아픈 사람’이 없는지 진지하게 돌아보고 적극적으로 배려하지 않으면 진정한 민주주의는 요원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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